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소장
어제 공장 출장이라 아내가 아이를 재웠기에 오늘은 내가 재우고 나왔다. 아내는 이미 주방 의자에 앉아있었고 식탁엔 무슨 서류들이 놓여있었다.
“뭐야 이게?”
아내는 내가 자리에 앉자 서류를 내 쪽으로 밀었다.
“이혼 신고서.
설마 하고 제일 앞에 올려진 서류를 들어보았다.
‘협의이혼 의사 확인 신청서’
당황스러웠다. 협의 이혼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하지만 아내는 내가 이미 소장을 제출한 것을 모른다. 그 사실을 숨긴 채, 아내가 써둔 글을 보았다. 양육권과 친권은 본인이, 양육수당도 얼마라고 써있고 원할 때 마다 아이는 만날 수 있다고 써있었다. 재산 분할은 본인 기여도가 높으니 주담대를 제외하고 재산 70%를 가져간다는 내용이었다.
아내와 내가 버는 돈은 비슷하다. 난 기본 연봉이 아내보다 많은 대신에, 지금 직장은 보너스가 적고, 아내는 기본급이 낮은 대신에 연말 보너스가 경차 살 정도는 나온다. 그래서 총 연봉으로 하면 거기서 거기였다.
돈 관리. 모두 아내가 한다. 내 월급이 들어오면 매달 엑셀 파일로 들어온 돈과 나갈 돈을 기입하고 용돈 40만 원을 제한 후(아내도 동일 40만 원) 아내에게 이체했다. 일이 바쁠 때는 밀려 엑셀 파일을 늦게 공유할 때는 있어도 모든 달에 대해 빠뜨린 적은 없다.
여기엔 가죽공예용으로 필요한 물건 구매액와 정산받은 금액도 포함하여 보냈다. 하지만 아내는 결혼하고 두 달 정도 뒤에 가계부를 정리해서 메일로 보낸 것 외에 한 번도 받지 못해서 (당연히 알아서 잘 모으고 있을 거란 믿음에) 현재 가계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패착이다.
물론 중간중간 목돈을 모아 아내가 보내주어 주담대를 갚고 간간히 얼마정도 모였다는 말은 들었었지만 정확한 금액은 모른다.
“말이 안되는데, 지금 이걸로 싸우고 싶지 않으니 변호사랑 상담해 볼게.”
넌지시 변호사 이야기를 꺼냈다. 소송 건 것을 눈치 채진 못했겠지만 슬쩍 ‘변호사’라는 단어를 통해 압박을 주고 싶었다.
다음 날.
점심 시간 즈음 변호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상간남에게 보낼 소장을 회사로 하면 위험하다는 의견이고, 휴대폰 번호와 집 주소가 필요한데 혹시 알고 있냐고 물었다. 휴대폰 번호는 아내에게 걸려왔을 때 봐서 외우고 있었고 집주소는 상간남의 SNS를 염탐할 때, 스토리에 예비군 교육필증을 올렸었는데 거기 집주소가 찍혀있길래 캡쳐 해둔 것이 있었다. 변호사에게 그 사진을 보내고 괜찮은 지 물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SNS에 올린 거라 문제없습니다.”
둘은 사내 불륜이라, 솔직히 법원에서 날라간 송장을 회사로 받게 해서 난감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이게 어려울 수 있다고 이미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아쉬움을 삼켰다.
며칠 뒤.
집에 오니 아내가 나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이라는 매개체가 있기에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법도 한데 투명인간 취급하듯 아이와만 이야기하고 나를 무시했다.
‘아, 오늘 소장이 왔구나.’
휴대폰으로 법원 사이트에 들어가 아내가 오늘 등기를 받은 것을 확인했다.
그래, 어떻게 나오나 보자.
소장이 도착하고 3일 뒤, 변호사에게 카톡이왔다.
[상대측에서 형식적인 답변서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둘이 같은 변호사를 선임했네요.]
변호사가 답변서를 보내주었다.
맨 위에 사건번호와 원고인 내 이름, 그 밑에 피고에는 아내이름 외 1명 이라고 적혀있었다.
[청구취지에 대한 답변]
1. 원고의 피고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원인에 대한 답변]
피고의 소송대리인은 최근 이 사건을 수임한 관계로 사실관계 파악에 시일이 필요합니다. 이에 청구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추후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변호사가 해준 말과 검색을 통해 이렇게 올 것을 예상했다. 소장을 받고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원고가 소송한 내용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일단 형식적인 답변서를 보내고 추후 서면을 제출한다.
