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송신 분쟁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개념은 ‘보편적 서비스’(universal service)다.
지상파방송은 보편적 서비스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거나, 보편적 시청권 보장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난무한다. 한국케이블TV협회의 성명서를 한번 보자. “시청자의 보편적 시청권을 강조하고 보편적 시청권이 필요한 채널은 의무재송신 되어야 한다”
보편적 서비스는 결국 의무재송신과 재송신료 면제로 연결된다.
케이블 TV협회 – SO협의회 성명 재송신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일부 발췌)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첫째, 재송신 대가산정방안(기준) 마련 위해 상설협의체 운영 및 제도화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지상파와 유료방송 사업자간 이익형량 요소(재송신에 의한 지상파 광고수익 증가, 유료방송 가입자 확대, 재송신 송출비용 등)를 선정해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산정방안을 마련해야 소모적 분쟁은 해소될 수 있다.
둘째, 직권으로 방송이 재개되는 경우, 재송신료 지급을 면제해야 한다. 직권조정에 의한 방송재개가 이뤄지는 경우 해당 방송채널에 대해서는 의무재송신에 준하는 위상으로 저작권법 예외조항을 추가해 재송신료 지급을 억제하고, 시청자의 보편적 시청권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또한 명령불이행 시 유료방송과 함께 지상파방송사도 형평성 있게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재송신료 협상에 VOD 등 부가서비스까지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최근 지상파방송사들은 재송신료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SO들에 대해서는 VOD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보편적 시청이 필요한 지상파 실시간 방송을 다양한 부가상품 판매 수단으로까지 악용하겠다는 전략으로 절대 허용돼서는 안 될 일이다.
마지막으로 보편적 시청이 필요한 채널에 대한 의무재송신을 확대해야 한다.
케이블TV협회 주장의 핵심은 지상파방송이 보편적 서비스라는 것이다. 보편적 서비스는 의무재송신 등 재송신 규제의 근거로 등장하는 근간 개념이다.
‘보편적 서비스’ 또는 ‘보편적 시청권’는 규제의 근간이 되는 매우 중요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그 용어의 정확한 개념과는 달리 진영논리에 의해 상투적.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지상파방송의 보편적 서비스 여부는 지상파방송이 어느 수준으로 규제될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개념으로 자세히 따져 살펴봐야 한다.
보편적 서비스는 한 국가가 국민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요구되는 필수적인 재화에 대해 최소한의 이용권을 보장하는 서비스로 정의된다(이종기, 이상우, 이봉규, 2009). 철도, 교통과 같은 부문에서 출발해 유선전화 등 통신부문으로 확대된 개념이다.
방송과 같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통신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들이 명시적인 제도를 통해 보편적 서비스 역무로 규정해 사업자들에게 강제한다(김영주, 2008). 우리 법에서도 전기통신사업법 제2조 10호에 “모든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적절한 요금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전기통신역무”로 규정하고 있다. ‘유선 전화’와 ‘인터넷’이 보편적 서비스 대상이다.
방송은 어떨까?
방송을 보편적 서비스 역무로 명시적으로 규정한 법이나 규정은 없다.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약 10여 년 전 스카이라이프 재송신 분쟁으로 인해 학계와 정부에서 논의된 적이 있다. 하지만 타당성이 부족하고 현실적 문제가 많아 법제화 되지 못했다.
당시의 논의를 살펴보자. 방송에서의 보편적 서비스 개념은 저소득층, 노인/장애인등 사회 취약계층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써 누려야 할 최소한의 미디어 이용권과 정보 접근을 보장 받음으로써 미디어가 제공하는 편익이 전 국민에게 평등하게 돌아가게 해야 하는 것으로 봤다. 특히 유료방송이 확대됨에 따라 유료방송에서 배제되는 소외 계층의 정보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의 확대 재생산이 우려되기 때문에 방송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 보장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보편적 접근권 보장의 중요성에는 동의하지만 방송을 보편적 서비스로 규정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학계와 업계의 입장은 둘로 나뉘었다.
지상파방송을 보편적 서비스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KBS가 수신료라는 준조세를 전기요금에 포함해 징수하고, 국가 예산의 지원을 받고, 의무 재송신채널로 지정되기 때문에 보편적 서비스로 규정해야 한다고 한다.
방송법 제44조(공사의 공적책임)에서는 난시청 해소에 대한 의무를 KBS에 부과하고 기초생활대상자,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수신료 면제 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방송법 제78조에서는 KBS1과 EBS를 의무재송신 채널로 규정해 누구든지 지상파방송에 접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방송법에 규정된 내용을 살펴보면 방송에 대한 접근권과 공익성을 강제하고 있는데 이는 보편적 서비스적 요소라고 본 것이다(김영주, 2008).
이종기와 이상우, 이봉규(2009)도 미국은 1992년 제정된 케이블TV 소비자 보호와 경쟁에 관한 법(1992 the cable television consumer protection and competition act)에 케이블사업자의 지상파 의무재송신을 규정해 지상파방송의 지역성과 공익성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지상파방송을 암묵적으로 보편적 서비스로 인식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럽은 2002년 보편적 서비스지침(제31조)을 통해 방송을 보편적 서비스로 수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2001년 방송정책기획위원회에서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가 처음 언급됐다. 통신의 보편적 서비스 개념을 방송에도 적용함으로써 사회집단 간 지식격차 및 정보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방송의 중요한 정책목표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방송위원회, 2001).
