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도. 그래서 나는 법정에 섰습니다.]-17화

가사조사관

by 첩극



가사조사관의 면접 기일은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유치원에서 우리에게 줄 카네이션을 만들고 있을 때, 나와 아내는 가정 법원에 가야 했다. 다행히 오후 두 시에 잡혀서 오전엔 근무를 하고 오후 반차를 쓰고 나왔다.


첫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기에 실제로 가정 법원에 온 것은 처음이다. 도착한 층엔 아내가 먼저와있었고 한 칸 떨어져 옆에 앉았다. 보아하니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같은 이유로 온 사람들이고 붙어있는 남녀는 없는 걸 봐서 우리랑 별 다를 게 없었다.


‘참 많이도 이혼하네.’


부부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한다고 했나 그런 기사를 생각하며 앉아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 얼굴엔 피곤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간혹 작은 한숨이 흘러나올 뿐 어디서도 대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누구나 한때는 사랑을 약속하고 백년해로 선언하며 결혼식장을 나섰을 텐데, 결국 이곳에 모여 서류 한 장으로 갈라서려 하고 있다니.


입가에 쓴웃음이 맴돌았다. 결혼이란 게 누군가에겐 이렇게 허망한 끝으로 흐를 수 있다는 걸 오늘 이 자리에서 또렷하게 체감했다.


우리 앞 순서로 들어갔던 부부가 나왔고, 가사조사관이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우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 분이 돌아오면 이제 시작이다. 오늘을 위해서 많이 공부하고 할 말을 생각해 두었다. 마음을 다잡는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셨어요? 일단 편의상 원고라고 할게요. 원고에게 먼저 질문하고 대답을 다 듣고 그 다음 피고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진행방식은 가사조사관이 질문을 던지고 한 쪽이 먼저 대답하고, 상대는 그 말을 끊을 수 없이 다 들은 뒤 똑 같은 질문에 답을 하는 대질 방식이었다.


언제 결혼했는지, 재산 형성은 어떤 식으로 관리되었는지, 양육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양육’이다. 양육이라는 단어가 가사조사관의 입에서 나올 때 마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 준비해온 답을 했다.


이 과정에서 나도 아내도 서로 거짓을 말하지 않았기에 그 부분은 고마웠다. 남편이 활발하게 육아에 참여하며 둘이 놀러도 다니고 해외여행도 가고 아이가 아빠를 좋아한다. 관계가 잘 형성 되어있다고 해주었다.


나 역시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 키우는데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으며 현재 맞벌이라 처가의 도움을 받고 있고 출근할 땐 아내가 처갓집에 아이를 맞기고 퇴근할 때는 내가 데리고 와서 저녁을 먹이고 있으면 아내가 퇴근한다는 것 등에 대해 다 이야기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네가 잘못했네 아니네가 아닌, 벌어진 과거에 상관없이 정말 아이를 위한 대답만 했다.


그 다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왔다.



“주 양육자가 되었을 때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말해주세요.”


이번엔 아내가 먼저 대답하였다. 지금 집에서 산다면 지금과 같이 하면서 근무시간을 줄여 등하원 모두 본인이 케어 하겠다. 여의치 않으면 부모님 댁에 빈 방이 많아 들어가 살 생각도 있고 부모님과 이야기가 다 된 상태이다. 현재 아이가 태어나고 크고 있는 곳이 이곳이기에 아이의 혼란을 최소화하며 양육하겠다는 말이었다.


나는 아이와 친 조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실 수 있다는 점과 이미 단지 내 유치원에 등록가능한 것도 통화로 확인되어 언제든 바로 전학 갈 수 있다. 주재원은 아내가 내 약점으로 먼저 언급을 했기에 회사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이야기했다.


가사조사관 면담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진행되었다. 양육환경을 보기위해 집에 방문할 것이라며 날짜를 조율했다. 변호사에게 들은 설명에 의하면 아이가 어릴수록 가사조사관과의 면담과 후에 요청하는 집 사진 등으로 대체가 된다고 했는데 가사조사관은 출장을 오겠다고 하셔서 둘 다 당황했다.


“조사관님, 아이는 아직 저희가 이혼할 것이라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엔 가사조사관이 당황했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가사조사관이 집에 온 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않겠다는 말에 감사하다고 하며 방에서 나왔다.


아내는 먼저 내려가버렸고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고 내려가려고 하니 조사관님이 나와서 무슨 종이를 건넸다. 출장지 거리에 따라 이동비용을 내도록 되어있는데 3만원 정도로 기억한다. 1층에 가서 수납하면 된다는데 현금으로 밖에 안된다 하여 근처 은행을 찾아 돈을 뽑고 다시 법원에 가서 내고 집으로 갔다.


아내는 먼저 도착해서 아이랑 놀고 있었고 예상했던 대로 식탁 위에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색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이 놓여있었다.


거기엔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글자가 삐뚤삐뚤 적혀 있었다.


그 날은 조금 울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