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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 된 '민주노총 부른다 했다?', 늦게나마 깨달아"

[인터뷰] 이겨레 민주노총 청년특별위원장

by 김민준

* 이 기사는 <더 넓은 광장을 그리는 사람들>의 연재기사입니다. 오마이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45679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 지난 4개월간의 탄핵 광장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있다면 이 말이 아닐까? 탄핵안 1차 표결이 무산되어 답답함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든든한 위로의 말이 되어주었을 이 문장. 우리 사회의 여러 노동 문제에 항상 연대하고 투쟁해온 민주노총의 존재감은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바깥에서 광장을 채웠던 수많은 청년들을 그렇다면 민주노총 안의 청년 활동가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여전히 노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운동하는 청년’이란 어떤 의미인걸까. 탄핵 광장이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 민주노총 청년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이겨레 민주노총 청년특별위원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난 6월 25일, 경향신문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이 위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이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청년과 노동운동의 만남,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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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민주노총에서 청년특별위원장과 부대변인을 맡고 있는 95년생 31살, 이겨레입니다. 국제노총 기준에서 청년위원장 역할을 맡기 위해서는 임기 내에 국내법상 청년이어야 해서 강조해봤고요(웃음). 민주노총 내에서 청년 조합원의 의사를 대표하면서 한국 사회의 청년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부각시키고 투쟁하는 과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 청년위원장으로 일하기 전에 민주노총 경기본부, 건설노조에서 일했다고 들었어요.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건설노조 안에 여러 분과가 있는데 저는 건설 기계 일을 하는 노조에서 사무 업무를 맡았고요, 이후에는 경기본부에서 노조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안내하고, 노조가 없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등의 미조직전략조직사업을 했어요. 이런 길을 걸어왔던 것도 제가 대학을 다닐 당시에 평화나비 같은 곳에서 운동을 했었거든요.”



- 위원장으로서 청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민주노총 내외부에서 어떻게 반영하고자 노력하시는 중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청년 조합원들이 자기 사업장 안에서 고참이 되면서 어떤 일정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 순간이 언젠가는 오게 돼요. 그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청년들과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다루는 교육 사업을 하기도 하고요, 국민연금, 일자리 문제 등 실제 청년 노동자들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연대하고 투쟁하는 역할도 중요하게 맡고 있습니다.


정책적으로도 대정부, 대국회 사업을 통해서 실제 현장의 청년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시키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당사자 목소리를 듣는다고 타운홀 미팅, 정책토론회를 하게 되면 보통 낮 시간대에 움직일 수 있는 청년들 위주로 오게 돼요. 대부분의 청년들은 그 시간에 다 일해서 노조 활동도 힘든데 그런 자리는 어떻게 갈 수 있겠어요. 청년특위는 그런 간극을 메우기 위해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해요.”



-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청년과 노동조합의 만남이 쉽지 않았을 거라고 느껴져요. 청년 세대가 노동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우리는 노동에 대해 배우지 않고, 노동자가 될 것이니까 우리의 권리를 이렇게 지켜야 한다는 교육을 하지 않잖아요. 청년들이 노동자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거나 노조의 중요성을 못 느끼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노조에 들어간 청년들이 활동하기 쉬운 것도 아닌 게 여전히 노조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 많잖아요. 최저임금 선전전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쟤 빨갱이다’라고 욕하고 가는 게 여전히 있죠. 이런 시선들이 청년들의 노동운동 진입을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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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내부의 조직문화는 어떤가요?

“민주노총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노동운동의 간판을 세웠던 윗세대가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그 이후에 허리가 끊긴 것도 사실이에요. 제 또래인 2030 청년들이 조금씩 자리를 채워나가고 있긴 하지만 많이 부족하죠. 소통이 쉽지 않아요. 최근에 광장이 열리면서 민주노총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이 많이 늘었다고 느끼고, 청년들이 열렬히 지지하고 호응해주는 만큼 민주노총이 투쟁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은데요, 청년들이 민주노총의 활동을 탄핵 광장 이전보다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소통이나 일상에서의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하거든요.


예를 들면 민주노총은 투쟁을 하루도 멈추지 않아요. 1년 365일 매일 매일 싸웁니다(웃음). 그런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나잇대의 청년들은 보통 그 시기에 이루어져야 된다고 여기는 연애, 결혼, 경제적 독립 같은 인생의 과업들에 집중하는 반면에 노동운동에 참여하면 그런 과업들을 미룰 수밖에 없어요, 개인의 삶과 운동의 사명감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민주노총 안에서도 이 삐걱댐과 충돌로 어려움을 겪는 동지들을 많이 봐왔어요. 운동 선배들과의 대화에서도 인식 차이를 많이 느끼죠.”



- 1년 반 동안 청년위원장 활동을 해보니까 어떠신가요.

“제가 첫 청년위원장인데, 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웃음). 특히 청년 조합원 입장에서 민주노총이 자기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공동체라고 느껴지지 못하는 순간들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대의원대회나 중앙위원회 같은 의결 단위가 기본적으로 논의를 진행하다 보니 청년 조합원의 참여 방식은 동원의 형태를 띨 때가 많고, 그들이 조직을 이끌어나가고 의사를 표현하면서 공동체의 방향을 이끌어내는 주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죠. 사업장 밖으로 나와서 조합 활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 만큼 이곳이 나의 공동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인 것 같습니다.”


