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과 아버지
유장한 멋은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생애에 있고 그립고 슬픈 회포는 부드러운 속에서 이루어진다. 짙고 짧은 맛보다 맑고 참된 것을 찾으라. - 채근담 -
최근 들어 내부적 외부적으로 다양한 일을 겪고 사람을 만나면서, 심적으로 많은 압박감을 받는 기분이다.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을 때 보통 다양한 경전을 읽는 편인데, 근래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읽기 시작한 채근담을 곱씹으면서 틈틈이 조그마한 노트에 손으로 옮겨 적는 필사도 병행하고 있다.
그리고 필사만으로는 무언가 내면의 감정을 정리하고 설명하기 어려워서 지금 현재 노트북을 열어 가볍게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가 위안이 되어줄 수 있을까? 혹은 생각을 정돈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흔들리는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다잡을 수 있을까?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려고 앉아 있으니, 문득 이 책을 읽을 것을 권유한 아버지는 내가 여기서 무엇을 얻길 바랬는지에 대해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오랜 세월 바다에 계셨었다. 지금은 배에 와이파이가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며칠은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마저도 최근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아버지는 근 40년 가까이를 바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방주이자 한편으로는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는 감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평생을 사셨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아버지는 항상 다양한 책들을 항상 곁에 두셨다. 당신이 젊으셨을 때는 다양한 영문 소설과 전문 서적들을, (그래서 아버지는 지금도 나름 유학을 다녀왔다고 거들먹거리기도 하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더 잘하신다.) 시간이 흘러 중장년 그리고 노년에 이르시는 지금은 다양한 동서양의 고전과 경전들을 항상 곁에 두고 읽으신다. 그런 아버지께서 최근에 나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추천하는 '논어'가 아닌 '채근담'을 읽어볼 것을 권하셨다.
채근담(菜根譚)의 제목의 '채근'이란 나무 잎사귀나 뿌리처럼 변변치 않은 음식을 말한다. 사전에 따르면 과거 송나라 말기의 학자가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나물 뿌리를 씹을 때의 느껴지는 담백한 맛처럼, 삶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담백한 삶을 살 것을 권유하고 그렇게 살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지나가면서 읽을 때는 너무나도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들어서 휙휙 넘기면서 읽었다. 그러나 30대 중반이 되어 책을 펼쳐 읽으니, 나물반찬을 씹는 것처럼 생각보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 읽게 되고 더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곧 생각보다 이 책을 읽고 소화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그리고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를 생각하고 있으니, 내가 가지고 있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에 대한 이야기와 배치되는 맥락의 이야기라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주로 읽는 전기와 역사책들은 기본적으로 욕망을 지니고 있던 존재들이 자신의 욕망을 세상에 투사하여 원하는 그림을 그린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들의 행적을 담은 책들은 기본적으로 음식에 비유한다면 매우 기름진 고기류의 요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채근담은 책 제목처럼 매우 담백하고 소박하게 주어진 삶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구도자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는 불경이나 성경과는 또 다른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그렇기에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던지고 나오는 모험을 했고, 그리고 운이 좋게도 다시 직장을 얻어서 모두가 움츠리는 어려운 시기에도 그래도 생계에 대한 걱정은 없이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을 넘어서, 정신적인 것 또한 추구하는 것이기에 더 나은 삶에 대한 물리적/정신적 요인에 대하여 다양하게 향상하기 위한 노력은 항구적으로 지속하는 중이다. 그렇기에 이 와중에 채근담이라는 책을 읽게 돼서 쉽지 않게 소화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어렵지만, 무언가 가슴에 응어리 진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게끔 한다는 것. 그리고 이와 함께 내가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열어서 이에 대한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하는 글을 쓰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현재의 나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아버지가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지닌 욕망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과는 별개임을 이야기하고 단순하고 소박한 것에서 얻는 행복을 되새김질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숨을 좀 고르고 차분하게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를 희망하시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