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과

by 글짓는약사

사과를 받을 입장일 때를 떠올려보자. 상대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간은 마치 끓는 냄비가 올라간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는 것과도 같다.


더 끓일 의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바로 식지는 못한다.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때, 흔들리는 동공으로 잔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과를 하는 입장에서 사과를 받는 태도에 점수를 매길 권한은 없다. 사과를 받는 사람 쪽에서 필요한 겸연쩍은 시간이란 게 있다. 마지못해 내민 손을 잡아주고, 다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떼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몹시도 무겁다.


이 무거운 발걸음을 기다려주는 것까지가, 진짜 사과다.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사과에 대해 이토록 명쾌하게 풀어놓은 글은 처음이었다. 사실 그동안 상대방에게 사과를 받고도 금방 화를 풀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 때로는 자책을 하기도 하고, '뒤끝 있다'라는 말을 상대로부터 듣기도 했다.


사과를 받았으니 이제 풀어야지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남는 원인 모를 찜찜함, 억울함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었는데 이 글을 읽고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럴 수 있는 거라고, 다독이며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가스레인지의 불을 끈다고 해서 냄비가 바로 식는 건 아니듯이, 다만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까지가 진짜 사과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또한 입장을 바꾸어 내가 사과를 하는 입장이라면, 사과를 했으니 바로 화를 풀라고 상대를 다그치거나 다시 손을 내밀 때까지 걸리는 그 시간이 길다고 상대를 타박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깝다는 이유로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짜 사과를 안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부터라도 상대의 속상한 마음을 헤아리며 그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진짜 사과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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