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도. 그래서 나는 법정에 섰습니다.]-16화

1차 재판

by 첩극

“어머니, 아버지 저희 왔어요.”


아들과 함께 본가에 도착했다. 출장 가기 전에 왔다 갔으니 한 달 조금 지나서 온 셈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번갈아가며 손주를 안아보더니 “우와~ 조금 더 크면 이제 못 들겠네. 밥 잘 먹는구나!?” 하면서 아이를 반겨 주셨다. 며느리는 왜 같이 안 왔냐는 말에 오늘 친구랑 약속 있어서 그냥 애 데리고 놀러 온 거라고 말씀드렸다. 죄송하지만 앞으로는 볼 일이 없으실 거예요.


아내는 알지 모르겠지만 두 분은 아내를 참 좋아하셨다. 건강한 집에서 바르게 자랐다며 가끔은 나보다 아내를 더 신경쓰나 싶을 정도였다. 아내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평생 지내왔던 제사를 할머니와 싸우면서까지 없앴다. 이 힘든 걸 며느리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면서.


설날과 추석에는 우리가 어떤 요리를 해간다고 하면, 그걸 제외한 요리를 전부 준비하셨다. 뭐 처갓집도 마찬가지지만.


보통 우리집은 아내가 잡채를, 내가 산적꼬치를 만들었다. 아이가 조금 크면서 “햄~” , “단무지~” 하면 아이가 하나씩 건네주고 내가 꼬치에 끼우면서 뭔가 가족끼리 함께 맞이하는 명절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만든 요리는 반은 본가에 가져가서 점심으로 같이 먹고, 나머지 반은 처가에 가져가서 저녁을 보냈다.


어머니가 LA갈비를 해두셔서 저녁으로 먹고 다 같이 공원에 산책을 다녀온 후 씻고 잘 준비를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면서 책을 읽어 주시고 마지막으로 내가 옛날이야기를 해주면서 넷 모두 안방에 누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잠들었다.


“그래, 할 말이 뭐니? 주재원 나갈 날짜가 나왔어?”

다 같이 소파에 앉았고 아버지는 내 얼굴을 살피더니 물으셨다. 죄송해요 아버지 그런 소식이 아니라서.


“엄마 아빠, 안 좋은 이야기인데.. 일단 죄송해요.”


어머니 아버지는 내 다음 말을 기다리셨다. 나는 이미 사건의 충격에서는 시간이 조금 지난 상태고 소송이 진행중이라 마음을 조금 다스릴 수 있었기에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나와는 달리 어머니 아버지는 큰 충격에 빠졌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아버지와 분노로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넌 괜찮니..?”

아버지가 옆에 오셔서 어깨를 쓰다듬으며 물으시는 바람에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그래서.. 소송 끝날 때 까지는 아이 생각해서 같이 살기로 했어.”


“아이 데리고 여기로 오는 건 안돼? 어떻게 계속 같이 사니 거기서. 엄마아빠랑 같이 키우자. 엄마 이제 은퇴했으니까 손자보는 거 문제없어.”


엄마는 못해본 공부를 하고 싶으시다며 은퇴 후 대학원에 진학했었고 올 해 졸업하셨다. 지금은 은퇴 후 강연, 봉사활동, 전시회를 다니시며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즐기고 계셔서 바쁘시단 걸 안다.

아버지는 회사 공장장으로 계셔서 부모님은 주말부부다. 아이가 본가로 들어온다면 모든 케어는 어머니가 해 주셔야 함에도 본인 삶을 두고 아이를 키워 주시겠다는 말에 감사했다.


“아니야. 양육권은 어차피 판사가 정해줄 거고.. 일단 이혼판결까지 1년은 걸릴테니까.. 아이도 엄마아빠 같이 있는 시간 많이 가지게 하려고 그렇게 정한 거야.”


“걔는 대체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저질렀대니!?”