위 내용은 예상했지만, 둘이 같은 변호사를 쓸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여전히 둘이 붙어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에 가슴이 조금 저렸다. 둘이 계약한 곳은 법에 무지한 나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법무법인이다. 그래도 설마 질 일은 없겠지.
그날 밤, 아내가 먼저 대화 신청을 하여 아이를 재우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소송 했더라?
“응, 답변서 잘 받았어.”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어?”
“당신이 계속 거짓말 했잖아. 내가 몇 번이나 먼저 말할 기회를 줬는데도. 그리고 협의이혼? 부정행위는 당신이 해놓고 협의이혼 하자고? 그리고 재산분할은 그게 말이 되니?”
“그래 어디 한 번 해봐.”
아내는 분노했다. 지금 화내야 할 사람이 누군데.
우리는 최소한 아이를 위해 아이와 함께할 때는 티를 내지 말자는 것에 동의했다. 며칠 뒤면 연말이다. 어쩌면 아이에게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온전한 가정을 지켜주고 싶다는 것에 대한 합의였다.
12월 30일엔 목장 체험 예약을 해뒀었다. 전 날 거의 폭설에 가까울 정도로 눈이 많이 왔지만 타이어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목장으로 이동했다. 소 젖 짜는 것을 체험하고, 피자를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아이가 너무 좋아했다.
12월 31일엔 아이가 좋아하는 오리고기집에 다녀왔다. 안에 작은 놀이 시설이 있어서 아이는 고기가 익을 동안 거기서 놀았고,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리고기는 맛있었다. 이쪽은 아내의 본가 근처라, 이혼하면 내가 다시 올 일이 없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아 화장실에 다녀왔다. 돌아오니 아이가 아내 옆에서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에 흐뭇했다. 그 날은 셋이 같이 잤다.
24년 1월 1일. 아내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떡국을 끓였다. 그 사이 나는 아이랑 놀이방에서 놀고 있었고 맛있는 냄새가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아이가 배고팠는지 그 냄새에 얼른 문을 열고 나갔고 계란말이와 샐러드, 아이가 좋아하는 용가리 치킨도 있었다.
오후에는 다 같이 집 근처 작은 산에 올라가 새해의 기운을 맞이했다. 중간중간 놀이터나 체조기구가 있는 곳에서 놀면서 쉬고, 돌아와서 아이를 씻기고 이 날도 셋이 같이 잤다.
며칠 뒤에 변호사를 통해 자녀양육 안내문을 받았다. 법원에서 보낸 링크의 동영상을 모두 시청하고 소감문을 써야 했다. 전에 아내와 합의했듯이, 우린 아이를 재우지 않는 사람이 2시간 외출을 하는 것에 동의했었다.
아내가 재우는 날이라 서류를 챙겨 카페에 가서 동영상을 보는데, 이혼 가정의 아이 심리상태와 이혼 후 건강한 가정의 모습 (비양육자가 양육자에게 아이를 인계 받고, 아이와 어떤 시간을 보내야 아이에게 충격이 덜 할지 등에 대한)을 보여주었다.
나름 모범사례를 동영상으로 만들었을텐데..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아 카페에서 눈물을 훔쳤다. 아이에게 고작 미안하다는 말로는 너무나도 부족할 결핍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다시 자각하며 울면서 끝까지 시청했다.
소감문은 자필로 작성해야 해서 시간이 조금 걸렸다. 문제는 그 다음 작성해야 할 양육계획서인데, 아이의 양육권을 내가 받는다는 전제로 써야 하기에 결국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육아를 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해 부모님께 사실을 알려드리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지 알아야 했다. 감정을 조금 추스리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아들~!”
어머니의 밝은 목소리에 왈칵 눈물이 나왔다. 이걸 말하면 부모님이 큰 충격을 받으실 텐데.. 그 동안 효자는 아니었어도 불효는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아야 하는 사실이 끔찍했다. 전화로 말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래, 찾아 뵙고 말씀드리자.
“이번 주말에 아들이랑 집에 갈게요. 자고 갈게.”
자고 간다는 말에 어머니는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본가와 집이 차로 30분 정도 거리라 그 동안 자고 올 일이 거의 없었기에 “손주랑은 내가 잘게, 할머니랑 잔다고 해도 괜찮지?” 라며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대답에 잠깐 답을 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현관 앞에서 잠시 마음을 진정 시키고 들어갔고 아내와 아이는 자고 있었기에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아프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것, 결국 이혼은 할 것이고 난 이겨내야 한다.
‘강해지자. 강해지자.’
이 말을 되뇌이며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