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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뿐인 영광과 매일 바라보는 흉터

모두가 다니고 싶은 대기업에 왔지만 여전히 무거운 어깨

by 작가 조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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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쓰는 직장인 쿨캄준입니다.


경영 대학원에서 배운 회계 지식으로 회사가 다트에 공시하는 재무제표를 매년 챙겨 보았기에, 회사가 힘들어 질 것을 예상하였다. 그리고 이직하기 위해 지원서를 여러 곳에 냈다.


운이 좋게도 서류 합격 소식이 여기저기서 왔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그 중 마음에 드는 회사에 골라서 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에서 먼저 선수 쳤다.


회사 높은 분들이 직원들을 불러두고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장소인 타운홀에서, 처음으로 경영진이 회사가 어렵다고 시인했다. 회사가 매일 떡 칠해온 화장을 처음 공개적으로 지운 날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대표이사와 영업이사가 낙하산으로 앉힌 실장이 직원들에게 경영상의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그렇게 신임 실장은 아직 어린 자녀를 위해 손에 피를 묻혀 대략 10명 정도의 밥줄을 끊었다.


피를 흘린 직원 중 하나는 필자였고, 인사팀과 어려운 대화를 한 뒤, 위로금을 받고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이 돈으로 필자는 인생 세번째 유럽 여행을 다녀왔고, 스위스에는 아내와 처음으로 가 보았다.


그리고 유럽으로 떠나기 하루 전, 원하던 회사에서 다행이도 오퍼레터를 보내왔다. 회사에서 요청하는 자료를 보낸 뒤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향했다.


그렇게 유럽을 대략 1달 정도 구경하고 돌아와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였다. 강남 지역으로 출근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잘 적응하였고 주어진 업무도 잘 해냈다.


결국 통과한 수습을 축하하기 위해 와이프와 집에서 조촐하게 샴페인도 터뜨렸다. 왜냐하면 업계에서 가장 좋은 회사이지만 수습 합격이 관행처럼 되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권고사직을 당하여 결과론적으로는 <전자책 MBA> 책도 끝마쳤고, 주머니에 돈도 생겼고, 유럽 여행도 했으며, 더 좋은 환경으로 원하는 회사에 입사한 뒤 정규직이 확정되었다. 이렇게만 보면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디즈니 영화 한 편 잘 본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는 길에 타는 대중교통에서 책을 읽었더니 2025년 들어 2권을 읽었고, 이 중 하나는 <불변의 법칙>이라는 책으로, 23장 “상처는 아물지만 흉터는 남는다”에서 아래와 같이 기술한다:


“언제나 인간은 고난을 겪은 후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회복하지만 고난의 흉터는 영원히 남는다. 그 흉터는 리스크나 보상, 기회, 목표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영영 바꿔놓는다.”


경영진이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나처럼 열심히 일 한 직원들을 내보내는 건 상처가 안 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은 내가 리더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영영 바꿔 놓았다.


남아있는 회사 직원들이 살아남은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처럼 열심히 일 한 직원들에게 저성과자였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모습을 보는 건 상처가 안 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은 내가 회사 동료를 바라보는 관점을 영영 바꿔 놓았다.


평소에 좋은 선배인 척하는 사람들도 양심은 있고 자기자신이 부끄러운 건 아는지, 한 선배는 자신의 이야기와 유사한 필자의 소설을 내려달라고 직접 부탁하고, 또다른 사람은 필자가 아는 사람을 통해서 친분을 유지하고 싶다고 전달하더라. 이러한 인간의 이기적인 면모를 본 나는 평소에 존경하였었던 선배를 바라보는 관점을 영영 바꿔 놓았다.


작년 9월 전 회사에 마지막으로 출근하고, 유럽에 다녀온 뒤 새로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동안, 경영상의 권고사직을 당한 전 직원 열댓 명 중에 재취업이 된 사람은 필자 밖에 없다.


새로운 곳에서 바쁘게 일 하면서 필자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흉터는 남아있다. 다만 아직도 재취업을 못한 분들은 아마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하지만 포기하면 안 된다. 회사의 경영진, 인사팀, 선배와 동료 등에게 상처를 입고도 생존하면서 생긴 필자의 영광의 상처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힘이 되는 소식을 몇 가지 전하고자 한다.


경영진 중 권고사직을 주도한 대표이사, 최고운영책임자 및 최고재무책임자는 12월에 모회사의 지시로 짤렸다. 더불어 먼저 피를 흘렸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던 직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좌천되어 출퇴근이 어려운 지방으로 내려갔다.


기존 회사 위치 대비, 차량 또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에 매일 2~4시간을 추가로 할애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출퇴근 길에 책 <불변의 법칙>의 19장 “인센티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읽었으면 한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여러분들의 복지가 축소되고 인센티브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연봉도 동결되는 건 다 자업자득이다.


- “상처뿐인 영광과 매일 바라보는 흉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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