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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ug 29. 2019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머리에 종이 울리나요?

아니오, 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해니야, 너네 오빠한테 뭔가 신호가 왔어? 

‘이 사람하고 결혼하겠구나'라는 강력한 느낌 같은 거 말이야.”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앞둔 친구가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 친구들은 왜 자꾸 곤란한 질문을 할까?(하하) 



대답을 먼저 하자면 ‘아니오’


대학 시절, 교수님이 수업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결혼은 때가 되었을 때 ‘마침 곁에 있는' 사람이랑 하는 거라고. ‘운명적인 상대’를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을 가능성이 있는 갓 성인이 된 제자들이 듣기에는 다소 충격적인(?) 수위의 발언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교수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소위 결혼 적령기에 들어 시집, 장가간 주변인들의 증언이 꽤나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만나자마자, 결혼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는 말들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심지어 ‘삘’이 퐉 꽂혀서 만난 지 2주 만에 결혼을 결심한 커플도 있었다. 외국에 사는 사람과 화상 채팅하다가 결혼을 결심하고 처음 만난 날이 부모님께 결혼 허락받는 날이었다는 사례까지 봤다.

이쯤 되니 나도 궁금해졌다. 기어코 결혼에 이르게 만든다는, 강력한 이끌림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빨간 실’로 이어진 사람들이 운명처럼 만난 것인가? 그 사람들에게는 있는 일이 나에게는 왜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결혼을 딱히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나는 평생 그 같은 경험을 해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살짝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끝까지 내 머리에는 종이 울리지 않았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까지 갈 거라고는 처음에는 상상도 못 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면 노래 가사도 들어맞고 딱 좋았을 텐데 사실 우연이었다. 고백받고 사귀기 시작할 때는 “에라~ 한번 사귀어보고 아님 말지 뭐"라는 심정이었다. 초반에는 핏을 맞추느라 갈등이 조금 있긴 했지만, 함께했던 시간의 대부분이 안정적이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시작부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실망할 일도 거의 없었다. 의외로 서로가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비로소 기뻤다. 알고 보니 우리는 취미도 같고, 여행을 똑같이 좋아했다. 국내외로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참 운이 좋았던 케이스다. 어쩌다 보니 만났고, 어쩌다 보니 잘 맞았다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생활적으로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결혼을 할 만한 심적 여유도 있었다. 남들 다하는 결혼이라는 걸 해보고 싶어 졌고, 결혼 그 이후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러다 보니 물 흐르듯이 결혼 이야기가 나오게 됐던 것 같다. 2017년 추석 때 떠난 베트남 다낭 여행에서 반지와 함께 담백한 프러포즈를 받았다. 결혼은 올해 했으니까, 프러포즈와 실제 결혼식까지 길다면 긴 시간이 있다. 재촉하지도 서두르지도 않고, 상황 되는 대로 준비해서 결혼했다. 그 사이 어려움이나 갈등은 없었다.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를 잘 알아 익숙해지고, 믿음이 쌓이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결혼’이라는 건 단지 우리 사이를 새롭게 규정짓는 형식, 계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 것이다. 어찌 됐든 함께 갈 사람, 평생 파트너를 가진 느낌은 든든하니 좋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의 말은 맞았다


그런데 절반만 맞았다. 남편은 ‘마침 곁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마침 나한테 잘 맞는 사람’이다. 곁에 있었는데 결혼할 만한 조건의 상대가 아니라면 생각을 달리했을 것이다. 귀에 종이 댕댕 울리는 경험은 못해봤지만 그 대신, 미끄러지듯 결혼에 이르는 경험은 했다. 연애 기간을 좀 두고 나서 결혼을 해서인지, 결혼 후 우리 사이가 달라지거나, 서로 의외의 면을 새롭게 발견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좋은 점이다. 좁은 집에서 갑자기 서로 맞추느라 복작대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집 청소하기는 싫어하지만, 주방 정리만은 확실히 하는 걸 좋아한다는 그런 사소한 것들을 알아가는 중이다. 재밌다. 


글을 줄줄이 쓰고 다시 읽어보니 ‘연애 좀 하다 보니 결혼하게 됐다'는 재미없는 이야기를 굳이 쓴 것만 같다. 이런 사람 주변에 많은데 굳이 글로 썼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주 시라. 


그건 그렇고, 친구야 늦었지만 대답이 되었겠니? 결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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