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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n 17. 2018

프러포즈는 그때 찾아왔다

순간을 소중히, 또는 영원히. '프러포즈'에 대하여

세간이 규정하는 결혼과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은 여전히 좀 다른 느낌이다.




둘 사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그 후 결혼을 위해 나아갔던 기존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와 달리, 한국에선 서로의 결혼 약속 이후 양가 부모님 간 인사와 뒤늦게 프러포즈가 진행된다. 그나마 다행히(?) 요즘은 결혼 전에 프러포즈를 받고 싶단 분위기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먼저 프러포즈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듯하다. 또, 프러포즈에 대한 '답 프러포즈'라는 것을 해주는 분위기도 있다. 친구들이 평소 받고 싶어 했던 프러포즈,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것을 공유해본다.


프러포즈, 꼭 받아야 하나? 대답은 ‘Yes’

필자는 친구 A, B와 매년 한강 둔치에서 열리는 불꽃놀이를 보러 간다. 눈 앞에 펼쳐지는 불꽃을 보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는 듯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우린 늘 가까이에서 불꽃을 보고 싶어 여의도를 찾는다. 거기에서도 잘 보이는 곳은 따로 있다. 이런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일찍부터 길을 나선 뒤 오후 낮부터 돗자리를 펼쳐 놓고 논다. 문제는 이를 기다리기까지 추위도 참아내야 한다는 거다. 몇 년간 우리만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친구 한 명은 그렇게 얘기했다. 다음 불꽃놀이는 63빌딩에서 남자친구가 프러포즈하는 상황에서 맞이하고 싶다고. 다른 친구 B는 유난히 프러포즈 순서에 민감 했다.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기 전 프러포즈를 받고 결혼 준비를 하고 싶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연애한 지 5년이 넘었다.


개인적으론 프러포즈가 그다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만 변치 않을 거라 합의하면 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랬는데, 막상 남자친구와의 연애 기간이 길어지고 종종 결혼하게 된다는 가정을 해볼수록 프러포즈는 중요한 이벤트여야 한다고 생각됐다.


프러포즈는 누군가에게 연애와 결혼을 구분 짓는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연애는 우리가 언제든 헤어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쩌면, 결혼은 수십 년 상대방만 바라보고 살도록 강요되는 일인데, 이를 기념하는 이벤트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던 거다. 사람마다 프러포즈의 개념을 달리 생각할 테니 각자 상황에 따라 인식하겠지만 나는 그렇기 때문에 프러포즈를 꼭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도 중요했다. 형식이 중요하기보다 그 상황이 주는 감동을 받고 싶었다. 결론적으론 나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뒤 결혼식장을 결정한 다음 받았다. 누군가에겐 김이 좀 샌 것 아닌가 싶겠지만 내 프러포즈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마음이 가난할 때 받았던 나의 그 순간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받고 싶다는 얘기를 꾸준히 해왔으나 강요하진 않았다. 사실 그것조차 마음에 우러나야 하는 일인데 결혼을 하는 데 있어 우리 사이를 진지하고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 일은 당연히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알아서 잘하겠거니 싶었다. 다만 결혼 허락을 다 받고 나니 프러포즈가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화가 났다.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는 것 아닌가, 나도 평생 프러포즈 받지 못해 남편 욕을 하는 사람이 되는 걸까 하는 마음이 한 켠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던 것도 잠시다. 개인적으로 결혼이 다 뭔가 하는 시련을 겪는 시기가 찾아 왔었다. 우리 관계를 의심하는 사건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인한 마음의 가난이었다. 자존감은 낮아지고 모든 삶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던 기간이었다. 그러던 중에도 미리 끊어둔 비행기 티켓이 있어 여행을 가야만 했다.


프러포즈는 그때 찾아왔다.


여행 마지막 날, 남자친구는 좋은 곳에서 묵어 보자며 급히 숙소를 변경했다. 그전까지 여행 비용을 아끼느라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싸구려 방을 예약해 잠만 자고 나오던 터였다. 거금을 들여 짐을 푼 그 객실은 한눈에 지역 명소가 들어오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외출하고 오니 방에 작은 편지가 놓여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려는데, 남자친구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봉투 겉면엔 나의 ㅇㅇ에게, 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봉투 안엔 3장짜리 글씨 빼곡한 편지가 적혀 있었다. 읽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3장엔 3년간 연애한 우리 시절이 연 단위로 적혀 있었다. 읽을수록 마음에 무언가가 일렁였다. 마치 눈앞에서 나만을 위한 불꽃놀이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말 작고 초라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던 시기에도 변함없이 빛난다 말해주는 말, 나에게 다이아몬드가 되고 자신은 그를 빛나는 목걸이 줄이 되겠다는 마지막 한 마디를 읽으니 내면에 가득했던 독이 빠져나오는 듯했다.

그때 그가 들어왔다. 작은 쇼핑백을 들고 와 그 안에서 반지를 꺼내 무릎을 꿇으며 '결혼해달라'고 했다. 그 순간 앞으로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닥쳐와도 내 앞에 와 가장 웅크린 자세로 몸을 아낀 그 사람을 지켜주겠다 다짐했다.


내 프러포즈는 어찌 보면 별 것 없는 종이 3장짜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말로 때우고 남들이 다 하는 것에 왜 그리 유난을 떨었느냐며 너스레를 떨 수도 있을 테고. 그런데도 내게 있어 그 날은 순간과 공기, 분위기는 특별했다. 눈빛과 손을 맞잡은 그 시간은 둘에게 더없이 소중한 시기다. 결혼은 서로의 모든 시간을 담아 하나로 쌓아 올리는 순간이 펼쳐지는 일이기도 하다. 프러포즈는 앞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미워지고 익숙해 빛이 바래 알아보지 못할 때 가장 아름다웠을 때로 돌아갈 수 있는 장치다.



순간을 소중히, 영원히. 당신에게도 프러포즈가 그리 기억될 수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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