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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명한 투자자 May 12. 2021

작가님들께 부치는 편지

제 글을 봐주시는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작가는 비판받을 권리가 있다.
- 시인 박용하 -

  춘천에서 수학할 때의 일입니다. 대학 도서관 앞을 지나다가 '열독(熱讀) 프로젝트'라는 것을 한다는 현수막을 보았더랬죠. 수업을 들으면 등단하신 작가님들을 만날 수 있고, 5권의 책을 무료로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공짜 책을 원한 것이 아니므로, 작가님들을 직접 만나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리고는 친구와 얼른 신청했죠.


  저는 한승태 시인님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강의는 저녁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혀 지루하지 않은 수업을 마치고 나서(내용은 기억이 안 납니다.) 작가님이 술을 사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공짜 술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친구와 냉큼 따라붙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한승태 시인님과 친분이 있으신 박용하 시인님께서도 합석을 하셨습니다.


  아직도 그 선술집의 분위기가 떠오릅니다. 소양강변에 있는 매우 아재스러운 호프집이었습니다. 몇 안 되는 테이블은 칠이 벗겨져 있었고, 소파는 갈색 카펫을 덮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장식장에는 낡아빠진 LP판들이 수북이 꽂혀 있었습니다. 적당히 침침한 주황색 조명 아래서 우리는 7080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습니다. 소양강 쪽으로 작은 창이 나있었는데, 가로등이 비추는 호숫가의 인적 드문 길이 제게는 참 운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혼하고 나서 아내와 다시 한번 가보기로 했는데, 어느 술집인지 찾을 수나 있으려나요.


  그 날, 분은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넘기며 우수에 찬 눈빛과 나지막하고도 굵은 목소리로 자신들의 시론(詩論)을 펼쳐 보이셨더랬습니다. 맥주를 마시며 박용하 시인께서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작가는 비판받을 권리가 있다."고요.

  저는 이 말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제 인생에 깊이 새겨진 몇 안 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되었죠. 20대의 저에게는 이 말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술자리 이후로 두 분을 제 인생에서 다시 만나 뵙지는 못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저는 글을 쓰고 싶어 했습니다. 짧은 소설을 써서 동기들에게 보여줬던 기억도 있고요. 취업을 하고 나서도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에 글을 끄적여보았습니다만, 계속 이어나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속 한편에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2019년 여름에 처음으로 브런치라는 공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글을 쓰려면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때 제 마음 한편에 묻혀있던 씨앗이 발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브런치 작가에 도전을 해보기로 결심했죠. 그러나 제가 늘 그러하듯,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12월쯤, 아내에게 투자 상황을 보고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글을 모아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지만 광속으로 탈락했습니다. 매우 조잡한 글이었거든요. 그리고는 올해 4월 말에 다시 도전했습니다. 이번에는 글을 다듬고 목차를 만든 뒤에 정성을 다해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신청한 다음날 합격 메일을 받았습니다.


  처음 '자유의 산을 정복하라'는 글을 발행했을 때만 해도, '브런치는 유튜브보다 느린 플랫폼이다.'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정말 유명하신데도 불구하고 브런치 구독자는 천 명 정도인 작가님들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제 글이 그렇게 빨리 다음 메인에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아무튼 제가 첫 글을 올렸는데, 브런치 작가님 몇 분이 '라이킷'을 눌러주셨습니다. 가슴이 뛰더군요. 조금 있다가는 몇 분의 작가님이 제 브런치를 구독하신다는 알림을 보았습니다. 더욱 놀란 마음에 어떤 분이신지 눌러보았죠.


 이럴 수가! 무려 700명에서 5000명에 이르는 구독자를 보유한 작가님들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글에도 '라이킷'이 붙기 시작하는데, 모두 브런치 작가님들이셨습니다. 글이 단 두 편 밖에 없는데 '라이킷'을 눌렀던 것입니다.


  '3000만 원을 잃었습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며칠 뒤, 가족들과 여행을 떠난 다음날 아침에 저는 조회수 7천이라는 숫자가 뜬 알림을 보았습니다. 그날 밤까지, 제 글은 조회수 11만이 되었습니다. 조회수가 엄청나게 오르는 동안에 흥분한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더군요. 계속 통계를 보면서 휴대전화를 놓지 못했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 시간 대비 휴대전화 만짐 횟수가 가장 많은 하루였을 것입니다.


  휴대폰 그만보고 애 좀 보라는 현명하신 아내님의 따끔한 말씀으로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글에 라이킷이 하나도 안 붙었다면 내가 계속 글을 올렸을까?'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라이킷 버튼은 평가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응원의 마음이었구나.'하고 말이죠.


  사실 저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누르는데 인색했더랬습니다. 이게 마치 평가 버튼처럼 느껴졌거든요. 내 기준에서 잘 쓴 글만 누르는 것이라며, 버튼에 대해 혼자만의 정의를 내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평가 버튼이 맞다면, 내 글이 많아야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므로 작가님들께서 이토록 쉽게 라이킷 버튼을 누르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글을 두 개밖에 올리지 않은 햇병아리에게 말이죠.


  저보다 먼저 브런치를 경험한 작가님들은 알고 계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버튼을 누름으로써 "응원합니다. 용기를 잃지 말고 글을 쓰세요."라는 마음을 전달한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라이킷 버튼이 하트 모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유재석 씨는 정말 힘들 때에 자신을 믿어준 PD 한 분 때문에 쓰러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바뀌는 기회이자 붙잡는 자신감이 된다."라고요. 작가님들 덕분에 저는 용기를 얻고 글을 올릴 수 있었으며, 그 글 중에 하나는 조회수 10만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라이킷'의 의미를 좁게 규정지었던 옹졸함을 벗어던지고 이제부터는 저도 응원의 마음으로 다른 작가님들의 글에 거침없이 버튼을 누르려고 합니다. 보잘것없는 저에게 관심과 애정을 표현해주신 브런치 작가님, 예비 작가님, 그리고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항상 독자의 비판을 저의 권리라고 생각하며 글을 쓰겠습니다.


2021. 5. 11. 현명한 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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