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새 지워진 친구의 이름표와 나이를 먹는다는 것
오랜만에 친구들이 대규모로 한자리에 모였다. 친구 커플의 ‘청첩벙’(결혼식 전, 청첩장 모임)에 사느라 바쁘고 결혼하고 나서 소식이 뜸해진 친구들까지 참석해 마치 동창회 같았다. 워낙 오랜만에 본 사이도 많았던 지라 서로 안부만 묻다가 1차가 거의 끝날 정도였다. 2차 막바지에 접어들었을까, 한 친구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내 남편 잘 있고, 지금 회식 중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싶어!”
“남편 운동하는 이야기를 하도 들었더니 귀에 딱지 앉을 것 같아!”
동갑 친구끼리 결혼한 부부인데, 친구만 참석하고 남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20여 명이 돌아가며 안부를 물어본 것이다. 게다가 남편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운동 하는 사진을 보고, 친구들이 그 친구 얼굴만 보면 남편 인스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가끔 이럴 때 “우리가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이라는 타이틀이 더 강력하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솔로일 때는 각자의 존재가 부각됐다면, 결혼한 뒤에는 이름 앞에 남편이나 아이의 이름이 늘 붙는다. 일찍 결혼한 친구의 카톡이나 인스타그램에는 어느덧 자기 얼굴은 사라지고 남편과 아이의 가족사진만 올라오는 걸 볼 때도 비슷한 감정이다. 나는 친구의 얼굴을 보고 싶은데 도무지 볼 수가 없다. 기념할 일이 있거나 친구의 집에 방문할 때도 선물은 아이나 가족들이 쓰는 것으로 대체되고, 가정일과 육아로 지친 친구에게 장신구나 화장품을 선물하기도 애매하게 되어버렸다. 친구의 존재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있구나 라는 걸 느낀다.
해당 글은 <결혼은 현실이라죠? 저는 입 냄새 같은 거라고 말해요> 책으로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