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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의사 송태호 Jan 08. 2020

나는 진보를 꿈꾸는 보수주의자다.

다음은 우리 의원을 주치의로 정해 놓고 다니는 환자들 중 몇몇과 나눈 나의 대화이다.

‘ 요즘 몸이 개운치 못한데 뭐 좋은 거 맞을거 없소? 영양제 말구.’

‘글쎄요! 왜 그럴까요? 봄이 되서 그런가? 요새 뭐 드신거 없지요? 아무거나 드시다가 간 나빠져서 피곤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으니깐요.’

‘ 피검사 받은 지는 얼마 안돼요. 피검사한 병원에 보니깐 마늘주사니 태반주사니 대기실에 잔뜩 적혀 있던데….’

‘ 그게….( 우물거리다가 결심한 듯..) 의학적인 효능,효과가 검증 안된 주사들이에요. 그냥 보약 개념이면 모르겠지만 들이는 비용에비해 효과가 좋다고 볼 순 없죠.’

‘ 그럼 그거 놓는 병원들은 뭐에요?’

‘( 말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현대의학은 지금도 계속 발전하구 있어요. 가장 발전되고 효과적인 치료법은 대학병원급에서 시작하지요. 쉽게 말해서 대학병원에서 하지 않는 치료,시술, 수술은 몽땅 사이비라구 해도 돼요.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말이지요.’ 라고 말을 마치며 이렇게 쐐기를 박는다. ‘저는 그런 주사 안 믿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맞아 보자구 해도 안 놔줘요. 그게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확실히 없어요. 아무거나 환자들에게 놔 줄순 없죠. 저는 보수주의 의사거든요!’


자! 이렇게 나는 환자에게 커밍 아웃을 해버렸다. 나는 보수주의 의사다. 하지만 그냥 보수주의가 아니라 진보주의가 부러운 보수주의자이다. 내가 한달에 수십장 발행하는 3차 병원으로의 진료의뢰서에는 좀더 검사가 필요하다는 문구와 함께 보존적(보수적) 치료로 호전이 없어 보낸다는 말이 대개 들어간다. 영어로는 conservative treatment라고 하는데 conservative는 영국 보수당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과적으로 보수적 치료라는 것은 이미 교과서등에 의해 치료방법과 치료 효과가 입증되어 있고 다른 방법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며 부작용이 있더라도 그조차 이미 잘 알려져 있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치료법을 말하며 작은 의미로는 좀 더 소극적인 치료라고도 할 수 있다.


폐렴 환자에 있어 처음에는 광범위한 먹는 경구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이 보존적 치료의 예이며 이로 충분치 않을 때에 비로소 혈관내 항생제주사등의 치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불치병 환자에 있어 생명 유지만을 목적으로 하는 치료도 보존적 치료에 속한다.


수술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수술의 경우 보존적 치료라는 것은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근치적 수술이 불가능하여 어쩔 수 없이 생존 기능만 살리는 수술을 보존적 수술이라 말한다. 어쨌든 시설과 인력이 충분치 못한 우리의원에서는 섣부르게 이것 저것 해보는 것보다 철저히 보수적인 방법의 치료를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하지만 나 같은 의사만 있다면 의학의 발전이 어찌 있었겠는가? 익히 잘 알려져 있듯이 제너 박사는 우두(소의 천연두)의 농을 사람에게 주사해 무서운 천연두를 박멸시키는 획기적인 의학적 진보를 이루어 내었다. 이처럼 의학에 있어 진보란 기왕의 보수적 치료보다 쉬운 방법이거나, 치료 효과가 월등히 좋거나, 치료에 따르는 부작용이 적거나 혹은 치료비용이 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만이 의학적인 면에 있어서 진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제너 시대에야 시설과 장비, 모든 면에서 열악했으므로 그야말로 재야에서도 진보적인 치료방법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이런 진보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수 많은 인력과 장비, 환자들의 희생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불가능 하기에 대학병원이나 연구소급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현대의학에서 의학적 진보의 예를 들자면 서울 아산병원의 박승정 교수가 이룩한 업적을 들 수 있다 . 박 교수 이전에는 좌관동맥주간부(Left main coronary artery)가 막힌 심근경색증은 모두 가슴을 절개하여 열고 심장에 혈관을 새로 만들어 붙이는 대수술을 했어야 했다. 박교수가 1990년대 말 미국 심장학회에서 꼭 개흉술이 아닌 간편하고 수술 후유증이 훨씬 적은 스텐트관 삽입술로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논문을 발표했을 때 미국 교수들은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꾸준한 시술 성공으로 마침내 세계 최고 권위의 의학저널중 하나인 년 NEJM (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에 2008년 논문이 실리자 미국 심장학회 좌관동맥주간부 치료의 가이드라인에서 ‘해서는 안되는 시술법’ 이었던 스텐트관 삽입법이 ‘해도 되는 시술법’으로 바뀌었다.


이 진보적인 치료방법은 이도록 어렵고 복잡하고 여러 사람들의 견제 과정을 거쳐 보수적이며 표준적인 치료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즉 수 많은 진보적 치료중에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보존적(보수적)인 치료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 같은 동네의사는 최신 치료라고 덥석 달려드는 것 보다는 환자에게 철저히 보수적 치료만을 시행하는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이 옳다. 수 많은 검증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에 진보의 길은 어렵다. 어줍잖은 진보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이유도 이에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열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진보가 부럽다. 나는 제대로된 진보가 부러운 보수주의자이다. 


어려운 검증 과정없이 막연히 '이론 상 좋을 것이다.' 혹은 '일단 시행하고 미비한 점은 차차 고치면 된다.'는 식은 개인에게 제한적으로 시도해 볼 수는 있겠지만,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지금 현재 의학뿐 아니라 여러가지 정책이나 사회통념이 검증 결과가 부족함에도 일단 지르고 보는 식의 광기어린 난장판속에 던져지고 있다. 적어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하 듯 시행하는 일들은 두번, 세번 숙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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