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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l 17. 2020

구남친들은 보조석의
나를 어떻게 버텼을까

내 명의로 차량이 생기고 난 이후로 바뀐 생각

최근 우연한 기회(?)로 내 명의로 된 차가 처음 생겼다. 법인 차량을 받아서 끌고 다닌 적은 있지만 새 차를 뽑고,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고, 내 이름으로 온전히 등록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른 중반이 되어 첫 자동차라니, 내 계획보다는 늦은 감이 있다.  


뚜벅이 시절과는 달리 대중교통으로는 동선이 꼬이는 곳도 부담 없이 갈 수 있고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할 때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짐을 덜어낼 필요가 없게 됐다. 누구와 함께 혹은 나 혼자서라도 바람 쐬러 멀리 갈 수도 있고, 차가 있는 여행을 주도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 예전에도 많은 것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차가 생긴 후엔 그 영역이 더 넓어진 느낌이다. 반대로 말하면 타인에게 어쩔 수 없이 의존했던 부분이 줄었달까.  



가끔 운전 면허증을 보면 놀란다. 갱신할 때가 됐을 정도로 면허를 딴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면허를 딴 직후 렌터카로 사고 낸 후, 트라우마가 생겨 그동안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누군가를 죽이거나 차를 망가뜨리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변명으로 오랜 시간 동안 차를 가질 생각을 못했다. 가족이 차를 준다고 해도 거절했다. 살면서 내가 차가 없고 운전을 못한다는 이유로 사는 동안 주변인들을 성가시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운전하는 사람이 하지 않는 사람보다 늘 조금 더 배려하고 고생한다는 것을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이를 테면, 운전을 하지 않을 때 나는 쉽게 "공항에 데리러 올 거지?", "역에 데리러 올 거지?"를 남발했다. 그들은 기꺼이 그래 주었다. 누구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남자 친구, 가족, 친구가 그랬다. 불가피하게 데리러 오지 못할 땐 미안해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배려고 사랑이었다.  


차가 생기고 내가 막상 누군가를 태우러 가려고 보니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착시간에 맞춰 이동 시간을 미리 계산해야 하고, 어디서 픽업하면 편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공항이나 역은 정차가 쉽지 않은데, 정해진 시간에 태울 사람이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식은땀 나는 상황이 생각보다 많았다. 내 평생 누군가를 위해 그런 계산이나 고민을 해보는 게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운전과 주차가 아직 미숙해서 그런 면도 있다.  



연애하는 동안 이동은 남자 친구에게 의존했다. 남자 친구가 데리러 오고 데이트가 끝난 후엔 데려다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는데, 당연한 줄로만 아는 시절이 있었다. 구 남자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났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넘어올 때 험한 도로를 잘못 탄 모양인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옆에 타고 있던 내가 그만 잠을 자는 만행을 저질렀다. 호텔에 도착한 후 남자 친구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자 그는 참다못해 원망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넌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잠을 잘 수가 있어?” 그때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되려 버럭 화를 냈다. 지금이라면 내가 당시 남자 친구라도 화가 났을 거다. 지금의 나라면 잠을 자지도 않을 테지만, 남자 친구가 만약 운전으로 섭섭하다고 했다면 나는 바로 사과하고 무릎이라도 꿇었을 거다.


이건 다른 이야기다. 지방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면 남자 친구는 항상 나를 데리러 왔다. 내가 말한 픽업 장소를 잘 못 찾거나 시간을 못 맞췄을 때 잔소리를 한 적도 있다. 되돌아보니 데리러 온 사람한테 그 무슨 만행이란 말인가. 나라면 화나서 차에서 당장 내리라고 했을 거다. 근데 그는 한 번도 나를 길에다 버린 적 없다. 한번 정도는 버려졌어야 버릇을 고쳤을 텐데. 이 외에도 보조석에 앉아서 했던 만행은 셀 수 없다. 돌 맞을 것 같으니 여기까지 써야겠다.  


이 외에도 다른 부분에서 내가 갑질(?)하는 부분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려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고마움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때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아차!’ 싶었다. 그게 무엇인지 더 알고 싶다. 내 일이 아니라서, 경험해보지 못해서 몰랐다는 말로는 변명이 안된다. 철없다는 말은 내 나이에 욕이다. 이타주의자에 배려심 많고 성숙한 어른으로 늙고 싶다. 관계에서는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게 없는데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너무 많았던 게 아닌지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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