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와 코로나
Y에게,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의 불안에 가득 차 어찌할 줄 모르던 저는, 지금은 불안은 삶에 있어서 성장을 위한 촉매제이자 동시에 적절한 긴장을 주는 자극제라는 정의를 내리고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밀려오는 불안감의 파도는 때로는 스스로가 방황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저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저에게 가르친 세상과 삶에 대한 끊임없는 낙관주의는 지금도 제가 그러한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당신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을까를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게 된 것도, 당신으로부터 배운 첫 번째 가르침을 이제야 실행하는 게으른 제자의 약속을 실천하는 것으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쓰는 이 편지는 당신에게 배운 첫 가르침의 실현이기도 하지만, 저 스스로를 ‘징치’(징계하고 다스리다)하고자 하는 용도이기도 합니다. 특히 당신에게 가치 있는 글을 통해 새롭게 밝아오는 콘텐츠 중심의 시대에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겠다고 한 호언장담을 지키기 위한 미비한 시작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 글은 당신과 만난 이후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보고서라고 너그럽게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의 시작은 당신을 만나기 직전 영국과 한국에서 제가 겪던 상황들로 시작하여 어떻게 다시 꿈에서 현실로 제가 돌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당신은 항상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VUCA (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nd Ambiguity) 임을 강조합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당신을 만나게 된 것도 흔히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한번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을 안기는 테일 리스크 (Tail Risk)들의 연속적 발생과 함께 시작한 것이 느껴집니다. 비록 해외 취업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느 정도의 숙고기간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직장을 가질 것이라고 믿었던 저의 순진함에 대한 일격이기도 했지요.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브렉시트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이기는 하지만 일상의 피부에 와 닿는 사건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브렉시트 국민 투표가 이미 벌어지고 이를 무효화하려는 사람들과 브렉시트라는 약속을 실현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던 영국에 머물던 저에게는 이는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학업에 집중하던 순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정치적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어떻게 제 삶의 영향을 주는지 구직을 시작하면서 깨닫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지요.
당시 저는 인턴이라도 저에게 취업 비자를 내줄 수 있는 글로벌 회사의 런던지사 또는 영국 현지 회사의 일자리를 찾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글로벌 회사의 영국지사와 영국 국내 회사들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모든 포지션에 대하여 취업 비자를 발급할 필요가 없는 시민권자를 우선으로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제가 정치적 리스크가 얼마나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깨닫게 만들어주는 피부에 와 닿는 첫 번째 경험이었습니다.
기존의 유럽연합 소속의 시민권자들인 유럽 친구들이 먼저 루마니아, 폴란드, 프랑스, 그리고 독일 등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중국과 일본에서 온 친구들도 하나 둘 높은 집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제가 지니고 온 생활비도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영국에 머물면서 현지에 취업하겠다는 목표를 유지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일단은 현지에서 취업하겠다는 꿈을 한국에서 차근차근 준비하자는 마인드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VUCA의 시대: 코로나 (COVID-19)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저는 한국에서의 생활은 유학기간 동안 제대로 못 가져본 휴가기간이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인 태도로 다시 한번 해외취업을 준비했습니다. 다만 이제는 영국을 넘어, 홍콩, 싱가포르, 미국 등 전방위적으로 방향을 넓히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그 당시 중국에서 시작된 전염병은 중국 내부를 넘어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국가들이 국경을 폐쇄하고 자국민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 또한 다급하게 취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압박감을 강하게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우리가 처음 만나서 저의 커리어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합니다)
VUCA시대의 취업: 꿈에서 현실로
결국 해외 취업이라는 꿈은 어지러운 세상의 변화와 함께 무산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무산이 아니라 잠시 미뤄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꿈에서 차가운 현실로 돌아왔지만, 이는 어떤 면에서는 인생의 제2장이 펼쳐진 것과 같은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노력을 하면 적어도 ‘필요한 것’은 건질 수 있다는 The Rolling Stones의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삶의 의미와 방향은 조금 돌아갈지언정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음 편지부터는 당신에게 가끔 지나가듯이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처음에는 괴로움으로 그 이후에는 저에게 적나라한 삶의 현장을 가르쳐준 고마운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