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
적절한 자아의 크기와 적당한 거리
자기 자신을 거대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꼭 '나는 잘났다'는 식의 높은 자아상에서 비롯되는 건 아니다. 자아상이 높든 낮든 자아 자체는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부풀 수 있다. 이를테면 극단적인 자책감(또는 죄책감)이 그렇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전후 사정 덮어놓고 '내 탓'이라며 머리를 쥐어뜯는 사람이 있다.
나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어, 나 때문에 걔가 그렇게 됐어, 나 때문에 불행해졌어, 나 때문에 망쳤어.
이런 태도는 얼핏 대단한 자아와는 거리가 먼 '소심'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나'라는 존재가 한 사건을, 사람을, 인생의 행과 불행을 좌우했다고 판단하는 점에서 그 자아는 비대하다.
비대한 자아는 많은 부분에서 삐걱거린다.
왜 저 사람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하지만 자아의 부피를 조금 줄이고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대체로 나를 '굳이 싫어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대부분의 타인에게(내 생각만큼) 치명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윤주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인생을 살아가며 타인과 관계를 맺다 보면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간혹 그럴 때 '모든 것이 내 탓'이라며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태도이다. 이것이 비대한 자아를 가볍게 만드는 시작점이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부담과 죄책감도 내려놓을 수 있다.
올바른 관계의 모습은 누가 누군가의 부분집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세계를 유지하며 함께 하는 교집합이다. 따라서 내가 누군가에게 미치는 힘의 크기가 지배적일 수 없고 반대로 상대에게 종속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고, 혹 정말로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상대의 마음은 내가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도 된다. 상대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괜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힘들어하지 말자.
의도적으로 신경 쓰고,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치우칠 수밖에 없는 자의식 과잉과 결핍의 간극.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완벽히 내 탓인 일도, 남 탓인 일도 없을 것이다.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무척이나 당연한 이치지만 우리는 자주 이 사실을 망각한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당연해 보이는 사실도, 스스로 그 상황에 너무 깊이 빠져있을 때는 시야가 좁아져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 탓이 아닌 것까지 모두 다 짊어지는 자의식 과잉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자의식 결핍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적절한 자아의 크기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이다.
결국 모든 일이 그렇듯, 중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