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요리치료
계속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습기와 더불어 며칠 사이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하다. 선선하다 못해 이제는 이불을 가슴 팍까지 올려야 되고 자주 내리는 비는 습기를 동반하여 이래 저래 구질하고 심드렁한 생활을 이어 가게 했다. 나는 이런 날에 진행되는 수업을 앞 두고 고민을 했다. 수업 일정이 기관의 사정에 의해 연기되다 보니 8월의 마지막 날에 진행하게 되었다. 8월 말이면 아직 더위가 물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은 비껴가고 비가 연일 내리는 것도 모자라 어느 순간 확 변했고, 피부에 닿는 바람은 "아! 이제 가을이구나"라고 느낄 정도였다. 화창한 (더운) 날씨에 참여자들과 과일화채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따뜻한 요리로 변경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며칠을 고민했다. 프로그램을 변경하려면 먼저 담당자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그런데 미리 재료를 구입해 두었다면 변경은 곤란하다. 수업 이틀 전이라 담당자에게 "변경해도 될까요? " 라고 물어 보기가 참으로 망설여졌다. 혼자서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해가 쨍하고 뜨거워지기를' 바랬다. 담당자에게는 "멀티탭 준비 부탁드려요."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바로 "넵"이라고 답장이 왔다. 이렇게 답장을 보내는 걸로 봐서는 오늘의 요리는 과일화채로, 변경은 없는 걸로 확인하게 되었다.
한달 전에 기관에 보낸 계획서대로 내가 준비해야 될 것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스쿱, 모양틀, 묵칼. 컵, 케리어, 빨대, 니트릴 장갑 그리고 믹서 두 개를 챙겨 넣으니 가방이 두개가 되었다. 여기는 장애인 거주시설이며, 참여자는 성인발달장애인으로 남성 2명, 여성 3명 총 5명이다. 오늘의 요리 과일화채는 그들이 만들기를 해 보자고 한 것이다. 과일화채를 만드는 데 스쿱, 모양틀 믹서 등등을 왜 준비해 가야 하는 걸까? 큰 양푼이에 수박을 썰어 담고, 다른 과일이 준비 되었다면 그것도 썰어 담은 후 우유와 탄산수를 넣고 설탕으로 단맛을 맞춘 후 얼음을 동동 띄워 섞어 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참여자에게 활동의 즐거움(변화)을 주고 싶었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물론 가정,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방방이 담당 복지사가 같이 생활 지도를 하는 곳이지만 세세한 놀이나 활동은 부족하리라 생각이 들었다.
과일은" 담당자님이 알아서 준비해 주세요." 했기에 어떤 과일이 준비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른 기관에서 해 봤기에 대체로 수박, 복숭아, 사과, 바나나 등의 제철 과일이 주를 이루고 참여자가 좋아하는 과일이 등장한다. 화채의 기본은 수박이다. 수박을 참여자의 수대로 5등분 하여 세모, 네모, 깍둑모양으로 자르기를 지도하면 된다. 내가 설명하는 것은 세모, 네모 등의 모양이지만 참여자가 만들어 내는 수박 모양은 대개 엉.망.진.창.으로 잘라 놓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럴 바에는 그들에게 재미를 주고 싶었다. 동그란 수박이 구르거나, 움직이지 않게 수박의 양 끝을 잘라 내고 반으로 자른 후 큰 그릇이나 접시에 반쪽씩 담아 주었다. 첫번째 활동으로 작은 스쿱으로 수박을 동그랗게 파보게 했다. 작은 스쿱 활용에 어려움이 있는 참여자에게는 사용하기 편한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수박을 파 보게 했다. 물론 스쿱을 수박 위에 엎어서 올린 후 힘을 주고 푹 꽂은 후 뱅그르를 돌리는 연습을 서너번 해 주었다. 그런데 참여자들 대부분은 손에 힘이 없었다. 그저 스쿱으로 푹 떠는 것만으로도 신기해 했으면 즐거워했다. 동그란 볼 형태의 수박은 없었다. 두번 째 활동은 스쿱으로 파 낸 수박을 잘라내고 모양틀로 찍을 수 있도록 손질해 주었다. 수박을 납작하게 잘라서 나눠 주면 모양틀로 찍어 보는 것이다. 네모, 세모, 원, 별모양을 서로 서로 바꿔가면서 열심히 찍어 댔다. 아 활동에서 상호작용이 잘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번째 활동은 주스 만드는 일이다. 스쿱으로, 모양틀로 아작(?)이 난 수박을 작게 손질을 했다. 믹서기 두 대를 설치하고 두 명씩 앞으로 나와 믹서에 수박 두 국자, 우유 반컵, 탄산수 반컵, 연유 쭉 넣고 뚜껑을 닫고 스위치를 눌러 꽈르르르르 돌려 주는 일이다. 아! 그들이 믹서기 사용하는 일도 집중을 다해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직접 일회용 컵에 다르게 하고, 얼음을 넣게 하고, 뚜껑을 닫고 빨대를 꽂은 후 홀더에 끼워 제자리로 들고 들어 가는 것까지 진심으로 해 내고 있었다.
참여자에게 과일화채 만들기는 .... 준비된 과일을 자르고, 우유와 탄산수를 넣고 설탕으로 맛을 맞추는 일이다. 이렇게 하면 참으로 단순하고 간단한 활동이다. 물론 나도 수월한 활동으로 마무리 할 수 있다. 과일화채 프로그램을 계획하면서 참여자의 생활환경을 고려하게 되었다. 가족과 집에서 생활하는 참여자라면 스쿱, 믹서기, 등등의 조리도구를 자주 또는 간간이 구경하고 만져 봤으리라 생각이 들지만, 그들은 기관에서 생활하며, 식사는 식당에서, 복지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생활 여건과 생활연령, 발달연령을 고려하여 재미 플러스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립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스쿱과 믹서기 같은 조리도구도 직접 활용해보고, 지시에 따라 양을 계량해 보고, 다양한 과일의 이름을 알고 과일의 질감에 맞게 어떤 모양으로 자를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참여자들은 엄청 적극적이었다. 먼저 앞에 나와 해보겠다고 했으며, 하다가 틀리는 부분에서는 다시 해 보겠다고 했으며, 결과물에 대해서는 함박 웃음을 보이며 만족해 했다. 자신이 만든 주스에 엄지척 해 보였고 내가 직접 만들었다고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치며 뿌듯해 했다.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수박 한통으로 즐거워도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