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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Jun 21. 2022

뜨개질을 하는 마음으로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글은
책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 :)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더니 브런치에서 응원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왔다. (음.. 응원인지 아님 게으름 피우지 말고 글을 생산하라는 압박인지는 모르겠다..ㅎㅎ) 경험상 2주 정도 글을 안 쓰면 이 알람이 오는 것 같다.  


아마 자동으로 설정되어 있는 알람이겠지만, 안 그래도 한동안 글을 못 써서 마음이 불편했기에 일단 책상 앞에 앉아본다. 꾸준히 글 쓰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오랜 시간 글을 안 쓸 때면 마치 숙제를 안 한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다.(아니 대체 왜 이런 거죠? 저만 그런가요?ㅋㅋ)




확실히 예전에 비하면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초창기에는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흘러나와서 거의 매일같이 글을 올렸다. 그 글들을 모아 브런치북을 4권 만들고 나니 동력이 좀 약해졌다. 아마 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웬만큼 비워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도 이런저런 생각은 많다. 그런데 생각만 많고 정리가 되지 않아 글을 못 쓰고 있다. 반찬가게 매니저 하느라, 약국 자리 알아보느라, 차분히 앉아서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게 핑계라면 핑계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쉽고 빠르게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정해진 장소에서 나만의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만 비로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 탓이다.


음.. 솔직히 말하면 핑계는 핑계일 뿐 요즘 글쓰기에 약간의 부담감이 생긴 것 같다. 내가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장르로 따지면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에세이는 자칫 잘못하면 마치 일기처럼 너무 사적인 내용에 그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안물안궁'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써서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글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비교적 가볍게 일상 공유 글을 올리기도 하는 블로그와는 달리,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좀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을 변비에 비유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극심한 변비에 시달리는 것은 결국 너무 잘 쓰려고 하는 부담감, 압박 때문이다. 따라서 이 병에 필요한 것은 이완이다. 그래서 내가 무슨 대단한 작가도 아닌데 힘 빼고 그냥 써 보자고 다짐해보지만, 누구에게도 와닿지 않을 일기 같은 글을 쓸 수는 없다는 생각에 또 주저하게 된다.


솔직함은 분명 미덕이지만, 사람이 똥을 화장실에서 누는 것은 솔직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자기 안의 찌꺼기를 노출하는 게 소통으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그 노출로부터 한두 걸음 나아가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어왔다.

이윤주 <나를 견디는 시간>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기 안의 찌꺼기를 그냥 노출만 하는 것은 그냥 '똥'일뿐이므로, 단순히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것이 '소통'으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한두 걸음 나아가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글을 쓰면서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내 글에는 그 '무언가'가 있는가, 하고 말이다.


정여울 작가는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이런 고민에 대한 답으로 '나 혼자 간직하는 게 나은 이야기'와 '함께 나누면 더 좋은 이야기'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내 안의 찌꺼기를 배설하거나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신세한탄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려면, 개인의 이야기에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알면 알수록 에세이라는 장르가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그러다 보니 부담감이 생겨 글이 쉽게 써지지 않는다. 그래서 글이 되지 못한 채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여있는 생각들이 저마다 먼저 꺼내 달라고 아우성이다. 파묻혀 있는 생각들을 꺼내 닦아보고 이리저리 매만져서 글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야 되는데, 선뜻 시작하기가 어렵다. 정리가 안된 생각이 많아지니 사람이 좀 예민해진다. 답답하고 약간 짜증이 난 상태라고나 할까?





그러던 중 최근에 읽은 에세이에서 글쓰기에 대해 무척 공감되는 내용을 발견했다.


생각해보면 내게 글을 쓰는 일은 뜨개질에 가까운 것 같다. 이 뜨개질은 한가하게 앉아 '뜨개질이나 해볼까'로 시작해서 결국 '내 반드시 끝을 보고 말리라'는 전투적인 자세로 돌변할 때가 태반이다. 처음에는 대충대충 성기게 뜨지만, 나중에는 다시 돌아가 성긴 부분을 조여주고 다른 실과 다른 짜임을 채워 넣어야 한다. 때로는 떴던 실을 풀고 다시 떠야 할 때도 있다.

한수희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뜨개질처럼 글 역시 처음부터 '짠'하고 완성된 무언가를 내놓을 수는 없다. 그러니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한가하게 앉아 '뜨개질이나 해볼까'하고 무심하게 시작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대충대충 성기게 뜨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반드시 끝을 보고 말리라'하는 열정이 생겨나는 것처럼, 글 역시 일단 시작해서 쓰다 보면 나중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 퇴고를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완성작이 나온다. 남들 눈에는 조금 성기거나 삐뚤어진 부분이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는 욕심에 시작조차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다짐해본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의 씨앗을 꺼내어 하나씩 메모를 해본다. 두서없이 짧게라도 쓰다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낀다. 결국 글쓰기는 재능도 중요하지만  글쓰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며 꾸준히 쓰는 끈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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