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도. 그래서 나는 법정에 섰습니다.]-40화

행복했으면 좋겠다

by 첩극


금요일 오후 반차를 쓰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회사 밖으로 나와 올려다본 하늘이 참 맑았다.

봄이라는 계절은 사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산뜻한 바람과 막 피고 있는 꽃들의 향기로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곧 있으면 벚꽃도 피겠지.

매년 아내와 아이랑 벚꽃을 보러 이곳 저곳 다녔는데, 올 해는 보지 못하겠구나.


아내는 항소를 하지 않았고 나도 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이제 재판은 완전 종결이 되었다.

오늘 반차를 쓴 이유는 변호사 사무실에 들렸다가 구청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재판이혼으로 이혼판결이 날 경우 원고가 이혼신고 의무자였다.


변호사를 만나 감사 인사를 전하고 판결문 정본과 판결확정 증명서를 받았다.

내 신분증은 지갑에 있고 판결문을 증빙으로 제출하면 된다.

이혼신고에 아내의 신분증과 도장 등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구청 입구에 도착하자 결혼식 전 아내와 손을 잡고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러 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의 손을 잡고 놓지 말자 약속 했었는데.

끝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고개를 젓고 정신을 차린 뒤 구청 안으로 들어갔다.


준비한 서류들을 다시 확인하고 창구에 가서 번호표를 뽑았고 금세 내 차례가 왔다.

담당 구청 직원은 뭘 묻지도 않았다.

단지 필요한 서류를 다 가져왔는 지만 확인하고 늦어도 2주 내에는 처리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이혼신고까지 끝이 났다.

남은 건 전세 계약 마무리 뿐이다.



다음 날인 토요일 오전. 부동산으로 향했다.

오늘은 세입자 부부가 와서 잔금을 치르는 날이었고 계약서를 작성한 시점은 아직 이혼이 안된 공동명의 상태였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을 했다.

세입자에게는 계약 후 몇 주 내로 소유자가 나로 완전 변경된다는 것을 사전 고지해 두었다.


“어디야?”

“부동산 사무실 안에 있어.”


전화를 끊고 아내를 기다렸다.

그 사이 부동산 사장님이 관리사무소와 연락하여 오늘까지의 공과금 내야 할 금액을 확인해 주었다.


곧 아내가 들어왔다.

살이 조금 빠진 것 같다.


부동산 사장님은 준비한 서류들을 꺼내고 우리와 세입자 부부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계약서에 인감 도장을 찍었다.


“좋으시겠어요. 아이도 딱 시기 좋을 때 가니까 영어도 금방 배울 거고.”

“하하.. 네.”


어색한 대화 후에 세입자 부부는 도배 업체가 도착했다고 하여 먼저 일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한 법무사분이 도착하셨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부동산이 공동명의 였고 이혼에 의한 재산분할과 소유권 이전이 일어나는 프로세스라 법무사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생각했다.

법무사는 아내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소유권 이전등기와 등기원인 등에 필요한 서류들을 아내에게 건네었다. 법무사는 필요한 서류들을 아내에게서 다 받은 뒤 떠났고 우리는 부동산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잠깐 이야기 좀 할 래?”


아내의 제안에 그러자고 했다.

나는 관리사무소에 들러 잔여 공과금을 내야 했기에 아내가 먼저 카페로 향했다.


아파트와 관련된 모든 일을 마무리한 후, 아내가 있다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는 집 근처였고 대형 통창과 독특한 인테리어로 나름 동네에서는 유명한 곳이었다.

아내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여기 카페 생겼을 때부터 같이 오고 싶었는데, 이렇게 오게 됐네.”


아내의 말에 나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같이 오고 싶었는데 이렇게 올 줄은 몰랐다.


“언제 출국이야?”

“25일”

“얼마 안 남았네. 준비 잘 하고 건강 잘 챙기고.”


아내의 말 속에 반 쯤은 온기가 느껴졌다.


“그 동안 나랑 사느라 수고했어.”


왜 인지 모르지만 14년의 인연이 끝이라고 생각하니 절로 이 말이 나왔다.

당신의 20대는 참 빛났는데, 결혼식 때 너의 봄이 끝나지 않게 해주겠다고 선언했는데..

나 역시 당신에게 좋기만 한 남편은 아니었을 테니까.

어떤 일이 있었는 지는 차치하고 고생했다 말하고 싶었다.


아내는 잠깐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미안했어. 자기 좋은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길 바랄 게. 자기는 그럴 자격 있으니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동의해서도, 부정해서도 아니었고 그저 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난 과거에 대해서도, 앞으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먼저 일어날게.”


아내는 가방을 들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멀어지는 아내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두 모금밖에 마시지 않은 커피를 그대로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기 전 날엔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아이와의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시간을 마지막으로 아이와 짧은 이별을 맞았다.

집 근처 공원을 걷고, 놀이터에서 놀고 아이가 좋아하는 햄버거를 먹었다.


아이도 평소와 같았다.

유치원 이야기, 친구 이야기 그리고 별거 아닌 이야기들.

하지만 나에겐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기에 눈이 카메라 렌즈라고 생각하고 꾹꾹 눌러 담았다.


아이의 이야기를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의 말을 끊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두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작별 인사가 아니라 내일도 똑같을 거라는 믿음일 테니까.


아이를 데려다 주는 차에서 아이는 잠들었다.

잠 들어있는 아이를 깨지 않게 조심스레 안아서 아내에게 넘겼다.

아내는 영상통화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


아이에게 ‘아빠 이제 간다. 금방 올 게.’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보내는 게, 차라리 잠든 상태로 하루를 끝내는 게 아이에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아내가 아이를 안고 침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처갓집 현관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마지막으로 뒤를 한 번 돌아봤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