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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준 Aug 26. 2019

조국 말고 우리에게 묻고 싶은 것

왜곡된 공정성과 능력주의, '조국 사태'에서 배워야 할 것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65017&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심각성을 인지하는 것인지 조 후보자는 25일 사무실 출근길에서 "개혁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이 문제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음을 고백한다"면서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들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말았다"고 말했다. 또 "기존 법과 제도를 따르는 것이 기득권 유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조 후보자는 23일에도 "국민의 따가운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지만 여론, 특히 청년층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일부 대학에서는 조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12일 조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25일 기준으로 답변 기준인 20만 명을 넘은 21만 3천여 명이 이에 동의했다.


또 조 후보자의 과거 SNS 발언이 연일 조명되면서 '내로남불'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나는 조 후보자가 지난 날 사회를 바꾸기 위해 활동했던 일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 덕분에 바뀌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성찰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단국대 의대 의과학연구소에서 2주 가량 인턴을 하고 난 이후 논문의 제1저자로 오르는 경험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목고가 입시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들이 일반고에 비해 월등히 질적으로 많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 후보자를 옹호하더라도 이것들이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특권이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는 곤란하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도 특권이 되어버린 사회


조 후보자가 가장 많이 비판을 받는 과거 발언이라면 '개천에서 용 날 필요 없다'는 요지의 트윗일 것이다. 내용인 즉, "모두가 용이 될 순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으며 "하늘의 구름 쳐다보며 출혈 경쟁하지 말고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을 쏟자"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하늘의 구름 위에서 개천을 바라보고 쓴 글 아니냐'며 조 후보자를 비판했다. 물론 평소 자주 진보적인 발언을 해왔던 그였기에, 이 발언에서 어떤 악의가 읽히진 않는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이상을 갖는 것은 문제가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이 발언에서 다른 문제가 보였다. 경쟁을 하지 않고 개천을 '예쁘게'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걸까?


사람들은 계층 상승을 꿈꾸곤 하지만, 모두에게 그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닐 뿐더러 모두가 계층 상승 가능성을 밝게 전망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개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계층상승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013년 75.2%, 2015년 83.4%, 2017년 83.4%로 꾸준히 높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불평등의 개선 역시 더디다. 통계청의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2017년 지니계수는 0.355로 OECD 35개국 평균인 0.317보다 높다(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가 높다). 계층이동이 힘들어진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계층이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위로가 아니라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의 수립이 아닐까?


조 후보자에게 제기된 여러 의혹들이 법적인 하자가 없을지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사회지만 용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현상 유지마저 어려워지는 사회임을, 조 후보자를 옹호하는 이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에도 등장한 '공정성' 논쟁, 진짜로 물어야 할 것은


한국사회의 큰 화두로 떠오른 '공정성'이 이번 사태에도 거론되고 있다. '조국을 아버지로 둔 덕'에 2주 인턴 후 논문의 제1저자가 되거나 6학기 동안 장학금을 1200만원 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고 '능력주의'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실력과 능력에 따라 재화를 배분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통상 그것을 '능력주의(meritocracy)'라고 부른다.



그러나 처음 능력주의라는 말을 소개한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은 '능력 만능주의'를 풍자하기 위해 사용했다. 즉,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각 개인이 가진 유리함의 차이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불평등의 문제를 가린 채 마이클 영의 의도와는 다르게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고,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이 지배적이다. 


스티븐 J. 맥나미(Stephen J. Mcnamee)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능력주의는 허구다>(2015)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소득수준에 비례하여 교육의 혜택을 누리며, 고소득층일수록 부모가 자녀의 학교교육에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한다고 지적한다. 능력이 계층 이동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능력과 무관한 '비능력적 요인'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학업성취, 대학 진학 및 임금수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공공연히 밝혀진 연구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과정만 '공정'하다고 해서 공정한 결과가 나올 수는 없는 법이다.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잡고, 모두에게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적용했을 때 룰을 어기지 않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부의 세습은 앞서 지적한 불평등의 심화와 연결되며 이는 유년기에 누릴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의 차이를 낳는다. 


그래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거나 좀 더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이 논의되면 '역차별' 운운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하다. 심지어는 '공정하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이쯤 되면 '공정성'이 정말로 평등과 공정을 논하는 것인지, 능력주의가 정말로 능력만을 보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는 공정성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묻고 싶어진다. 혹시 당신의 요구는 당신이 딛고 올라갈 계층의 사다리를 걷어차지 말라는 데에 그치지는 않는가? 그 과정에서 누군가 탈락하거나 배제되는 것에는 눈을 감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조 후보자와 그의 자녀가 걸어왔던 특권의 길과 얼마나 다를까.


모두가 조 후보자에 대해 한 마디씩 얹고 있는 와중에, 사퇴하느냐 임명을 강행하느냐에 대해서만 논쟁이 가해지는 것 같아서 아쉽다. 20대의 눈으로 '조국 사태'(나는 이번 일이 '사태'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에서 우리가 건져내야 할 논의의 장이 무엇인지 얘기해보고 싶다. '공정성의 신화'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번 같은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다. 조 후보자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고 끝내지 않길 바라는데,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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