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가 기러기 아빠까지 생각하다
7월의 무더운 어느 날 저녁, 남편이 귀가했다. 무섭게 퍼붓는 장대비를 헤치고 생쥐 꼴로 나타난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릴 했다.
"다시 장기출장 얘기가 나오고 있어."
"..."
또다. 예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나는 그리고 우리 부부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야 좋을까.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 좋겠다'... 속도 모르는 소리
필자의 남편은 업무 특성상 해외 출장이 잦다. 짧게는 이틀, 길게는 2주씩 해외에 있는 거래처에 다녀온다. 최대한 주말을 피해 다녀오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을 땐 주말을 통으로 다녀오기도 한다. 그가 이렇게 시간을 쓰는 이유는 배우자인 나를 배려하기 위함이다. 평일은 바쁘니 같이 있지는 못하더라도, 주말을 함께 하자는 게 우리 부부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주변에서는 ‘떨어져 있어 애틋하고 좋겠다’, ‘선물 많이 받아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당사자의 피로도와 극심한 스트레스 같은 속사정은 모르니, 우리는 그저 허허 웃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오지로 약 2주간 출장을 다녀왔다. 비행시간만 20시간이 넘는 곳이었다. 회사에서 급작스럽게 대체할 인력이 없으니 내린 결정이었다. 시차도 꽤 나서 연락하기도 쉽지 않았고, 그나마 와이파이도 도심과 호텔이 아니면 잘 잡히지 않아 공항에서만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해외 출장을 다녀오고 나면 그는 몸살을 앓았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아플 수도 없는 필자 또한 마음은 착잡했으나 옆에서 간호해주는 것 외엔 도리가 없었다. 아침 귀국, 잠시 쉬고 오후 출근. 그의 고달픔을 연대하기 위해선 어쩐지 필자 또한 쉬지 않고 회사에 다녀야 한다는 마음가짐도 생겼다.
오지로 출장을 명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그는 오지로 가야 할 것 같단다. 아마도 6개월, 길면 조금 더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비에 쫄딱 맞아 웅얼거리는 모습이 더욱 처량하게 느껴졌다. 아, 정말 너무 괴로웠다. 회사는 왜 하필 우리 부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단 말인가. 솔직히 선진국으로 가게 되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거다. 그런데 치안도 불안한 데다 시설도 열악한 곳을 가야 한다니. 게다가 동행 여부가 걸렸다. 회사에서 부부가 함께 갈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다지만 영 마뜩잖았다. 앞뒤 안 재고 의리상 '동행'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중한 결정이 필요했다.
1) 6개월 이후, 커리어에 대한 고민
2) 임신 가능성과 내원 여부
우선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컸다. 6개월은 꽤 긴 시간이다. 한창 커리어를 쌓고 있는 필자에게 6개월이란 시간은 경력 단절이 될 수도 있는 기간이다. 가뜩이나 대출, 자녀계획 등 여러 큰 문제가 눈앞에 놓여있는 우리 부부는 재무적 상황도 고려해야 했다. 과연 무턱대고 '동행' 하는 게 맞을까. 임신 또한 마찬가지다. 하면 축복이지만, 그곳에서 병원을 국내만큼 잘 다닐 수 있을까? 비용은 또 얼마나 나올 것인가. 회사에서 그걸 부담할 수 있을지, 또한 그 병원 인프라도 신뢰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시의성만 생각할 게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따져봐야 하는 일이었다. 남편은 내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하겠다고 했다.
'기러기'에 대한 고민
며칠 뒤, 다행히도 다른 문제로 당장은 가지 않게 됐다. 결과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물론 마음속으로 필자는 '못 간다'라고 결정하긴 했었다. 아마 그 결정을 남편도 지지해줬을 거다. 다만 이 결정을 내릴 때 '기러기 부부'라는 걸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많은 가정에서 우리가 처했던 상황 때문에 기러기 아빠가 생기지 않았을까. 돈을 벌어야 하는 아빠, 한창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 엇나가지 않도록 돌봐야 하는 엄마. 이 셋의 이해관계가 충돌해 기러기 생활을 하게 된다. 우리는 회사에서, 사회에서 종종 기러기 아빠를 본다. 이들은 회사에서 야근을 자처한다. 끼니도 밖에서 때우기 일쑤다. 또한, 외로워 보인다.
맥락은 다르지만 결국 가정의 미래를 위해 한 명은 희생하는 구조가 과연 맞을까. 장기출장을 마주하고 경험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함께 떠나는 것으로 결정한 선배 부부를 봤다. 어쩌면 몇 년 뒤엔 최근 내린 마음속 결정과 달리, 우리도 무조건 '함께'인 삶을 선택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