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Chump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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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씀하세요. 누구시죠?'
구고수는 여동생으로부터 이미 누구인지 알고 있음에도 일단은 모르는 척한다.
구고수의 목소리를 들은 김대표는 구ㅇㅇ이 전달해 준 명함의 번호가 진짜임을 확인한다.
'아, 구ㅇㅇ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연락을 드려요. 김대표라고 합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돈 모으는 방법이 궁금하여 연락드립니다.'
구고수는 돈 모으는 방법이 궁금하다는 김대표의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은 받아준다.
'이야기 전해 들었어요. 반팔티 다니는 분이 돈 걱정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평생 공식에 맞게 딱딱 살아왔지만,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여 여성분들을 만나보려고 하다가 진 상담사와 구ㅇㅇ을 만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모은 돈이 부족하기에 예비 결혼상대가 다 좋지만 꺼려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일단 김대표, 너무 상심하지 않기를... 내 여동생의 경우 돈이 많은 남자를 찾는 게 아니고 센스 있고 잘생긴 남자를 찾고 있어요. 키 작아도 되니 잘생기고 대화가 잘 통하면 된다나 뭐래나.. 결국 결정사에 갔는데 하필 외모를 중시하는 동생을 김대표가 만났네요. 들어보니 명문대 출신에 인센티브도 많이 받는 대기업 재직자라고 들었어요. 너무 낙심 마세요 분명 더 좋은 인연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대표는 잠시 생각한다. 방금 구대표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돈이 많아도 결국 결혼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구ㅇㅇ의 권유로 전화를 했지만, 답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앞이 더 막막해지는 느낌을 받고 있다. 명문대 졸업 그리고 대기업 재직에 이제 돈만 모으면 결혼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말이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단 한 번도 인생에서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한 적이 없던 저입니다. 재수 없겠지만 명문대도 책 한 번만 봐도 시험 성적이 나와서 합격했고, 대기업도 자소서에 오탈자가 여러 개 있어도 최종합격했습니다. 왜 결혼은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결혼은 현실이라고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해서 그런지 일단 돈이라도 많이 모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법을 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김대표 내가 시간이 많이 없어 이제 곧 가봐야 하지만, 돈을 많이 모으고 싶다면 지금 내가 하는 말을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 주변에서 고작 그 돈 벌려고 그러냐는 말을 많이 듣기 시작하면 이미 8부 능선은 넘은 겁니다. 잘할 수 있어요.'
구고수는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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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고작 그 돈 벌려고 그러냐는 말을 많이 듣기 시작하면 이미 8부 능선은 넘은 겁니다.'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김대표는 일단 어질러진 집부터 정리하기 시작한다. 일단 쓰러진 바월스앤빌킨스 스피커를 다시 세웠다.
한쪽에서 밖에 나지 않는 스피커를 들으며, 본인의 인생도 반쪽짜리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환기를 위해 연 창문에서 부는 선선한 바람이 유독 오늘따라 더 옆구리를 쓸쓸하게 만든다.
스피커를 끄고 컴퓨터를 킨다. 바탕화면에 야동 컬렉션 폴더를 열어 본다. 그리고 헤드폰을 착용한 뒤 주변에 화장지가 있는지 확인하고 동영상 아이콘을 더블클릭한다.
외로웠던 건지 그냥 올라온 성욕을 해소해야 했던 건지. 컴퓨터 책상 위 하얗고 뿌연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격한 현자타임을 보내고 있는 김대표이다. 갑자기 구ㅇㅇ의 필라테스로 다져진 몸매가 머릿속에 떨어지는 가을의 낙엽처럼 천천히 스쳐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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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리뿐이 안 된 자신이 해당 사항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나이가 어리면 회사에서 잘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반대로 나이가 좀 있는 사우들의 소문이 들려온다. 빛과 같은 속도로 희망퇴직 신청을 한 사람들의 이름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중 석 과장도 포함되어 있다. 올해 딱 40세가 된 석 과장이었다.
석 과장은 미국사람 뺨 칠 정도로 영어를 잘한다. 아니 원어민보다 더 잘한다. 한 번은 외국 대형 회사와 미팅이 있어서 영업직이 아닌 석 과장이 회의에 차출된 적이 있다. 반팔티에서 해외 사업개발 한다는 사람들보다 영어를 월등하게 더 잘하여 온 사내에 소문이 났었던 적이 있었다. 이 일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석 과장은 반팔티 내 본부가 분사해서 별도 법인으로 세워질 때 사업개발 팀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해당 본부는 해외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사실상 한국은 있으나 마나 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석 과장은 반팔티 소속으로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나서 두둑하게 돈을 챙기고, 얼마 후 반발티 본부의 경쟁사에 바로 취업이 되었다. 해당 경쟁사는 반팔티 본부가 없는 핵심 기술과 인프라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석 과장은 해당 회사에서 더욱 일취월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난 것이다. 반대로 주 차장과 곽 부장은 능력 있는 석 과장을 견제하기만 하였고 기회를 주지 않았었다. 어찌 되었던 이렇게 주와 곽은 역시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구고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고작 그 돈 벌려고 그러냐는 말을 많이 들으면 8부 능선은 온 것이다. 주 차장과 곽 부장에게는 반필티에서 받는 월급이 "고작 그 돈"이 아닐 것이다. 아니, 고작이 아니라 그들의 전부일 것이다. 그러니까 저렇게 애처롭게 회사에 붙어있는 게 아니겠는가? 갑자기 김대표 대리는 10~20년 뒤 주 차장 또는 곽 부장이 될 자신을 그려본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 보아도 김대표는 저렇게 되기는 싫다. 아니 너무 끔찍하다.
'주변에서 고작 그 돈 벌려고 그러냐는 말을 많이 듣기 시작하면 이미 8부 능선은 넘은 겁니다.' 김대표는 이주 차장과 곽 부장을 보고 있자니 이제 알 것만 같다. 주 차장과 곽 부장이 저렇게 볼품없이 회사에 붙어 있는 원인은 바로 회사라는 옷을 벗으면 현재 받고 있는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고, 동시에 주 차장과 곽 부장은 이러한 시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회사 밖에서 푼돈 벌려는 노력을 해 봐야 회사 안에서 받는 시급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김대표는 구고수의 조언이 이해가 갔다는 듯이 갑자기 무릎을 탁 친다.
김대표는 푼돈이라도 회사 밖에서 버는 돈이 있어야 주 차장과 곽 부장 같이 비참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깨닫는다. 김대표는 구ㅇㅇ의 가느다란 팔이 가방을 우아하게 저으며 건져낸 구고수의 명함이 천천히 떨어지는 가을 낙엽처럼 스쳐 지나간다. The Cheese & Cake House Holdings. 반팔티처럼 국내에서 잘 알려진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이 회사의 사장이 바로 구고수라는 점을 김대표는 생각한다.
1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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