4. 교육과학사와 김교수님

4. 교육과학사와 김교수님




2007년, 그 당시에는 복지관에서 치료사로 일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 이렇게 묻는 강사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교수 앞이라 주눅이 든게 아니라, 교육에 모인 수갱생들의 자기소개에 기가 눌린 격이다. 전국에서 모인 선생님들은 전문분야에서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치료라는 분야가 미술치료, 놀이치료, 음악치료 등 이름만 붙이면 다 치료지 않냐. 음식으로 치료해 보시지 그러냐고 했다. 제가 식재료로 요리도 하고 치료도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요리치료 하면 되겠네요 하신다. ‘요리치료’, 내가 감히 요리에 치료라는 말을 붙어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용감하게 장애아동과의 요리활동에 대한 경험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2007년, 12월 24일 [요리치료의 비전과 전망]이라는 이름을 걸고 첫 세미나를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불구하고 호응이 좋았다. 세미나 준비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떨리는 마음은 지금 생각해도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요리로 개별치료를 진행 해본 경험으로 2007년, 요리치료에 관한 첫 원고를 들고 출판사 섭외를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투고와 출판사 방문,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한 곳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첫 번째 책의 공동저자가 말씀하시길, 저자 권명숙으로는 출판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학위는 석사, 직업은 치료사인 나의 이력으로는 출판 된 책의 판매량을 생각한다면 출판사 측에서는 손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그 분이 본인을 활용하라고 했다. 공동저자의 이력을 내세웠더니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출판사와의 계약은 당연히 그 분 혼자 가서 했다. 나는 열심히 쓰고, 부지런히 쫒아다녔음에도 첫 번째 책에 대한 저작권은 없다. 참 몰랐다. 모르니 당할 수 밖에.



2008년 요리치료의 이론과 실제, 첫 번째 책의 아픔을 접고 특수학급에서 진행한 요리치료 프로그램을 정리한 내용을 책으로 내고 싶었다. 교육과학사에 부지런히 문을 두드렸다. 첫 번째 책의 저작권은 없지만 인연으로 해 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 석자를 걸고 2010년 요리치료 활용 프로그램, 두 번째 책이 출판되었다. 교육과학사 부장님이 말씀하시길 10년을 내다 보고 출판하는 것이라 하셨다. 2012년 현장적용의 요리치료의 실제, 세 번째는 생활시설의 성인 지적장애인의 요리치료 프로그램에 대해 책을 냈다. 이 두 권의 현장에서 진행 한 프로그램을 정리한 내용이다.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살펴보면 많이 부족하지만 그 당시에는 책 출간은 참 잘한 일이었다. 요리치료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여 요리치료 책을 출간한 선구자, 먼저 길을 가는 사람이 되었다. 다행히 나는 요리치료 전문서 세 권을 낸 저자가 되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혼자서 어떻게 해서 내가 그런 일을 해냈을까? 그리고 미개척 분야를 믿음으로 책을 내 주신 출판사(교육과학사)도 감사할 뿐이다. 내가 출간한 이 독창적인 내용의 책은 일산의 집에서 장애아동과의 치료교육 내용과 요리치료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선생님에게 요리라는 매체가 장애특성과 발달수준에 따라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한 방법을 가르쳤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요리치료 관련 책을 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분은 책 표지를 보더니 ‘무슨 요리로 치료를 하느냐?’ ‘장애아동이 어떤 요리를 잘 만드느냐?’ ‘어떤 요리를 먹이면 장애애들이 낫느냐?’ 고 물었다. 어떤 분은 ‘아 이 책은 요리사와 조리사들이 활용하는 것이군요.’라고 물어 보기도 했다.


요리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요리치료는 이 책으로 쉽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현재 요리치료학과는 없다. 또 요리치료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민간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저자 권명숙이 직강하는 한국요리치료연구소 뿐이다. 요리치료는 학교 뿐 만아니라 다양한 기관과 센터에서 요구가 늘어나면서, 요리치료가 해를 거듭할수록 가르치는 커리큘럼이 늘어나고 있다. 장애인의 평생교육 시스템에 따라 생활교육을 기반으로 하는 자립과 재활을 위한 삶의 한 부분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머지않아 대학교에 미술치료학과, 음악치료학과, 놀이치료학과 등과 대등한 위치에서 요리치료학과가 생길 것이는 희망을 걸어 본다.


