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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r 14. 2019

‘다툼과 서운함’... 1주년 결혼기념일 경험기

최악의 결혼기념일에서 우리 부부가 느낀 건

사람들은 흔히 최초와 최고 중 하나를 손에 꼽는다. 그중 이제 막 결혼한 이들에게 1주년 결혼기념일이란 그들이 새롭게 써 내려가는 날을 역사적으로 기리는 최초의 날이자, 최고의 하루로 기억될 터. 필자 또한 1주년 결혼기념일을 지냈다. ‘가족’이란 무슨 의미인지 되새긴 순간을 맞이한 건 모든 신혼부부와 같을 것이며, 다른 점은 크게 다퉜기에 최악이었다는 것이겠다. 최악의 하루를 보낸 뒤 우리 부부가 화해한 계기, 시사점은 무엇이었을까. 


결혼기념일, 나만 중요해? 


그날 싸움의 발단은 ‘기념일' 자체였다. 우리 부부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결혼했다.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가 있었고, 결혼하기로 결정한 이상 해를 넘기고 싶지 않아서다. 내 생각에 배우자 및 양가 모두 이해해주셨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꽃 ‘포인세티아’로 장식한 결혼식장에서 우리 둘은 하객의 축하를 받으며 미래를 약속했다. 해를 넘겨 1년, 그날이 오기 며칠 전 배우자는 여행을 제안했다. 막상 기념일 당일은 출장에 가 있으니 만나기 어렵지만 그래도 기념일을 넘어가기엔 아쉬우니 며칠간 여행을 다녀오자는 게 취지였다. 상황이 맞물려 어렵게 됐으니 수긍했고, 마음을 써주는 게 고마웠다. 그러나 배우자는 예상을 깨고 일찍 돌아왔다. 막상 그는 왔으나 계획이 없던 우리 둘은 할 일이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는 것 외엔 그날 오후까지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막상 상황이 가능해지니 나라도 먼저 챙기지 못한 데서 온 미안함, 나만큼 기념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은 그에게 실망감 또한 커져갔다. 그는 얄미울 정도로 여유로웠다. ‘저녁 맛있게 먹으면 됐지'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의 공기는 차가웠다. 손편지라도 서로 써줬어야 했는데, 같이 쓰는 선물이라도 사야 하는데, 꽃 한 다발, 혹은 케이크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에 내 그도 잔뜩 신경이 예민해져 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레스토랑 근처 꽃집서 꽃다발을 사기로 했다. 이미 저녁 예약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설상가상으로 꽃집도 문을 닫았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불 꺼진 가게 안에 사람이 있어 ‘기념일인데 부탁한다.'는 읍소에도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한 마디도 거들지 않았다. 식당에 들어가니 기념일을 축하하는 많은 이들이 주변 곳곳에서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밥을 먹자니 신경질이 났다. 결국 착석한 지 얼마 안 돼 그곳을 나섰다.


그는 차로, 나는 지하철 순환선을 타며 1시간 뒤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동안 화가 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그간 알던 세심하고 사려 깊은 사람은 어디 간 건지. 나만 이날이 중요하다고 여기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 상황은 전혀 우리의 편이 아니었지만, 집에 가면 우선 화해하자. 더는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날은 우리의 날이기 전 내가 만든 날이기도 하니까. 귀가 전 근처 백화점에 들러 케이크와 남편에게 줄 선물을 사 들고 갔다. 


찻잔, 그리고 그날의 꽃


집에 들어오니 거실엔 찻잔 세트와 포인세티아 화분, 그리고 꽃다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 왔어?” 

“이게 뭐야?” 

“그냥. 미안해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목덜미를 긁적이며 말하는 남편을 보며 펑펑 울었다. 세 가지 선물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 그날을 기억할 수 있는 것. 그는 기념일을 챙기고 싶었다고 했다.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여행으로 모든 걸 다 아우를 수 있을 거라고 봤단다. 큰 것만 챙기느라 소소한 하루의 일상을 놓친 자신을 나무란 필자의 태도가 오히려 당황스러웠단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 하루쯤은 뜻깊게 지냈어야 하는 게 맞았다는 생각에 동의했다고. 


우리 부부는 그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기념일을 챙겨야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데 뜻을 같이했다. 동시에 정말 성향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3년을 만나 연애했는데도 모르겠더라


우리 부부는 요즘도 종종 그때를 얘기하며 웃는다. 3년을 꼬박 만나 결혼했는데도 그렇게 서로를 몰랐나 싶어서다. 이전까진 주변에서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싸울 땐 남보다도 못하고, 새로운 이유가 생겨 싸운다고 할 때마다 우리 둘은 운이 좋았구나 싶었다. 수많은 인간관계 중 가장 쉽고도 어려운 관계가 바로 ‘부부'임을 최근에야 깨달았다니. 


그럼 앞으론 어떻게 하면 될까. 우린 일상을 꾸준히 살아간다. 다만 서로 분명히 다름을 인지하고 그걸 풀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단 걸 이해하며 잘 지내기로 했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여러분은 결혼기념일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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