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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Jun 30. 2022

심사숙고해서 고른 보람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치과의 풍경. 환자들이 각자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원장님께서 자리를 옮겨가며 진료를 보신다.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내 차례를 기다리며, 다른 환자들은 어떤 진료를 받나 궁금한 마음에 귀를 기울여본다.


첫 번째 환자는 이가 흔들려서 왔다는 할머니.

"어머니 이건 잇몸뼈가 다 녹아버려서 방법이 없거든요. 지금도 거의 빠져있는 상태라서 빼야 돼요. 오늘 주사 맞고 빼드릴까요?"


두 번째 환자는 과잉치 때문에 온 유치원 꼬마.

"선생님이 한번 볼까? 아~~ 해보자. 음.. 여기 거울 좀 볼래? 이걸 빼야 다른 이가 예쁘게 잘 자라요. 주사 맞을 때는 조금 따끔할 거야. 그래도 잘할 수 있지?"


세 번째 환자는 잇몸이 붓고 아파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는 아저씨.

"아이고 이미 고름이 많이 찼네요. 이때까지 어떻게 참으셨어요? 오늘 일단 염증 치료해드릴게요."


그리고 다음 환자인 나는, 임플란트를 하러 갔다. 2월부터 시작한 임플란트 치료가 거의 4개월 만에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누워서 치료를 받으며 지난 4개월을 되짚어보았다.




어금니 주변의 잇몸이 조금 붓고 아팠던 것이 시작이었다. 예전에 신경치료를 하고 지르코니아 크라운을 했던 치아였는데 집 근처 치과에 갔더니 잇몸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염증 치료를 하며 항생제도 복용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크라운이 쏙 빠져버렸다. 밥 먹다가 뭔가 씹혀서 뱉어보니 나의 어금니였던 것이 나왔을 때의 황당함이란...


부리나케 치과에 전화하여 상황을 설명하니 바로 오라고 했고, 진료를 본 후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충치 있는 부분을 제거하면 남는 치아가 거의 없고, 뿌리 쪽 염증 때문에 치조골까지 일부 녹은 상태라서 빼고 임플란트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었다. 임플란트는 어르신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30대에 임플란트를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알고 보니 요즘은 의외로 2,30대에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위안이 되기는 했다.)


정말 빼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지 좀 더 알아보고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다른 치과도 두세 군데 정도 더 방문해보았다. 하지만 다들 비슷하게 말했고, 혹시 원한다면 치아를 살려서 다시 크라운을 할 수도 있으나 예후가 그리 좋지는 않다고 했다.


임플란트를 해야 되는 상황을 인정하고 나니 이번에는 어디서 해야 될지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임플란트는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오랫동안 사용해야 되는 새로운 치아를 심는 일이니 신중하게 결정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순히 가격이 싼 곳, 광고를 많이 하는 곳이 아닌 '정말 잘하는 곳'을 찾고 싶었다. 식당으로 따지면 숨겨진 맛집 같은 곳이랄까.


인맥을 총동원해서 알아보고 몇 군데서 상담을 받아보았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지금 다니는 치과의 원장님을 만나고 바로 마음을 굳혔다. 원장님은 친절함과 카리스마를 겸비하신 분이었다. 친절하지만 정확하게 설명해주셨고, 전문가로서의 카리스마는 있지만 권위만 내세우지는 않았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줘야 결정이 수월하다. 물론 선택은 나에게 달려있기는 하지만,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는 식의 애매한 말은 오히려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원장님께서 시원시원하게 설명을 해주고 확실하게 결론도 내려주신 덕분에, 믿음을 가지고 방문한 첫날 바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은 첫날이라서 조금 끼는 느낌이 있거나 씹을 때 약간 통증이 있을 수도 있는데 내일쯤 되면 아마 괜찮아질 겁니다. 혹시 사용하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치과로 전화 주시고요.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원장님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임플란트가 끝났다! 나 역시 진심을 담아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첫날은 없던 치아가 생겨서 그런지 조금 불편한 느낌이었는데 다음 날이 되니 원래 내 치아였던 것처럼 정말 편해졌다. 의술이 좋긴 좋구나, 라는 생각과 더불어 심사숙고해서 치과를 고른 보람이 있다고 느꼈다.


사실 기다리는 동안 원장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상대가 누구든지 눈높이에 맞는 설명을 해주고 상황에 따른 치료법도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문가가 가져야 될 태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


전문가로서의 권위 내세우며 환자에게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치료 한다던지, 친절하지만 애매모호한 태도로 환자를 혼란스럽게 해서는 신뢰를 얻기 힘들 것이다.


첫 만남에 신뢰를 주신 원장님처럼 나도 그런 약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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