「요리치료는 식재료와 조리도구를 매체로 특수교육과 치료지원, 그리고 상담심리를 근거로 하는 전문영역이다. 요리치료는 결과물보다는 활동과정을 중요시 한다. 요리치료는 인간발달 이론을 바탕으로 일반인에게는 상담심리를, 장애인에게는 특수교육과 치료지원 위주로 진행한다. 유․아동에게는 신나고 신기하고 신선한 놀이체험과 기초개념을, 청소년에게는 자아존중감 향상과 사춘기 우울과 직업지도, 심리․정서지원 프로그램을, 노인에게는 우울과 치매예방을 위한 신체적․정서적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장애인에게는 생활연령과 장애특성에 따라 언어. 인지․학습. 놀이, 예술, 정서․행동. 사회성 영역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알고 방향을 제시하고 방식을 만들어 가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책을 발간 한 후 본격적으로 내 이름 석자를 걸고 요리치료사 교육을 하고 있었다. 교육 후 바로 현장에 나갈 교육생에게 완벽하게 전수하고 싶었다. 공저로 책을 내고 함께 요리치료사 양성과정으로 진행했지만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나는 슬럼프에 빠졌다. 나는 요리치료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면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독특한 분야의 책을 낸 힘없는 공동저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나에게 용기를 주신 분이 있다.


2004년, 김교수님은 내가 보육교사 교육을 받을 때 장애보육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뵈었다. 그 당시 교육님의 살아있는 현장은 장애교육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나에게 다양한 방법을 지도해 주셨다. 교수님에 대한 무한 신뢰와 미래에 대한 기대는 가슴이 벅찼다. 교수님의 격려 전화는 내가 요리치료로 해 온 일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고 또 장애아들에 대한 책임감이 일어났다. 대학의 특수교육학과 교수로 재직중이셨고, 내가 요리치료 책을 내고 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해 주셨다.


「권선생님 소식 들었다, 내용이 참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특수교육에 활용 가치가 매우 높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분야인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개발해 내어 책을 발표한 점을 매우 높게 사고 싶다. 이 분야에 수 십년 동안 몸담고 있어보니, 특수교육에 좋다는 별별 교육과 치료를 접하게 돼요. 권선생님이 만든 요리치료는 장애아를 키워 본 엄마의 순수한 마음에서 장애아의 자립과 재활에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판단되는데, 요리야말로 장애아들에게 생존적인 측면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잘 아시겠지만 장애아 엄마들이 소원은 아이보다 하루 더 살다가 가는 게 소원이에요. 그래야 아이에게 첵임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먹고 사는 것, 이처럼 장애아들은 밥 한 끼를 그것도 자기 손으로 먹는 게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문제이지 않냐. 그런데 권선생이 하고 있는 요리치료는 우리 장애아들에게 가르치면 그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겠더라구요 끝가지 잘 해 봐야지 않겠냐구. 권선생, 향후 장애친구들 대상으로 좀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요리치료 매뉴얼이 개발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확장애서 우리 아이들이 돈도 벌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렇게 하게 된다면 권선생은 특수교육 분야에서 선구적인 족적을 남기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김교수님의 격려 전화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래,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었다. 내 이름을 걸고 만들어 놓은 것을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면 분명히 장애인을 포함해서 그의 가족에게 도움 줄 수 있을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지난날의 큰 아이의 조기교육이 스쳐 지났다. 정상적인 아이로 키우기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애쓰지 말라고 했다. 모두가 정상으로 살아가는 건 어렵다고 말했지만 나는 악착같이 치료교육에 매달렸었다. 그 당시의 소원이 일반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이었다.


큰 아이를 8살에 일반학교에 입학시켰다. 돌이켜보면 그저 평범하기만 했던 내가 그런 억척스러움의 근성이 어디서 나왔는지 스스로 놀란다. 쇠힘줄 같은 내 근성은 친정엄마로부터 이어받았다고 본다. 당신은 많이 배우지 못해 무식하다고 말씀했지만 우리 가족을 위해 모든 걸 바치셨다. 사실, 우리 가족 중에 큰 오빠가 소아마비를 앓았다. 엄마는 큰 오빠를 낫게하기 위해서 지방까지 용하다는 곳을 다 찾아 다녔다고 했다, 명성이 자자한 의사, 잘 맞힌다는 무술인 등이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갔다고 하셨다, 다행히 큰 오빠의 소아마비는 내가 대학생이 되고 결혼을 해서도 몰랐으니 친정어머니의 지극한 모성과의지로 만들어진 것임에 분명했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이다.’ 누구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느냐 주저 앉는나는 자신에게 달렸다.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요리치료 현장을 나가면서, 요리치료 프로그램을 구축해 나갔다. 그렇게 해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요리치료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두 권의 책을 더 냈다. 초창기 무조건 책을 내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면 이제는 요리치료에 관한 한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장애인과 그 가족에 유용한 프로그램을 연구하고자 한다.


2019년, 10년의 긴 여정을 정리 중이다. 요리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희노애락의 에세이와 10년의 동반자인 임진선박사와 공동으로 엮어내는 요리치료 방법론이다. 지금도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험한 길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은 꼭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 한국요리치료연구소의 철학*
신나고 신기하고 신선한 요리치료는
대상자의 특성과 욕구를 파악하고
장애인의 유형과 수준을 알고
방법을 알고 방향을 찾고 방식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활동합니다.

since2007한국요리치료연구소by권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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