법제상으로는 보편적 서비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방송법 제43조(KBS 설립목적), 제44조(KBS의 공적책임)에 의해 암묵적으로 보편적 서비스로서의 성격을 충분히 내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커버리지, 내용규제 등을 통해 보편적 서비스가 강제되었고 유료방송에의 의무재송신이 그 구현방식이라고 본다(곽정호, 2005).
방송을 보편적 서비스로 규정해야 한다는 학자들은 주파수의 희소성, 사회적 영향력으로 인해 국민 누구나 방송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접근성 보장과 공익성을 강제하기 위해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곽정호, 2005; 김영주, 2008). 충분히 타당한 주장으로 설득력 있다.
반면 방송을 보편적 서비스로 강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많다. 방석호(2004)는 방송은 전화와 같은 전 국민의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방송의 공공재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통신과 동일하게 ‘정보수단에의 접근 가능’ 즉 접근권 보장은 타당하다. 하지만 방송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닌 저작권을 지닌 콘텐츠를 전달한다.
즉 통신의 보편적 서비스는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권 보장이지만 방송은 콘텐츠까지 전달하기 때문에 통신과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방송이 보편적 서비스가 되기 위해서는 ‘전달하는 콘텐츠가 내용 중립적이다’라는 전제 하에서 성립된다. 그런데 100% 내용중립적인 방송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언론 자유의 소극적 측면인 ‘보지 않을 권리’를 침해할 위험이 발생한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또 방송을 보편적 서비스로 규정하고 적용하는데 있어서 현실적 문제도 있다. 보편적 서비스로 규정할 경우 보편적 서비스 제공 사업자의 범위와 비용 보전 제도, 시장에서의 경쟁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보편적 서비스를 방송 전체로 할 경우 케이블, IPTV, 위성방송까지 포함되는데 유료방송사업자 전체를 보편적 서비스 대상으로 정하는 것은 타당성도 없고 상식적으로도 수용되기 힘들다. 지상파방송으로 한정하는 경우에도 상업적 재원구조를 가진 SBS 등의 민영 상업방송에 보편적 접근을 위한 비용보전을 해줘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공영방송으로 제한하더라고 MBC는 민영방송과 동일한 상업적 재원구조를 가지고 있고 난시청 해소에 대한 의무가 없기 때문에 타 민영, 상업방송과의 형평성 문제와 비용보전의 문제가 발생한다. 또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 침해도 문제가 된다. 저작권이 있는 방송을 의무 재송신하도록 강제하면 상업적 재원구조를 가진 방송사의 재산권이라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KBS와 EBS로 대상이 줄어든다. 방송을 보편적 서비스로 봐야한다는 주장 중 방송법에 암묵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내용을 종합하면 ‘의무재송신’되고 ‘난시청 해소의 의무’를 가진 KBS 또는 EBS 정도에 국한된다. KBS의 경우 수신료를 받고 의무재송신 대상이며 난시청 해소의 의무가 있어 타당하다.
명시적으로 보편적 서비스로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보편적 서비스와 동일하게 접근권 보장이 강제되고 있다. 하지만 KBS가 내용중립적인 콘텐츠만을 전달하느냐에 대해서는 사회적 동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정권이 KBS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로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내용 중립적인 뉴스와 시사보도를 담보하지 못하는데 방송 중 유일한 보편적 서비스로 제공될 경우 정보의 편향성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시장에서 KBS는 MBC, SBS 등과 경쟁 사업자인데 보편적 서비스를 위한 각종 비용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것은 시장에서의 건전한 경쟁을 저해한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화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은 사회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미디어 이용권과 정보접근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미디어가 제공하는 편익이 전 국민에게 평등하게 돌아가 궁극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 목적은 KBS와 EBS와 같은 특정 방송만을 보편적 서비스로 정하기보다는 다양한 채널과 정보를 접근 가능하게 해줌으로써 달성된다는 것이 다수 견해다.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지상파, 케이블TV, IPTV, 위성방송, OTT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청자들이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유료방송 서비스는 각종 복지제도를 통해 경제적 부담없이 지상파방송을 포함한 수십 개의 채널에 접근가능도록 지원한다. 이 때문에 굳이 특정 방송만을 보편적 서비스로 규정함으로써 얻는 효용과 목적 달성 효과가 크지 않다고 본다.
살펴본 바와 같이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화는 내용의 중립성 문제 때문에 찬반이 나뉘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보편적 서비스의 취지와 수단은 방송법을 통해 의무재송신, 난시청 해소라는 접근 가능권을 KBS1과 EBS에 강제함으로써 암묵적으로 보장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KBS1과 EBS로 한정됨에 큰 이견이 없다.
그런데 재송신 분쟁에서 보편적 서비스 개념이 단골처럼 등장하는 이유는 MBC와 SBS를 의무재송신에 포함시키기 위한 의도 때문이다. 지상파방송이 누구나 접할 수 있어야 하는 보편적 서비스이기 때문에 의무재송신 되어야 하고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의무재송신로 지정된 지상파방송을 공짜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의무재송신 채널 지정을 통해 정부가 수신료 또는 비용보전제도를 통해 비용을 부담하고,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공짜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용의 주체가 공익적인 기관이 아닌 KT, SK브로드밴드, LGU+, CJ헬로비전, 티브로드(태광 계열), HCN(현대백화점 계열) 등 대부분이 재벌 계열기업이다. 시장의 사업자들이 마땅히 지불해야할 비용을 정부에 전가시키고 재벌 기업들이 더 큰 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다.
이 때문에 한국케이블TV협회 등이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입법 청원을 시도하지만 아무런 논리타당성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 논의는커녕 학계에서도 더 이상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