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네의사 송태호 Dec 11. 2019

최선의 진료에 대한 소고.

동네에서 진료를 하는 동네의사들은 갑자기 환자가 늘거나 줄거나 자주 환자가 바뀌지는 않는다. 소아과의 경우는 아기가 태어나서 초등학생 무렵까지 10여년이 지나면 그 환자를 다시 보기 힘들고 ( 한 장소에서 굉장히 오래 병원을 하는 경우 어려서 다니던 환자가 다시 자기 자식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산부인과 같은 경우도 대개 병원을 다니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내과의 경우에는 한번 단골이 되고 나면 병원이 없어지던지 혹은 환자가 멀리 이사가던지 아니면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니던 병원을 계속 이용하는 것 같다.


단골인데도 요즈음 병원에 뜸한 환자들은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게 되는데 병원에 오지 않아서 서운한 감정 보다는 별일이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는 감정이 더 우선한다. 한해 한해 환자를 보는 시간이 쌓일수록 새로 만나는 환자들도 많지만 불치병이 생긴 환자들도 많아진다. 원래 다니던 우리 병원에서 진단 받는 환자도 있지만 다른 병원에서 진단 받는 환자들도 있어 노심초사하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혹시 환자를 진료하는데 있어 놓친 것은 없는 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수 년 전 우리 의원에 다니던 환자가 불치병 판정을 받았다. 환자는 평소 가벼운 감기나 배탈등의 질환으로만 방문 하였었는데 수 년 전 암이 생겨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치료하였으나 두 번 이나 재발하는 불운을 격고 현재도 투병 중이다.환자는 암 진단 후 수술이다 항암요법이다 하며 대학병원 몇 군데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한때는 완치 판정을 받기도 하였으나 다시 재발하여 힘든 항암요법을 받고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였고 그 와중에 고혈압까지 생겨 힘든 날을 보내고 있다.


암이 재발병하고 난 후 부쩍 의지가 약해져 병원 방문 회수가 늘었고 아주 작은 일에도 신경질적이었고 항상 진찰소견보다 심한 증상을 호소하였다. 암 재발후 항암요법을 받던 중에 내원한 환자는 진료실에서 다짜고짜 눈물부터 쏟아냈다. 이젠 그만 하고 싶다고.. 포기하고 싶다고.. 혈관이 나오지 않아 여기저기 찔러댄 주사자국을 가리키며 더 이상 주사 놓을 곳이 없다며 울었고, 떨어진 입맛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식사를 하다가 토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었고, 저녁에 누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앞이 깜깜하다며 잠이 안온다고 울었다.


동네의사에 불과한 나로서는 참 난처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좀 나아졌다며 환자는 고마워 했다. 겉에 보이는 혈관이 아니라 몸 깊은 곳에 있는 혈관을 통하면 항암요법을 계속할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입맛이 꼭 돌아오리라는 나의 장담(?)섞인 입맛 돌아오는 약과 잠 잘자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으로도 암과 싸워 이길 기운이 날 것이라는 내 말에 수면제 항우울제를 처방 받고 원장실 문을 나서던 환자의 뒷모습은 나로 하여금 ‘최선의 진료란 무엇인가?’ 하는 자문을 하게 하였다. 병을 고치기 위한 항암요법이 환자의 투병의지를 꺽는다면 과연 그것이 최선의 진료인가? 환자가 편하게 치료 받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다행이  수 일 후 다시 내원한 환자는 원장님 덕분에 많이 편해졌다고 하며 다시 항암요법을 받으러 간다고 하였다.


돌이켜 보면 나의 내과의사 시작은 패기와 치기가 공존한 시기였다. 어떤 환자던지 꼭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떤 병이라도 고치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의사의 지시를 지키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불성실하고 오만한 태도로 대한 적도 있다. 나에게 불만을 털어놓는 환자들에게 나의 고생을 몰라준다고 섭섭해 했던 적도 많다. 어려운 진단을 위하여 환자의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검사를 한 적도 있으며 그를 통하여 진단을 해냈을 때에도, 그 병 때문에 당할 환자의 고생과 보호자들의 입장에 대한 걱정보다는 진단을 해냈다는 성취감을 더 크게 느끼기도 했다. 의사에게 호소하는 환자의 주관적 증상보다는 객관적인 검사결과를 신봉하며 환자의 고통을 간과하여 무작정 참으라 한 적도 있다. 대신 그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주어진 검사결과를 통해 교과서에 입각한 치료를 하는 것이 당시에는 최선의 방법이고 진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가 지나고 경험이 쌓일수록 점점 ‘어떤 것이 최선의 진료인가?’ 하는 생각은 머리 속을 떠나지 않게 되었고 이제는 환자를 가능한 한 편한 상태에서 치료해 주는 것이 최선의 진료라고 생각한다. 어느 블로그에서 본 음식점 주인이 음식점에 붙여 놓았다는 ‘ 손님이 짜다면 짠 것이다.’ 란 말은 내 마음에 아주 깊게 다가왔다. 환자가 아프다면 아픈 것이며 환자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진료를 위한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학병원에서 불치병 치료를 담당하는 수 많은 의사들은 대개 환자들의 주된 병에만 신경을 쓴다. 자질구레하지만 환자가 불편하다고 한 증상들을 무시하거나 자기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과 의사에게 미루기도 한다.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한 지식은 점점 깊어지고 치료 노하우도 쌓이겠지만 환자를 인격체가 아닌 장기의 조립품으로 보게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대기 환자에 치인 환자들도 지레 겁을 먹고 자기의 주치의에게 자기의 요구를 강력하게 말하지 않거나 의사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자세한 말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의사도 결함 많은 인간일 뿐이다. 환자의 반응은 의사의 큰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환자들은 병에만 관심 갖는 의사를 원치않는다. 환자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의사를 원한다. 이것이 내가 동네의사 생활을 하며 내린 결론이다. 대학병원에서 힘든 치료를 받느라 생긴 이런 여러가지 문제들은 환자의 동네주치의인 동네의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동네의사가 환자의 불치병을 고칠 순 없겠지만 환자들도 동네병원에서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고 동네의사를 통해 치료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용기를 얻어가는 것이 불치병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라고 하겠다. 다시 항암요법을 받으러 간 환자는 지금도 우리병원에서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해 가며 열심히 암과 싸우고 있다.


P.S. 이 글을 작성한 지 약 3년 후 환자는 마지막까지 용감하게 암과 싸우다가 세상을 떴다. 환자의 보호자는 병원을 방문하여 나에게 '이 만큼이라도 세상을 산 것은 다 선생님 덕입니다.'라고 말했다. 보호자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음을 향해 달음질 하는 겁니다. 달리는 동안 행복했다면 달음질을 멈추었을 때도 행복할 겁니다. 이젠 편히 쉬실 수 있을테니 남은 우리들도 열심히 사는 것을 원하실 겁니다.' 진료실을 나가는 보호자의 뒷모습에 그 환자의 모습이 겹쳐왔다.

작가의 이전글 그 땐 그랬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