사람이 너무 분하면 눈물이 나온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다시 알 수 있었다. 진짜 못난 아들이다. 부모님께 대못을 박아도 이렇게 박다니.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앞으로도 평소처럼 해주세요..”



한 달 뒤.


정식 서면이 왔다면서 변호사가 파일을 보내주었다. 13페이지의 서면이었다.


1, 원고 청구 및 피고 항변의 요지.

이 부분에서는 피고 2인이 부정한 행위를 했고 위자료 5천 만 원을 지급하라는 것에 대해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고 원고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2. 원고 주장의 부당성

둘이 상당기간 부정한 관계를 이어왔고 그로인해 가정의 안녕이 침해되었다는 주장에 원고는 어떠한 증거도 제출하지 않았고 원고가 주장하는 부정행위의 근거 역시 사실과 다르다며 길게 내용이 있었다.


코엑스에서의 교육 및 미팅은 수료증을 첨부하였고, 상간남은 그 날 당진 출장이 있었다며 사내 출장신청서를 출력하여 첨부했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되어 상간남이 합류해서 함께 식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다.


외박에 대한 것은 동료의 시모상 사내 공지를 근거로 제출했고 회사 사람들과 같이 갔으며 저녁에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이 써있었다.


상간남을 집에 데려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부만 시인했다. 함께 프로젝트로 고생해서, 싱가폴에 가족 여행 가기 전에 목도리를 선물하려고 택배로 보내주려 하였더니 피고2가 선물 받는 입장에서 감사의 표시로 직접 받겠다고 하여 잠깐 집에 왔었고 실제로 목도리만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이었다.


부정행위에 대해 자백하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런 적이 없으며 확인한 적도 없는 CCTV를 확인했다고 하며 원고가 원하는 답을 강요하였고, 부정행위와 관련된 언급은 본인은 일체 한 적이 없으며 아래 소결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이 일반적인 직장 동료로서의 관계를 음해하며 위자료를 청구한다는 원고의 판결을 기각해달라는 결론으로 끝이었다.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역시 아내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첫 재판이 있었다. 변호사는 1차 변론기일에는 형식적인 절차만 밟는다며 와도 되지만 보통 안 온다고 하였고 내가 찾아본 이혼 법 관련 카페나 게시글에도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있어서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 날 변호사가 끝나고 바로 전화를 주겠다고 하였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20분. 예정된 시간인데 앞에 다른 사건들이 있으면 계속 지연이 된다고 했기에 차분히 기다리려 노력했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업무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전화가 온 건 거의 네 시가 다 되어서였다.


“네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방금 끝났는데요, 일단 피고들은 당연히 출석 안했고.. 상대쪽은 새끼변호사가 왔네요.”


“네, 어떻게 되었나요?”

“저희 쪽에서 주장한 것에 대해 피고 쪽에서는 아니라고 하고 반박문을 내었으니, 증거자료를 제출하고 다음 서면을 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되는데 저쪽에서 반박문을 일주일 전에 내면 우리 쪽에서 대응할 시간이 없으니 이런 식으로 이어질 거에요. 그래도 보통 3차, 늦어도 4차에는 결론이 나오니까 우리는 우리 할 것에 집중해서 하죠.”


아내가 낸 반박문에 대응하려면 글을 작성해야 하고, 변호사가 검토하고 서면을 제출하면 2-3일 정도 뒤에 반영이 되니 판사가 읽고 들어올 시간도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반박문을 제출했을 때 짜증이 났었다.


“그리고.. 가사조사관 면담을 하셔야 해요. 아이 있는 가정이 이혼할 때는 필수로 진행되는 것이다보니.. 곧 법원에서 명령오면 전달해드릴 게요. 그때 뭘 하는 건지 상세하게 다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하나 더 있는데 재산명시명령이 있어요. 이것도 같이 보내 드릴 게요.”

변호사와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 날 집에서 아내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태연하게 평소처럼 행동했다. 표리부동한 모습에 울화가 치밀었다가, 그래 아이한테 집중하자고 생각하며 아이와 놀아주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