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이하는 예비 집순이, 5개~8개는 집순이 위험단계, 9개 이상은 집순이 심각 수준이라고 한다.
나는 무려 8개, 집순이 위험단계였다.
스스로 집순이 기질이 좀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위험(?)한 단계였다.
20대 시절에는 스스로 집순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노는 것이 즐거웠고 그래서 주말마다 약속을 잡아 집 밖으로 나가곤 했다.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가고, 멋진 곳에서 사진도 찍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 약속이 없을 때는 엄마랑 영화를 보러 가거나 카페라도 다녀오곤 했다.
그랬던 나였는데 요즘은 집이 제일 편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가장 편한 복장, 가장 편한 자세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코로나가 나의 집순이 기질을 일깨워준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가 오고 각종 모임을 비롯한 외부 활동의 제약이 생기자,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하고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는 너무나 괜찮았다. 집에만 있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적 충만함을 느꼈고 마음이 편안했다. 내향인인 나는 모든 것이 갖춰진 나만의 공간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었을 때 충전이 되는 사람이었다.
테스트 4번 문항처럼 막상 나가면 재밌게 잘 놀지만 나가는 것 자체가 귀찮을 때가 있다. 나가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모두가 나에게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단 밖에 나가는 순간부터 에너지 게이지가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는 잠시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하면 방전 상태가 된다. 게다가 슬프게도 나이가 드니 그 순간이 빨리 찾아온다. 에너지 효율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과 모임을 가져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급 피로감을 느끼며 집에 가고 싶어 진다. 유난히 집을 좋아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집에 꿀단지라도 숨겨놨어?'라며 싱거운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그럴 때 내가 하는 단골 멘트는 '배터리가 간당간당해서 충전하러 가야 돼'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휴대폰인 줄 알지만 사실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집에서 혼자 쉬는 시간을 가지며 외부 활동으로 소모된 에너지를 충전한다.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하듯 집에서 나를 충전한다. 완충이 되어야 다시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날 마음도 생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집에 머물며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 적당한 물과 햇빛이 필요하듯 나에게는 필수적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도 가끔 주말에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고 집에만 있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했던 행동이지만, 지금 떠올려보니 집순이가 바깥 생활을 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혼자 집에서 뭐하냐고?
외향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집에만 있어도 하루를 정말 다채롭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 나는 집순이지만 하루 종일 침대와 물아일체인 상태로 시간을 보내는 타입은 아니다. 할 일이 어찌나 많은지 지루할 틈이 없다. 때로는 하루가 짧게 느껴질 때도 있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책도 읽고,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취미로 배운 캘리그래피나 드로잉을 하기도 하고, 반려식물도 돌보고, 유튜브도 보고... 뭐 이것만 해도 하루는 금방이다. 바깥공기를 쐬고 싶으면 집 근처 산책로를 걷거나, 벤치에 앉아 햇빛을 쬐며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집 근처 산책은 집순이에게도 부담 없는 외출이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제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변화의 흐름이 어떤 면에서는 반가웠던 것 같다. 나 같은 집순이에게는 최적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예전만큼 여행을 자주 다닐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집순이지만 여행은 좋아한다. 평범한 일상의 활력소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생각보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마냥 참고 안 다닐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요즘은 한 번씩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곤 한다. 하지만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탓에 예전만큼 온전히 즐기지는 못한다. 다시 예전처럼 마스크 밖의 공기도 느끼고 싶고, 길거리 음식도 먹고 싶고, 마스크 없이 사진도 찍고 싶다.
하지만 내재된 집순이 성향 때문인지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 집이 가까워질 때 느껴지는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이 있다. 마침내 집에 도착하여 내 방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익숙한 내 방 공기, 그 안에서 비로소 편안해진다.
집을 좋아하는 집순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정확히는 혼자 있는 집, 나만의 공간을 좋아한다. 공휴일이나 주말 아침 부모님이 일이 있어서 나가시고 혼자 집에 남을 때는 조금 설레기도 한다. 오롯이 나 혼자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 좋다. 느슨하고 나른한 공기, 평온하고 고요함,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편안함.
내가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독립을 하면 되지 않냐고 말하지만 또 외로운 건 싫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은, 모순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집순이가 바로 나다.
누군가와 함께 살면서 얻는 정서적 안정감과 소소한 즐거움도 포기할 수는 없기에 독립하지 않는다. 물론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얻는 여러 가지 편안함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항상 농담처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