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lix Park Nov 05. 2023

생각의 조각들 34

틈틈이 글쓰기

https://www.youtube.com/watch?v=ySFGlAiBx7M


1. 늦어도 11월에는


어느덧 낙엽이 지고, 크리스마스 관련 장식이 들어서기 시작하는 11월이다. 올 한 해 그대는 무엇을 했는가? 아니 무엇을 경험하고 느꼈을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적절한 단어일까? 새로운 다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없는 행위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럴 시간에 밖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입고, 마시는지 등을 좀 더 공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차분히 돌아다니면서 진열된 상품들을 보고, 이를 둘러보는 이들이 무엇을 입고 신경 쓰는지를 보고 있노라면, 조금이라도 사회의 트렌드를 나름 현장에서 읽고(?) 있다는 착각 (혹은 학습)을 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현관문을 나가 배회해 보자.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은 진열대의 조그마한 변화 사람들의 옷차림이 조금 더 남루해졌는지 혹은 여유가 생겼는지 등을 읽는 것 아니었는가? 차분히 거리의 풍광을 읽으면서,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지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하여 고민하도록 하자.



2. Memento Mori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어느 날 새벽 문득 잠에서 깬 당신은 고교시절 동창으로부터 낯선 메시지를 받았다. 학창 시절 당신과 가장 친했고, 그리고 당신의 우상이었던 J의 부고를 알리는 소식이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세 시 반, 그날 저녁은 새로 합류한 상사가 주관하는 회식이 있는 날이라 자리를 빠지기 참 어렵다. 당신은 J와의 관계를 반추하며 그곳에 가는 것이 괜찮을지 아닌지 등에 대하여 잠시 고민한다. 그리고, 회식을 빠지기 애매하다는 핑계를 대며, 새벽의 문상이 예의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택시를 호출하여 출발한다. 택시 뒷좌석에서 당신은 곰곰이 J라는 존재에 대하여 회고한다. 아니 한때는 누구보다도 가까웠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소원해지면서 추억 속 서랍으로 옮겨져 먼지만이 쌓여있던 그런 인간관계 그 본질에 대하여 회고한다.


학창 시절 당신의 우상이었던, J. 그는 언제나 밝고 유쾌했다. 모두를 이끌어가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누구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고, 자신만의 확고한 인생관에 기반하여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보여주던 존재였다. 그렇기에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린 당신에게는 삶에 대한 확고한 주관은 저래야만 하지 않을까라는 동기부여가 되어주는 존재였다. 


당신의 마음 한 구석에서 그는 언제나 도덕성을 겸비한 우두머리 수컷 혹은 알파라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각자의 삶이 바빠지고 서로가 서있는 곳의 풍경이 달라지며 그와 당신이 바라보는 풍경이 달라진다. 더 이상 그는 당신에게 우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가 마주 보며 어깨동무를 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아닐까 고민하는 찰나, 그와의 관계도 조금씩 소원해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니 사실 그도 당신도 알았을 것이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그저 서있는 곳이 달라진 것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는 연락을 누가 먼저 하는지 등에 대한 이상한 자존심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건 더 이상 자존심의 문제가 아닌 '망각'이라는 더 큰 힘의 작용을 받으면서 서로에게 잊혔을 뿐인 그런 것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은 그의 부고를 들었고, 그의 장례식장에 갔다는 것이다. 


새벽의 장례식장은 고요하다. 부조를 내고 마침 깨어있던 분들에게 새벽에 왔음을 출장이라는 핑계를 둘러대며 사과와 인사를 함께 올리며, 문상 후 당신은 서둘러 나온다. 바깥은 동트기 전이라 매우 추운 새벽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당신은 간단히 캔커피를 하나 자판기에서 꺼내마시면서,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 혼잣말이 나온다.


"XX, 죽어서야 부르는 거냐."


당신도 안다. 떠난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한 짓이라는 걸, 그냥 안부 메시지 하나 정도는 언제든 날릴 수 있었을 거라는 것도. 그리고 그 선택은 당신의 몫이었다는 것을.


새벽의 장례식장 출구에 서있으니 춥다. 당신은 다시 택시를 호출하면서 어쩌면 술자리에서 흡연자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빈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행위가 불을 붙일 용기가 없는 겁쟁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동이 터온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죽음도 그저 지나가는 이벤트로 잊힐 것이다.


동이 터온다. 조금씩 동이 트는 거리의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로마인들의 경구를 떠올린다. 로마인들은 Memento Mori를 개선식에서 사용했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이한 개선장군에게 바로 옆에 서있는 노예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을 귀에 대고 속삭였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불멸의 신들에게는 한갓 보잘것없는 순간임을 잊지 말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신 앞의 겸허함을 상기할 때마다 실수를 줄이는 존재인 것일까?


3. 콘텐츠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당신은 이제 콘텐츠를 소비하는 존재에서 생산하는 존재로 변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록 우리의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것이지만, 아직은 이에 대한 고민보다는 지금의 살아있음을 어떻게 만끽하느냐가 최근의 당신의 화두이다. 


차분히 당신이 공부한 것들, 느낀 것들 가운데 무엇이 다른 이들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될지에 대하여 고민한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존재란 단순히 당신이 원하는 좋아하는 것을 무작정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의 삶에 본질적으로 도움이 돼야만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당신이 지금부터 할 고민은 좀 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고민들로 차근차근 채워질 것이다. 


우리의 신체는 7년에 한 번씩 모든 부분의 세포가 바뀐다고 한다. 그동안의 7년은 20대와 30대를 겪으며 방황하는 시기의 세포들이었다. 이제는 무언가 확실히 당신을 위한 삶을 디자인하여 만들 때가 됐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니, 좀 더 잘할 수 있는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에 대하여 이제는 고민해 보도록 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의 조각들 3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