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재판
재판일 당일, 마찬가지로 법원 로비에서 변호사를 만났다. 이번이 제발 마지막 재판이길 바라며 재판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 상대측 변호사는 같은 사람이 나왔다.
“오늘도 아내랑 상간남은 안 나왔네요.”
“어떻게 나올 수 있겠습니까. 서면으로만 아니라고 주장하지 본인들도 제정신이면 나오질 못하죠. 제가 여태 진행한 이혼 소송 중 가해자가 출석한 경우는 못 봤습니다.”
조금은 걱정을 했었다. 아내가 재판장 출석하고 악어의 눈물을 흘리면 판사 입장에서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조금 기울진 않을까. 다행히 아내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 회사에 있을 아내는 재판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 어떤 심정으로 있을까. 당신도 이 시간이 고통스러울까.
“양육권은 솔직히 어떻습니까? 거의 마지막 재판인데… 제가 가능성이 있을까요?”
“냉정히 말하면 부정적입니다. 미취학 자녀일 수록.. 남편분께 양육권이 가는 건 쉽지 않습니다. 비록 피고가 술 취한 채 아이를 돌보지 않던 영상을 증거로 내기는 했지만 하나만 제출했고 반복적인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죠…”
양육권을 위해 많은 검색을 했지만 무엇도 내게 희망을 주는 글은 없었다. 그럼에도 가능성이 0%는 아닐 거라고 믿으며 양육권이 내게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상간남은 대응 한 번 하지 않을까요?”
“해봤자 거짓말인데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4차 재판이 진행될 때 까지, 상간남의 입장에서 대응한 서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나마 낸 것이 출장신청서 뿐인데 그것도 아내가 낸 서면의 일부 증거로 제출했을 뿐이다.
정말 비겁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열렬히 사랑해서 그랬다고 위자료를 감수하더라도 진심이라고 했다면 지금처럼 씁쓸하진 않았을 것이다. 고작 둘 사이는 그 정도 뿐이었다. 그 순간의 불장난에 나와 아내는 이혼하게 됐고 고통은 아이가 받고 있다.
지난번과 달리 재판이 밀렸는지 한참을 기다렸다. 예정된 재판 시작 시간에서 1시간이나 밀린 상태였다. 초조하다. 또 이곳에 올 일이 없으면 좋으련만.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재판장의 문이 열렸다.
“사건번호 2023드단 XXXXXX 들어오세요.”
오늘도 판사의 모습은 지난 번과 똑같았다.
판사복에 짧은 단말머리가 몇 개월 지났음에도 전혀 길어지지 않은 걸 보니 늘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는 사람 같았고 그 모습이 내게는 참 차갑게 느껴졌다.
판사는 내 변호사와 상대 변호사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는데, 모두 서면으로 제출된 것에 대한 확인이었다. 이번 제출한 서면도 지난 번처럼 재판 1주일 전 쯤 제출했기에 상대 측에서 서면으로 반박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내측 변호사는 우리 쪽에서 제출한 서면을 읽고 오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판사가 물어보는 질문에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자신이 낸 서면에 대한 질문에도 대답을 버벅인다.
“그 부분은 제가 원고측 서면을 오늘 아침에 받아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재판을 1회 더 진행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프로페셔널함을 깎아 먹는 소리를 저렇게 쉽게 할 수가 있나 싶었다.
그리고 재판을 연장해달라니 설마 저게 받아들여지진 않겠지.
“안됩니다. 이미 피고측에서 제출한 것으로 충분하고 더 진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재판은 오늘을 끝으로 하겠습니다. 다만 추가로 제출하실 것이 있으면 차주 내로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재판 연기 없이 서면으로만 받겠습니다.”
다행이다. 더 이혼이 늦어지진 않겠구나 싶어 안도했다.
“원고는 지난 번에도 출석하셨지요. 오늘이 마지막 재판인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가슴이 철렁했다.
왜 판사가 내게 질문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까. 준비한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짧은 순간동안 무엇을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아내가 얼마나 나쁜 배우자인지를 강조할까, 엄마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할까 제출할 증거 중에 무엇을 중점으로 봐 달라고 해야 할까.
“너무 힘듭니다. 이제 그만 끝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보같이 대답했다.
아내로서 얼마나 부도덕한지 말하고 싶었는데 차마 그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은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것은 단 한 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재판은 오늘로 종결합니다. 그리고 판결일은 2월 NN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재판이 끝났다.
잠깐 당황했다.
판사가 말한 판결일을 고지했을 때 미뤄 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럴 수 없음을 알면서도 판결일을 미루고 싶었던 이유는 하필 그 날이 아이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가사조사관의 조사기일도 어버이날이었는데 판결일이 아이 생일이라니. 운명의 장난 같았다.
그렇게 판결일은 아이의 생일이자 가족이 해체되는 날이 되어버렸다.
변호사와 인사를 하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착잡한 마음과 달리 겨울 하늘은 맑았다.
이제 모든 과정이 끝났다.
남은 것은 판결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