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편지

해야 할 일

by Felix Park

사그라져 가는 불씨를 살리다.


K,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항상 당신을 지켜보면서, 당신은 인생이라는 캔버스 앞에서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당신은 프로메테우스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가슴속에 가지고 있지만 망각하고 있는 불씨를 다시 타오르게 하거나 혹은 자신의 가슴속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인형과 같은 존재들에게 불씨를 나눠주기도 합니다.


그런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매사에 염세적이기도 한 저는 당신이 나눠준 불씨를 받은 인형과 같은 사람들이 어쩌면 탄생해서는 안됐을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존재로 거듭나 외려 당신에게 칼을 겨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은 2천여 년 전의 로마시대로부터 전혀 발전한 것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소설가 콜린 맥컬로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영웅이자 독재자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그리면서 인간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볍게 표현합니다.


이제 카이사르는 세상을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곳으로 여기지 않는다. 실제로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들은 충동, 욕망, 경솔함, 지성의 부족, 탐욕으로 세상을 망친다.

그러나 오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준 불씨를 타오르게끔 만들어준 저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 불씨를 나름 성공적으로 활용하게 됐는지에 대하여 당신에게 글을 쓰고자 합니다. 당신이 하는 일은 결코 가치가 없지 않음을, 결국은 옳은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당신은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겠지요.)


계기


벌써 거의 2년이 지난 일입니다. 당시 저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방안을 미니멀리즘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알았지만, 이렇게 얻은 나침반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시에 한창 유행하던 (물론 지금도 항상 화두인) 퇴사 열풍의 화두였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하는 일이 맞는 길은 아닌 것 같다.”라는 지극히 피상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인식을 하고 있는 가운데 저는 아주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겨준 사람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은 한국에서 7년 정도 거주하고 단순 어학 강사 등이 아닌 중견기업급에서 직장 생활까지 하고 있는 스위스 친구였습니다. 단순히 머묾이 아닌 어느 정도의 정착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하여 매우 높은 장벽을 세우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그 규범적 허들을 모두 넘어 정착하고 경험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저에게는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친구 또한 자신을 낯선 이방인이 아닌 있는 그대로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저와의 대화를 매우 신선하게 여겼습니다.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한국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작용하는지, 한국 사회와 수직적인 조직에서의 부조리 등을 경험하는 이방인이 된 그녀와, 딱히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하여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던 저는 매우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 같은 관계로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생활하는 한국의 직장 생활에 대하여 항상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저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항상 본질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직장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본인들 스스로도 이를 알면서도 이러한 부조리에 대하여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흥미로워.”


“네가 말하는 그러한 조직 내의 모습들이 아마 내가 겪은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한국 사회는 아무리 부정하고 새로운 세대는 다르다고 외치지만 아주 강력한 집단주의적인 암묵지가 작동하는 사회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한국은 그러한 강력한 집단주의를 기반으로 유럽이 200년에 걸쳐서 만든 번영을 60년 만에 만들어 냈으니까. 나름 쓸모가 있지 않았을까? 물론 나도 이제 그러한 집단주의는 더 이상 그 효용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너의 의견에 꽤나 공감하고 있어.”


photo-1548051072-b34898021f8b?ixid=MXwxMjA3fDB8MHxwaG90by1wYWdlfHx8fGVufDB8fHw%3D&ixlib=rb-1.2.1&auto=format&fit=crop&w=1000&q=80 타인과의 만남은 언제나 내가 지니지 못한 낮선 측면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러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만남을 이어가던 차에 그녀는 자신의 건강상태와 개인적인 사정을 이야기하며 이제는 그만 스위스로 돌아가고자 한다면서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서로가 현실적인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상황에서 만났기에, 헤어짐은 그렇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외려 그녀와의 헤어짐은 저에게 새로운 나라에서의 삶을 준비해보자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불씨를 꺼내 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계기를 현실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닌 강력한 실행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시스템의 힘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를 쓴 양품 계획의 회장인 마쓰이 타다미쓰는 아무리 기획이 훌륭해도 이를 실행하는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전략도 성공할 수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해외 유학 및 취업이라는 새로운 삶을 향한 방향을 설정한 저에게도 이를 현실화하는 강력한 실행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실행혁을 저는 마쓰이 타다미쓰가 강조한 것처럼 저의 일상생활을 체계화 함으로써 짧고 굵게 끝내기로 마음먹고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려 지금 이러한 구조가 다시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의 저는 매우 체계적이고 시간의 압박을 스스로 설정하여해야 할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CWrM1vGZP1s1IBnXZd70C-sI0v5Xy-bTFp1quKfSbHdEdips38lpv-7kWliKJ90WGEte1UizE-DtjuXlmUUliLJUTEad5GExL4LSc1AO6s2zawdOoO2HeEYOqg1ES9UBy256r48VBeCejLyim0i6A25pwWCMPh3jVnKiLOVr-w 구조와 체계가 가진 힘을 120% 활용한 마쓰이 타다미쓰 회장의 가르침은 조직관리를 넘어 개인의 인생에도 영감을 줍니다.


제일 먼저 유학원 관계자와의 상담 후 목표로 하는 대학원들의 지정된 원서접수일을 확인한 저는 해당 대학원에 제출해야 하는 모든 서류 및 필요 조치들을 접수일의 타임라인에 맞춰서 지정했습니다. 이후 필요한 영어 시험 성적, 학업계획서 작성 등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모두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규칙적인 생활 습관의 정착이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은 생각 외로 많은 시간과 공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깨달은 순간부터 저는 저의 생활패턴과 라이프스타일을 해외 유학이라는 목표에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의 하루는 다음과 같습니다.


○ 평일

새벽 네시 반 기상

필요한 어학 성적을 위한 영어 공부 (5시 - 7시까지)

식사 후 출근

업무시간

6시 반 퇴근 이후, 저녁 식사

퇴근 후 1시간-1시간 30분 운동

영어 공부 및 영문 학업계획서 작성을 위한 리서치 및 계획서 작성 및 수정

10시 반-11시 취침


○ 주말 (토, 일 모두)

6시 반 기상 - 아침 공부

식사 후 영문 에세이 작성 연습을 위한 일대일 영어 강좌 수강

휴식 및 개인 정비

영문 에세이 숙제

운동 및 취침


이러한 라이프 사이클을 4개월 정도 유지하면서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를 강력하게 염원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매우 큰 삶의 변화를 가지고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의 유학 과정은 여러 우여곡절을 선사하면서 저에게 ‘운’이 주는 변덕스러움은 노력을 넘어서지 않을까라는 인상도 함께 주었지만, 당시의 저는 규칙적인 생활습관이 주는 강력한 ‘힘’을 깨닫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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