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도. 그래서 나는 법정에 섰습니다.]-39화

정리

by 첩극


토요일엔 강남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긴 소송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해준 친구들이기에 이 사건이 끝났음을 알리고 맛있는 걸 사주고 싶었다.

친구들은 고생했다며 위로를 건네었고 새로운 미래를 응원한다며 잔을 부딪쳤다.


전날 술을 마셔서 인지, 아니면 판결이 나서 긴장이 풀린 건지 일요일에 늦게 일어났더니 아내에게 메시지가 와있었다.


[부동산에서 연락 왔어. 오늘 저녁 일곱시에 온대. 그리고 집 팔 거야 아님 집에 계속 살 거야? 명의 이전하고도 살 거면 매물 내리게.]


메시지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지금 이 집에 살고 있는 건 나인데 왜 나에게 먼저 묻지 않고 시간을 잡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소한 배려할 필요도 없는 사이라서 일까.


오늘은 본가에 가서 부모님과 저녁을 먹기로 했었다.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오늘 집 보는 것은 어렵다고 말하고 월요일 저녁으로 시간을 조정했다.

그리고 잠시 씻고 오는 사이 몇 개의 메시지가 더 와있었다.


[팔릴 때까지 기다리면서 공동 명의로 되어있으면 나도 계속 거기 이용해도 문제 안된다고 하고 이래저래 정리가 늘어지니 자기 소유로 있는 부동산에 대해 대출하고 나머진 신용대출로 메꾸던 뭐던.. 미리 검토해봐.]


[계속 양육 외의 걸로 이야기 나누는 것도 피차 불편할 거 같고 나도 거기 집 명의 되어있으면 집에 들락 거리면서 내 물건이나 이런 거 찾으러 들어가고 그러는 상황도 길어질 거 같으니까 오래 걸려서 서로 껄끄러워 지지 말자.]


[찾아보니 판결 확정 후 2주 정도 내로는 정리한다고 하더라고]


[그 기간 즈음까지 준비해. 나나 자기나 항소 안한다면 이지만.. 조속히 정리하는 게 그나마 서로한테 마지막으로 하는 배려일 거 같아서]


어차피 법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것들이니 나도 서두르는 게 낫긴 하다.

하지만 아내의 말에서 ‘배려’라는 단어가 나오자 발끈했다.


[공동명의라 하더라도 이혼 소송 중/완료 상태에서 공동주거에서 일탈했기 때문에 타인의 주거로 간주되고 난 들어오지 말라고 얘기했고 도어락 비밀번호도 바꿨다고 말했어. 난 접근금지 신청을 할 수 있고, 당신도 뭐 집행권인가 할 수 있겠지.


어차피 끝난거 매끄럽게 마무리 짓고자 하는 거 아는데, 나 아직 판결문 받고 변호사랑 통화도 못했으니 법적으로 이후 어떻게 처리되는 지는 나중에 이야기 합시다.


그리고 집은 3월 내로 해결 보자고 이야기 했잖아. 부동산에는 내일 오라고 했고, 나도 팔 수 있으면 빨리 팔고 싶고 안되면 전세로 돌려서라도 판결 금액 넘길 테니 좀 기다렸으면 해.]


아내에게 곧 답장이 왔다.


[그래 변호사랑 통화해 보고 이야기 하자. 아무튼 전세를 하든 뭐든 3월 내로 정리해줘.]


나도 바로 답장을 했다.


[일단 당장 할 수 있는 자동차 명의 이전부터 하자. 나는 양도자라 따로 제출할 게 없더라고. 판결에 의한 강제 이전이라 내가 양도 증명서를 작성할 필요도 없고 자기쪽 변호사랑 확인해보고 진행해.]


아내에게 더 발끈해서 화를 내봤자 의미가 없다.

이젠 정말 정리를 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다음 날, 인사팀장님이 면담을 신청했다.


“어떻게 결과가 나왔을 지는 모르지만 우선 많이 힘드셨을 텐데, 위로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승소했고, 양육권은 아내에게 넘어갔습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몸 건강이 우선이니 몸부터 잘 챙기세요.”


인사팀장은 부임한지 반 년이 조금 넘었다.

이전 인사팀장님과 다르게 직원들과 기싸움도 하지 않았고 가능하면 직원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주시는 분이었다.

어차피 어떤 이유로 면담을 신청했는지 알고 있고 여태 배려해 주셨기에, 내가 생각했던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도리에 맞다 생각했다.


“혹시 현재 미국 법인장님은 어떻게 예정 되어있나요?”

