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 씨는 몇 월 며칠이 되네 안 되네 어쩌네 하며 약속 정하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불쑥 연락해서 보고 싶다고 해도 덥석 나와 주는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했다.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주 긴박한 일이 있지 않은 한 그가 보고 싶다고 하면 곧바로 그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었다. 그날 바로는 아니어도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날 수 있었다.
서소 씨는 그런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그는 그의 인간관계가 이미 충만하다고 생각하여 굳이 더 많은 사람을 사귀려 노력하거나 쫓아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서소 <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내 마음을 옮겨놓은 듯한 내용이라 무척 공감하며 읽었던 부분이다. 나 역시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불쑥 연락해 "오늘 만날까?"라고 말해도 흔쾌히 나와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도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인사치레로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라고 건네는 말을 싫어한다. 결국 만나지 않을 거라는 걸 서로 알면서도 주고받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정확하게 날짜를 정해 "이번 주 금요일 어때?"라고 묻는다.
물론 모든 사람과 이런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만 만나다 보니 자연적으로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것을 느낀다. 사실 나는 원래 내향적인 성격이라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도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 보니 오랫동안 곁에 남는 관계는 그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의 인간관계는 깊고 좁은 편이다. 한때는 넓은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내 성향을 바꾸려는 노력도 해보았다. 일부러 이런저런 모임에도 나가보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려 노력했지만 부질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식으로 만난 사람들과는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도 어려웠고, 어떤 이유로 모임이 깨지고 나면 더 이상 연락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얕은 관계의 여러 사람들과 친목 도모를 위해 모인 술자리에서, 의미 없는 대화를 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시간 낭비라는 생각과 피로감만 더해졌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런 모임에는 더 이상 참석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마음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만나 속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관계는 처음 맺는 것보다 유지하는데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보고 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뒤로는 인간관계가 더 심플해졌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과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의 경계가 확실해진 느낌이다.
깊은 우정은, 어떤 의무감 없이도 그저 보고 싶고 그냥 '아무거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 별 내용도 없는 문자나 이메일이 와도 그저 즐겁고 신나고, 만나면 서로에게서 힘을 얻고, 못 만나더라도 의심하지 않는 그런 관계는 얼마나 소중한지.
임경선, 요조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문득 보고 싶으면 연락해서 언제든 만날 수 있고, 허물없이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관계. 자주 만나지 못해도 연락만으로도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것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관계.
소수일지라도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소중한 이들이 곁에 있기에 나의 인간관계는 충만하다. 그래서 이런 관계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