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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요리치료연구소 Aug 23. 2019

나, 이러고 살아야 되나!

나 이러고 살아야 되나!

그럼에도 정신줄 꼭 잡고 살자!



폰이 껌벅거린다. 한번 확인해 봐 달라는 신호이다. 나는 모른체 한다. 될 수 있으면 폰을 멀리하고 싶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전화만 받다가, 또 어떤 하루는 종일 메일 확인하다 보니 폰과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가곤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노란불을 반짝거리며 나를 유혹하고 있다. '급하면 전화하겠지' 생각하고 휙 책상 위로 던져 버렸다. 그러고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신경이 쓰였다기 보다는 폰 중독일거라는 나름의 병명을 짓고 한 시간도 못 기다린채 집어 들었다. 헉!




선배 : 나 오늘 이러고 나옴

나 : ㅋㅋ(할말없음)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온  대학원 선배는 나보다 한 살이 많다. 우리집에서 20분거리에서 장애인 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평일에는 치료사 선생님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육과 치료지원 서비스를 운영한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부터는 '토요학교'라는 이름으로 2박 3일 혹은 1박 2일로 장애인 친구들과 선배 집에서 일상생활 훈련을 한다.  마당 너른 집 앞에서 바베큐도 하면서 징애 비장애 친구들과 3개월에 한번씩 캠프도 한다. 어쩜 저렇게 할 수 있냐고 물으면 선배는 우리 친구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거기에다가 28살 먹은 성인 여성장애인을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어릴 때 센터에 다니던 친구인데 이 친구의 부모님이 장애인이어서 자녀를 거의 방치 수준 이었다고 했다. 얼마동안의 센터 교육으로 맺은 인연이었음에도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찾아 보고 성장에 따라 지원을 해 주었는데 이렇게 두었다가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래서 부모의 동의 하에 (부모가 장애인이니 주 양육자가 있음) 데리고 왔다고. 일상생활 훈련에서 직업재활까지 함께 동거하면서 가르친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그 친구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 ( 그 친구(지적장애)는 종합병원에 반일 근무한다. 병원에서 챠트를 찾는 단순노동을 하는데 챠트가 영어 되어 있으므로, 선배는 이 친구에게 2년동안 알파벳을 가르쳤다.)


선배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우리의 일이 다 그러하듯 책임감과 사명감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일이 힘들고 싫증난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기를 선호한다. 앉아서 책을 뒤적거리고 후배를 양성하는 일도 현장에서의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선배와 나는 예전같지 않다는 소리를 자주 하곤 한다. 우리가 언제까지 현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점점 성장하여 키도 나보다 더 크고 몸무게도 나보다 더 나가고 힘도 더 세지고 밥도 많이 먹고, 그런데 우리는 점점 작아지는 듯한, 아니 작아지고 약해지고 둔해지는 것을 체감한다. 한마디로 깜박깜박 정신줄을 놓을 때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드뎌, 선배가 일을 치루고 있었다. 어떻게 신발을 저렇게 신고 나왔냐고 탓하지도 못한다. 저 일이 나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선배는 자기 운전으로 움직이므로 창피스러움은 덜했으리라 싶다. 센터에 와서 깨달았으니 더 다행스럽다. 난, 나는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강의를 했던 적이 있다. 강의가 다 끝나는 시간까지 몰랐는데 종료 후 교육을 받으시는 선생님이 ' 강사님의 양말이 왜 짝짝이 인지 교육 내내 궁금했다면서, 양말을 그렇게 신는 것도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를 주고자 하는 것인가요"라고 질문을 했다. 나는 씩씩하게 대답 했었다. '아침에 잘못 신고 나온 겁니다'  말하면서도 쪽 팔림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양말과 신발은 그나마 약한 건망증에 속한다. 블라우스나 티서츠를 뒤집어 입어 솔기가 밖으로 나온다거나, 안경을 잊어버리고 안쓰고 온다거나, 차 키를 차 안에 두고 문을 잠그는 일은 다반사이다. 많은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그 친구가 이친구 같고 이 친구가 저 친구같은 상황, 이 센터에서 친구를 만난건지, 저 기관에서 만난 친구인지, 그 뿐이랴 부모님을 만날 때는 누구의 부모님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가 찍짓기를 잘못해서 다른 아이의 엄마로 한참을 상담하기도 한다. 그나마 몇년 전까지만해도 정신이 초롱 같았는데 말이다.


 어쨌던 선배의 짝짝이 신발 사건은 선배와 나에게는 엄청 충격적인 사건이다. 우리는 장애인을 만나는 교육 현장에서 항상 긴장을 한다. 매서운 눈과 곤두서는 신경, 날렵한 몸짓을 필수이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 친구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온몸으로 행동하고 온맘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늘 예민해져 있어야 한다. 시간은 우리에게 느린 몸짓, 무뎌진 마음으로 발달하게 하고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20190823 권명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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