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변호사와 헤어지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오늘이 4차 재판인 것을 알고 계셨기에 연락을 기다리고 계실 터였다. 메시지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담담한 목소리로 직접 전해 드려야 걱정을 덜 하실 것이라 생각했다.
“네, 그렇게 끝났어요. 더 재판은 없고 판결일은 아까 말씀드린 그 날이요.”
“어쩌다 하필 또 판결일이 그렇게 됐다니….”
‘그러게요’ 라는 말은 뒤로 삼켰다. 하나 밖에 없는 손자의 생일에 부모는 혼인 관계가 끝난다.
어머니의 심정 또한 오죽 하실까.
집에 도착해서 전날 싸지 못한 출장 짐을 꾸렸다.
꽤 오랬 동안의 전시회라 정장을 두 벌, 와이셔츠는 세 벌을 챙겼다.
넥타이를 고를 때, 아내가 선물한 넥타이가 생각났지만 챙기지 않았다.
앞으로도 영원히 찰 일은 없을 것이다.
출장지에서 만난 팀장님은 “괜찮니?” 라고 먼저 물으셨다.
분명 어제가 첫 날이라 힘든 일들이 많았을 텐데 이 와중에 날 먼저 걱정해주시는 모습이 감사했다.
전시회 중 어느 날은, 다같이 저녁을 먹고 2차로 가볍게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다들 피곤하다고 먼저 가버려서 나랑 팀장님만 남게 되었다.
예전에도 왔던 지역이고 그 당시에도 둘만 마셨던 멋진 루프탑 펍이 있었다. 종종 생각날 정도로 멋진 곳이었기에 이번에도 그 곳에 가기로 했다.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시키고 내일 미팅 잡힌 업체 들에 대해 간략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윗 직급 분들이 계시지만 어쨌든 담당자는 나였기 때문에 내가 업체와의 현재 사정, 관계를 가장 많이 알고 있어서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지에 대해 설명했다.
내일 아침에도 같이 온 출장자들에게 브리핑 해야 하지만 나도 예습 차원이라 생각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팀장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너무 디테일한 것 까지 이야기를 했나 잠깐 생각했는데 곧 팀장님의 표정이 왜 어두웠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한데.. 나도 시간될 때 이 이야기를 꼭 해보라고 인사팀에서 지침을 받아서….”
무슨 말일지 바로 알 것 같았다.
애써 피하고 회사 내에서 이야기가 나와도 모른 척했던 주제다.
“생각은 좀 해봤어?”
차마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주재원으로 나가는 것은 결혼을 준비하며 미래 계획을 세울 때 언젠가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30대에 이루고자 하는 리스트에 올려 놨었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결국 나갈 수 있는 시점이 되었음에도 아내의 외도로 모든 게 무너졌다.
“난 어떤 대답을 들어도 괜찮아. 같이 더 일할 수 있다면 나야 좋지.”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어떻게든 나가는 쪽으로 설득하라고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회사란 그런 곳이니까. 회사의 계획에 개인의 사정은 후순위다. 10년 가까이 직장인으로 살았지만 개인을 위한 회사는 본 적이 없다.
“판결일이 2월이라고 했지? 그 때에는 답을 줄 수 있는 거야?”
이전에 회사 대표님과 이야기할 때 양육권과 상관없이 나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후로 계속 선배 주재원들의 응원, 위로와 함께 압박도 받고 있었다. 부정적으로, 긍정적으로 양 쪽 모두 생각해봤다.
내가 양육권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은 싸움에 미리 진다고 가정하고 내 미래를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입밖으로 내지 않았을 뿐 어느정도 방향은 정한 상태였다.
팀장님은 초등학생 외동 아들이 있다. 몇 년간 본 팀장님은 정말 가정적인 분이었다. 아들과 함께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앞에서는 아들과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신다. 이것도 이 분 나름의 배려임을 안다.
적어도 팀장님께는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는 판결 나오기 전까지 결정하지 않겠다고 말하려 합니다. 다만 팀장님께는 제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씀 드리고 의견을 구하고 싶어요.”
아이는 엄마아빠와 같이 살지 않게 된 것에 대해 이미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을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고, 아이가 그나마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리고 이혼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아이에게 부모가 이혼했다는 것은 아이가 더 큰 뒤에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주재원을 나가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가 해결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이유로 따로 살게 되었어.’
라고 했지만 1~2주에 한 번씩 나를 보는 것이 과연 아이한테는 좋은 걸까.
아들과 동갑인 처조카는 아빠가 함께하지 않는 삶에 익숙하다.
아이가 훨씬 어렸을 때부터 동서가 주재원으로 나가있어서 휴가 때만 봐야 했으니까.
아들에게 아빠가 해외에서 일하기 때문에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간접적으로 겪고 있는 일이기에 이게 아이가 더 받아들이기 쉽고 아이에게 ‘아빠가 멀리 있는 삶’을 덜 낯설어 하길 바랐다.
내가 없는 기간 동안 엄마와 외갓집에서 사는 게 익숙해지는 것이 미래를 생각했을 때 아이에게 덜 아플 것이라 생각했다.
친구들과 부모님의 의견도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미래를 봤을 때 커리어적으로 주재원을 몇 년이라도 나갔다 오는 것이 도움이 될 거고 주재수당으로 생활하고 본급을 모아서 금전적으로 사회적으로 단단한 아빠로 버티고 있어야 언젠가 아이가 아빠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버팀목이 되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이 많았다.
내가 망설인 가장 큰 이유는 혹시라도 아이가 아빠의 부재를 견디지 못할 까봐,
그리고 내가 아이의 성장과정을 옆에서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출장을 2주만 다녀와도 뭔가 조금 더 큰 거 같은 느낌을 받는데 몇 개월 마다 만나게 된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커가면서 겪는 과정을 모르는 아빠로 느껴져 거리감을 느끼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팀장님께 내가 고민했던 것과 결론을 말씀드렸다.
한참을 말없이 계시더니
“다 공감할 수는 없지만 왜 그런 선택을 하는 지는 이해할 수 있어.”
라고 하셨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시며 맥주잔을 들어 내 잔과 부딪쳤다.
출장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중요한 고객사와 연간 계약도 맺었고, 어떤 고객는 기존 예약된 오더를 증대하는 것으로 협의를 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잘 끝냈다는 안도감과 아무도 반겨줄 사람 없는 집으로 가기가 싫다는 마음이 함께 올라왔다.
바쁜 1월이 끝나고 2월이 다가왔다.
어느새 아이의 생일까지 한 손가락에 셀 수 있을 만큼의 날이 되었음을 인지했을 때,
법적인 부부로서의 삶도 끝나는 순간이 오고 있음에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아들 생일날이 되었다.
지난 주말에 아이를 봤을 때 아이는 본인의 생일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내 생일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엄마 아빠랑 밥 먹을 거야.” 라고 대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아들 생일인데 엄마 아빠가 같이 축하해 줘야지.”
그 말에 엄마 아빠와 함께 식사할 수 있다고 좋아했던 지난 주말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은 동시에 길었던 이혼소송의 판결일이다.
변호사는 판결내용이 나오면 메시지를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점심을 먹고 변호사의 연락을 계속 기다렸으나 아무 연락이 없었다.
시간이 안 간다.
지난 번처럼 앞의 재판이 밀렸으려나.
식어버린 커피를 입에 갖다 대어 목만 축였다.
모니터의 글자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든 감각이 휴대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지잉-
[선고 내용입니다.]
드디어 변호사에게 메시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