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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Sep 11. 2019

내 남편의 서른 살 생일 축하해주기

마음껏 사랑해 줄 수 있어서, 결혼 생활은 행복하다.

지난주, 남편이 서른 살을 맞이했다.


“생일 축하해! 웰 컴 투 30대!”


우리 부부의 생일은 오전 12시가 넘어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같이 살다 보니 생일을 그냥 지나치기 애매해졌다. ‘어차피 오늘 밤 같이 저녁 식사를 할 텐데 굳이 12시가 되자마자 뭘 준비해야 하나?’, ‘생일 축하 노래라도 틀어야 하나?’ ‘작은 케이크라도 준비할까?’ 정말 짧은 순간이지만, 특별한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결국, 축하한다는 메시지만 건네기로 했다. (야근으로 지친 몸을 끌고 빵집에 갈 여유가 없었다는 건 비밀) 


남편은 시곗바늘이 12시를 정확히 가리킬 때 까지도 노트북을 두드리며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 남편의 곁에 살며시 다가가 볼에 살짝 입맞춤했다. 남편은 아직도 자기가 30대가 되었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지, 아직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걸?” 


결혼 후, 우리는 생일 당일이나 생일이 있는 주말을 항상 둘이 보냈다. 딱히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인 룰이 되었다. 연애할 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남편에게 미역국을 끓여주는 것만으로도 특별했다면, 결혼한 부부에게 미역국은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이 되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매년 돌아오는 남편의 생일은 아내에게 주어지는 커다란 프로젝트 아닐까. 



남편의 서른 살 생일 


서른 살을 맞이하는 생일 당일, 저녁 식사를 같이하기로 약속했다. 마음씨 착한 남편은 "비싼 레스토랑 예약 안 해도 돼. 난 그냥 집 근처 술집 가서 밥 먹는 걸로도 충분해"라고 말해줬지만, 맛있고 분위기 좋은 곳에 데려가고 싶었다. 평소에 외식을 잘하지 않기에 기념일을 핑계로 프렌치 레스토랑에 갔다. 


저녁 8시, 늦은 저녁 식사였다. 늘 대화가 끊기지 않았던 때와 달리 남편은 기운이 없어 보였고, 회사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일이 덜 끝났나?’라는 생각도 잠시, 준비한 서프라이즈 선물을 빨리 건네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원래 저녁 식사가 끝난 후에 보여주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바꾸고자 메인 요리를 다 먹을 때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계정 팔로우해 봐.” 


눈앞에 있는 아내에게 갑자기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으니 남편도 깜짝 놀랐는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보았다. 


"일단 팔로우해 보라니까"  


[100명의 지인으로부터 받은 축하 영상을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이라이트에 업로드했다]


짜잔! 남편에게 보낸 서른 살 생일 선물은 친구, 지인, 동료, 상사 등 그가 30년간 살아오면서 함께한 소중한 사람들에게 부탁해 모은 생일 축하 메시지와 영상이었다.  


"와, 어떻게 이런 걸 다 했어? 100명이라니... 진짜.. 와..." 


남편의 입가에선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지인들에게 머리 숙여 부탁해 모은 100개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하나하나 소중히 재생하는 남편을 보니 준비하길 잘했구나 싶었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추억이 가득 담긴 사진을 모아 사진첩을 만들었다]


감동을 주는 선물의 조건 


남편에게 연애 시절 처음으로 받았던 생일 선물은 손으로 쓴 편지와 토이 카메라였다. 당시 미국 출장이 잦았던 남편이 두 달 후인 내 생일을 생각해 미리 준비했던 선물이었다. (뉴욕 한정판이었다는 것도 기뻤지만) 가장 기뻤던 건, '나를 향한 남편의 마음'이었다. 편지를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럽지만 그 정도로 감동이었다. 그 후, 남편은 매해 손으로 쓴 편지를 선물해준다. 나는 그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 남편이 써주는 손 편지가 가장 좋다. 그는 내가 어떤 물건보다도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을 소중히 여긴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항상 남편의 선물은 감동적이었다.  


내가 받았던 그 감동을 남편에게도 주고 싶었다. 그래서 100명의 생일 메시지를 준비했다. 평소에 사람과의 연을 매우 중요시하는 남편이기에 서른 살이라는 인생의 한고비를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축하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성공! 한두 번 밖에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용기 내 축하 메시지를 부탁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선물은 주는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 감동을 주는 선물은 가격이 아니다. 남편의 서른 살 생일 선물은 무려 0원이었다. 

부부가 되면서 연애할 때 보다 간소하게 생일을 맞는 경우가 많아졌고, 함께하는 일상이 늘어난 만큼 특별한 날을 만들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면 부부의 오늘은 언제나 특별한 날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음껏 사랑해 줄 수 있어서 결혼 생활은 행복하다. 남편아, 30대도 둘이서 손잡고 걷자.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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