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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an 10. 2020

프러포즈, 그럴 거면 하지 마라

프러포즈는 마음의 크기가 중요하다

최근 지인 A가 걱정을 늘어놨다. 결혼식이 코 앞인데, 여전히 프러포즈를 못 했다는 것. 신혼여행지, 혼수 장만 등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하느라 프러포즈는커녕 결혼식 준비도 빠듯할 것 같다고 그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이왕 프러포즈하는 거 정말 멋지게 하고 싶다는 A의 희망 어린 눈빛을 보며 필자는 물었다. 


"여자 친구가 정말 프러포즈를 받고 싶어 하니?" 


당연한 것 아니냐 하는 A의 의문스러운 표정을 앞에 두고 필자는 차라리 프러포즈 이벤트는 안 해도 괜찮지 않으냐고 했다. 대답이 의외라는 그의 말에 진심이야라고 단호히 덧붙였다. 필자의 말에 가시가 돋쳐있다는 건 알고 있을까? 프러포즈, 하지 마라. 정확하게는 '그렇게 할 거면' 하지 마라. 


출처 :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컷


너무 바빠서 결혼식도 생략하려는데 


어느 날이었다. 이제 막 신혼인 B. 여전히 매듭짓지 못하고, 남은 일들을 쳐내느라 바쁘다고 했다. 결혼식을 앞둔 B는 흡사 '홍길동'이었다. 잦은 지방 출장과 이동으로 인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던 것. 그런 그에게 우리는 모두 결혼 준비는 어떻게 잘했는지, 프러포즈는 어땠는지 미주알고주알 물었다. B는 '나 프러포즈 안 받았다'라고 했다. 대답이 의외였다. 평소 회사 내부 행사와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챙기는 부서에서 일하는 친구였다. 이벤트만큼은 확실히 챙기고 지낼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이었던 건지. 생각보다 B는 덤덤했다. 그냥, 결혼을 앞두고 정신이 없어서 챙기는 것조차 사치였단다. 그런 와중에 남자 친구가 먼저 B가 결정할 새도 없이 '나도 정신없고 너도 바쁜데 우리끼리 프러포즈는 뭣 하려 해, 너도 이해해줄 거지?'라고 물었다고. 그렇게 B 커플은 결혼에 골인했다. 


"프러포즈도 안 받고 결혼을 했어? 남편한테 서운하지 않아?" 

"별로. 해줄 거였으면 결혼 전에 했어야 하는 거 아냐?" 


아뿔싸. B는 혼인서약 도장이 채 마르기도 전부터 남편에게 기분이 단단히 상했다. 


영화 : <미쓰 와이프> 스틸 컷


추억은 좋은데, 굳이 거기서?


B의 이야기를 듣던 친구 C는 코웃음을 쳤다. 


"야, 너는 어쩌면 나보다 더 나은 거야. 나는 그 날 기억을 차라리 지우고 싶어." 


울분을 토해내는 C의 표정을 보며, 우리는 모두 말을 아꼈다. 사실 그렇다. C 커플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사회인이 된 지 얼마 안 됐던 시절, 회사 상사를 짝사랑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나이 차이가 꽤 난다는 점에서 A의 연애는 친구들 사이에서 늘 화제를 모았다. 비밀연애는 금방 들켰고, 나이가 있으니 빨리 결혼하라는 어른들의 성화에 그들은 빠르게 웨딩마치를 올렸다. 


결혼식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당시 남자 친구는 신혼집에서 프러포즈했다. 장미 꽃다발과 반지, 촛불이 일렁이는 방. 친구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남자 친구는 표정이 굳은 친구에게 '감동적이지 않냐'라고 물었다. 감동? 누가 봐도 조악하기 짝이 없는데, 이게 어딜 봐서 감동한 거지? 오빠가 준비한 자기 사진이 감동스러운 건 아니고? 결국 그 둘은 그 '센스 없는' 이벤트를 시작으로 말다툼을 벌였다.


출처 : 영화 <오늘의 연애> 스틸 컷


처음 만난 장소에서 프러포즈하고 싶어요… 굳이? 


최근에 만난 친구 D는 결혼식을 몇 달 앞두고 고민이 깊어졌음을 토로했다. 10년 정도 만난 사이. 결혼식이 코앞인데 여전히 프러포즈를 못 했다는 것이었다. 여자 친구가 프러포즈는 됐다고, 그냥 우리끼리 언약이나 간단히 하자고 했단다. 그런데도 본인은 꼭 프러포즈는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마음이 예뻐서 흡족하게 듣던 중, 귀를 의심하게 하는 발언을 시작했다. 


"우리가 아무래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만난 사이잖아. 그래서 말인데 거기서 프러포즈하는 걸 생각하고 있어. 타임머신처럼 추억 회상 느낌으로." 


세상에. 그 둘이 만난 패밀리 레스토랑, 한국에선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런 프러포즈 하려면 차라리 말 그대로 결혼식 준비하기 전에 해야 하지 않나? 얼굴이 일그러진 필자를 보았는지, 다른 친구 한 명이 패밀리 레스토랑은 너무 한 것 같다며, 교외의 좋은 식당에서 차라리 얘기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아, 거긴 '가성비가 좋다'라고 했다. 


프러포즈는 어쩌면 시기가 중요하다. 그 유명한 ‘타이밍’과도 의미가 같다는 거다. 프러포즈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부담스러워서 시기를 놓친 게 아니라, 귀찮고 하기 싫은데 상대방이 원하는 것 ‘같아서’ 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그 커플에게는 이미 프러포즈가 필요하지 않다. 이미 상대방이 그런 마음을 눈치챘기 때문. 그럼에도 프러포즈를 하고 싶다면, 결혼식을 준비하기 전에 이벤트를 만드는 게 좋다. 상대방은 자신을 위해 준비해주는 ‘마음의 크기’에 감동한다. 이벤트가 크고 화려한만큼 만족스러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싶다. 답 프러포즈를 하든, 여성이 먼저 프러포즈를 하든. 대전제는 마음의 크기다. 그게 진리다. 마음의 크기를 부러 적게 표현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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