광장이 만들어 낸 새 정부, 청년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 4개월 탄핵 광장의 경험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는 말이 화제였잖아요.

“제가 민주노총에서 일한지가 5년 차인데 집회에 나가서 이렇게 환영받은 적이 처음이에요(웃음). 이런 벅찬 감정을 민주노총 구성원 누구라도 비슷하게 공유했을 것 같은데요, 특히 청년들이 광장에 많아서 너무 좋았어요. 한국 사회에서 청년을 바라보는 방식이 ‘MZ’니 뭐니 하는 이름을 붙여놓고는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분석하기에 바빴잖아요? 그렇지만 그들도 한 명의 정치적 주체임을 이번 광장은 알려줬죠. 그 와중에도 ‘2030 여성들이 광장에 많이 나왔다, 놀랍지 않냐’는 식의 기사들을 보면서 좀 씁쓸하기도 했죠. 그 동안 본인들이 보고 싶은 대로 봤다는 거잖아요.”



- 광장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도 있을까요?

“트위터를 중심으로 ‘민주노총 부른다고 했다?’ 같은 밈이 한 때 돌았잖아요? 저는 그게 처음에는 너무 이상했어요. 이런 게 왜 밈이 되는 거지?(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면 12월 7일 1차 탄핵 표결 당시 통행로 확보가 안 되어 있는 와중에 양경수 위원장님이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고 말하니까 환호를 했잖아요. 그런데 그게 양 위원장님 때문에 사람들이 환호한 게 아니었던 거죠. 경찰이 안전하게 집회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는 와중에 민주노총이 그 역할을 했다는 거에 환호한 거예요. 그게 왜 박수를 받았고 왜 밈으로까지 연결됐는지 나중에 가서야 이해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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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의 참여 방식이 다양해졌다고 느끼는데요, 탄핵 광장 이후에도 단체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나와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노조 활동가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나요?

“타인의 존재에 의해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특히 청년들이 느낄만한 계기가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안정적이고 온전한 공동체를 경험하기 어려웠던 것 때문에 특히 광장의 청년들이 개인으로 남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봐요. 광장은 안전하고 평등해서 좋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집회가 이루어지는 광장은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런 안전과 평등에 대한 감각을 느끼긴 어렵죠. 본인이 맞는 참여의 방식을 찾아나가면 된다고는 생각하지만, 사회대개혁과 내란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사회를 바꾸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면 저는 조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이번 광장에서의 경험 때문에 노조나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고 싶어 하는 소위 ‘청년 말벌 시민’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그것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긍정적인 신호죠.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산더미니까 활동가도 여전히 많이 필요해요. 그런데 정작 여기에 진입하는 게 쉽지 않은 문제가 있기도 합니다. 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폐쇄성도 분명 있고요, 현장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민주노총은 특히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로 살아본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조직이에요. 계급적인 이해부터 시작해서 동료 노동자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죠. 그래서 만약 노조 활동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청년들이 있다면 이런 맥락들은 좀 알고 계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 새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민주노총 청년활동가와 이재명 정부는 어떻게 관계 맺기 해야 할까요?

“청년 노동자 이슈를 국정 과제로 관철시키기 위해 7월 중으로 국정기획위원회와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 예정인데요, 결국 청년에 대한 고민이 그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계속 확인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담론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토론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개별적인 투쟁만으로는 돌파하기가 어렵습니다. 광장이 만들어 낸 조기대선 인만큼 광장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분명한 목표이기도 해요. 대화와 투쟁 어느 것 하나를 포기할 수 없는 과정에 있죠.”



- 탄핵 이후에도 주목하고 있는 광장이 있으신가요.

“저는 청년 노동자들이 산재 사고로 사망할 때가 가장 가슴이 아파요. 일한 지 1년도 안 된 분들이 일을 하다가 죽어요. 내가 저기에 있었으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었겠다 싶죠. 또래 노동자가 죽었는데 공장에서는 사과 한 번 안 하고 장례식장에 대리인을 보내놓고는 보상금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에서 결국 다 돈으로 치환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는 거죠. 저는 또래 청년 노동자가 죽어가는 현장에 연대 투쟁을 가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최근에는 제주의 젊은 교사가 돌아가신 사건도 있었는데, 교사도 노동자인 만큼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의 괴로움을 일터에서 느낀다는 게 정말 말문이 막힙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위원장으로서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하고 싶은 과제나 목표가 있다면.

“저희가 광화문을 중심으로 투쟁을 많이 하다 보니 서울에서만 활동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국 곳곳에서 싸워왔어요. 서울까지 쉽게 오기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 각종 이슈들이 서울 중심으로만 돌아가느라 지역의 다양한 사례들이 소외되는 경향이 커요. 내년이 지방선거인만큼 청년특위는 지역의 청년들이 가진 가지각색의 요구들을 어떻게 받아 안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해서 투쟁으로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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