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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요리치료연구소 Aug 17. 2019

노트, 정리 좀 해 줄래?

노트, 정리 해 줄게, 정리 좀 하자!



내가 요리치료를 시작하고 현장에서 다양한 대상자를 만나고, 기관과 담당자와의 미팅에서 여러가지 사항을 소소하게 적어 둔 노트이다. 한해를 보내고 또 한 해, 그러고도 10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 처음부터 무엇이든 적는 습관을 들인 것은 아니였다. 2007년 요리치료를 처음 시작할 때는 요리에 방점을 찍는 선생님이 많았고,  대상자와 맛있고 멋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이 최상인 줄 알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특히 장애인과의 요리는 교육과 치료지원의 목적이었으며 요리는 교육과 치료지원의 중재기법으로 활용되는 것이라고 인식시키는 것도 무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요리결과물에 대해 편중하는 인식을 바꾸는 데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요리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했던 선생님이 현장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방법과 특성과 수준이 다른, 생활연령과 활동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가지 일에 대해 그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유와 문제를 풀어 나가는 해답을 적어 두었다. 우리가 하는 일에는 정답보다는 그것을 풀어 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는 상황도 다양하지만 내가 만나는 선생님도 다양했다. 



오래동안 묵혀 두었던, 아니 열어보고  싶지 않은 노트를 꺼냈다. 노트를 펼쳐 보니 오래전의 일이 다시 그려졌다. 어디에서 그런 열정이 일어 났는지, 누구를 위해 에너지를 쏟아 부었는지, 한장 씩 펼쳐 볼 때 마다 기관에서 만난 대상자의 특성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그 화면 앞에 우뚝 서 있는 선생님도 그려졌다. 한 회기씩 이어질 때마다 우리의 시작과 마무리는 마치 수필처럼 그려졌거나, 낙서처럼 끄적였거나, 한편의 연속 드라마처럼 다음 회기가 궁금해 지는 이야기도 실려 있었다. 



노트에는 연도별로 진행되었던 기관과 대상자의 특징, 무슨 활동(명)을 했는지, 왜 그 활동을 했어야 했는가, 가장 중요한 활동주제와 활동목표에 맞게 대상자의 교육과 치료지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왜 실패 했는지에 대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성공했다면 그 다음 확장 활동은 무엇으로 했으며, 실패 했다면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도 말이다. 이런 과정은 마무리단계에서 나와 선생님의 자기평가, 자기피드백에 열거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활동하기 전, 대상자를 만나기 전에는 어떤 계획을 수립했으며 한 가지 방법이 아닌 그 한가지 방법이 오류를 나타낼 때 다른 대체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현장에서  만나는 대상자도 세심하게 기술해야 했다. 그들이 어쩌면 똑 같아 보이지만 조금은 다른 그들의 특성을 예리한 관찰로 잡아 내야 했다. 그 관찰은 교육의 방법을 찾고 어떠한 치료지원을 해 주어야 하는지를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는 요리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주어진 환경을 탓하면서 대상자 관찰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10여년 동안 나와 인연을 맺은 선생님의 수퍼비전에 대한 내용도 있다. 선생님 수퍼비전을 위해 내가 현장에 직접 찾아가거나 또는 나의 수업에 관찰자로 참석을 허락하기도 한다. 내가 선생님의 수업에 관찰자로 참여 했을 때는 아마도 긴장을 한 탓이기도 하지만 정말 요리하는데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  관찰해야 되는 대상자는 내버려 둔채, 머리들어 봐야 다음 회기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인데 요리하는 것 자체도 손에 익숙치 않는 부분도 보인다. 나의 수업에 관찰자로 온 선생님은 대부분 안절부절이다. 도움을 주어야 될 것 같은데 가만히 앉아 서 보기만 하라고 했으니 이 또한 익숙치 않은 일이었다. 이래 저래 우리는 익숙한 것에 몸을 맡기고 있었고 새로운 것에 적응이 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노트를 펼쳐 보았다. 빼곡하게 적고 그림도 그리고 시도 긁적인 흔적이 있다. 나의 경험과 노력과 열정과 그리고 눈물이 보였다. 이제 이 노트를 장리해야 한다. 기록은 했지만 정리하기에는 무억부터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서  오랫동안  생각을 접어 두었다. 이제는  현장에서의 소리와 이미지를 모아서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엮어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뽀얗게 내려 앉은 먼지와 너덜해진 종이와  갈피 갈피 붙여진 포스트 잇, 그 위에 깨알같이 적어 둔 내용을 이제는 정리하여 단아하게 엮어 내야 한다. 



요리는, 허기를 채울 수도 있지만 정서를 채울 수도 있는 매체이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냉수에 말은 밥이 배를 채우며, 어떤 이에게는 물말은 밥 한 그릇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에 밥을 담는 일이, 밥에 물을 넣는 일이 어떤 이에게는 교육과 치료지원으로 접근하기도 할 것이다. 요리는 많다. 요리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온갖 매스컴에서 요리와 먹방이 대세이다.  내가, 요리치료사가 현장에서 하는 일이  본래의 목적을 잃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기록의 노트, 기억의 노트,   정리해 줄게 이제 정리 좀 하자고 속삭이고 있다.



이 많은 노트를 언제 다 정리 할 지 모르지만 한 권씩 펼쳐 봅니다.  알 수 없는 시작과 마무리로 두서 없는 내용과 속절없는 것은 과감하게 버리기로 합니다. 내가 만난 대상자와 기관과 담당자의 특성을 살려 주제와 목표에 맞게 진행행 프로그램은 무엇이었으며, 과정 속에서 장점과 단점을 찾고 간절히 원하던 다양한 방법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정리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 내길 두손모아()()



20190817

한국요리치료연구소 권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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