“3월에 귀임이 확정되었습니다. 과장님이 나가시든 안 나가시든 귀임할 것이고 미국 법인의 차장님이 당분간 법인장 대행을 할 예정입니다.”


내 결정과 상관없이 미국 법인장님은 귀임이 확정되었다.


“그렇게 되었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가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인사팀장님이 기다렸던 말일 텐 데도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숨돌릴 쉬간 정도 후에 입을 여셨다.

“어려운 결정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려는요. 제가 과장님 상황이었어도 똑같이 했을 겁니다. 당장 내가 불안정한데, 갑자기 타지가서 근무하라 그러면 누가 선뜻 가겠다고 하겠습니까. 다시 한번 어려운 결정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사팀장님의 성격일까, 아니면 인사 담당자로서의 쌓아온 역량일까. 배려심이 느껴졌다.


“과장님이 가실 지 안 가실 지는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기존 나가는 일정보다 많이 늦어졌기 때문에 인사팀에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발령에 필요한 프로세스는 끝났고 대사관 인터뷰 날짜만 확정 지으시면 됩니다. 박대리에게 이번 달 인터뷰 가능날짜를 확인하고 메일 드리라 하겠습니다.”


그랬구나.

내가 결정만 내리면 바로 발령 낼 수 있게 회사는 이미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

회사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집단이니 이해를 해야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혹시 인터뷰를 보면 승인유무를 언제 알 수 있나요?”

“제가 이 회사에서 누군가를 주재원 발령 진행하는 것은 과장님이 처음이지만, 이전 회사에서 미국 발령했던 프로세스를 보면 당일 인터뷰 보는 담당 영사가 여권을 돌려주지 않으면 승인된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리고 보통 10일 이내 비자가 붙어있는 여권이 회사로 옵니다.”

“그러고 제가 발령은 언제 나는 건가요?”

“그건 대표님과 이야기 해봐야겠지만 여권 수취하면 차주에 바로 가라고 하실 겁니다.”


지금 대표님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바로 나가는 것은 어려웠다.


“죄송하지만 조금 더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은데…”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재산 분할 때문에 일단 집을 처분해야 합니다. 현재 집을 보러 오는 분들 중에 전세로 3월에 바로 들어올 수 있다는 분이 계셔서 그 분과 계약을 하려 합니다. 아직 집에 있는 제 짐들도 본가로 옮겨야 하구요. 그리고 아버지로서.. 3월은 최대한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부탁 드립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저도 이혼이 끝나자 마자 바로 발령내는 것은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3월은 법인장님과 한국에서 인수인계 받는 시간으로 조율을 하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인사팀장과의 면담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바로 대표님 실로 향하는 것을 보니 나가겠다는 것에 대한 보고를 하시려나보다.



며칠 뒤 3월 말 전세 입주를 희망하던 분은 아내와 함께 한 번 더 집을 볼 수 있냐고 부동산을 통해 문의가 왔었고 나는 그러시라고 했다.


“집이 되게 넓네요. 가구가 없어서 그런가, 혹시 가구는 왜 없는 거에요?”


불편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궁금해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아내가 짐을 들고 나갔어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으니까.


“제가 곧 주재원 발령이 나서, 아내랑 아이짐은 우선 빼서 처가로 옮겼어요. 저도 주중에는 여기랑 본가랑 왔다갔다 하면서 지내고 있어서 지금은 관리만 하러 오는 상태예요.”

“아 그래서 3월에 바로 계약하실 수 있다고 하셨구나.”


하얀 거짓말이 이런 걸까.

상대가 굳이 알 필요는 없으니까.


“계약금은 지금 바로 이체할 게요. 혹시 짐은 언제 빼실 건가요? 도배는 저희가 좀 하고 싶어서 조금 먼저 빼주시면 좋겠는데.”


예비 세입자와 날짜를 조율하고 세입자가 정식으로 들어오기 일주일 전 토요일에 짐을 먼저 빼기로 협의했다.

이렇게 집도 정리가 끝났다.


그 사이 아내는 내 자동차 명의를 이전했고, 나도 전세금을 받아 재산분할 금액을 맞춰주면 되니 이제 금전적인 이슈도 없었다.


세입자를 보내고 휴대폰을 보니 입금 알림이 와있었다.

확인해보니 천 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 입금 되어있다.

씁쓸했다.

이 돈은 더러우니 쓰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안쓰는 통장으로 옮겨두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일들이 하나씩 지워지며 불투명했던 안개가 걷히고 있다.

그 뒤로 보이는 장면은 어떤 모습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