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커플의 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대한민국에 넷플릭스가 상륙하면서 크게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미드와 영드 같은 외국 콘텐츠를 저작권 문제없이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망나니 같던 주변 친구들이 최근에 거의 결혼한 탓에 넷플릭스에서 연애, 결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를 자연스레 즐겨보게 되었다. 영드나 미드 속에서는 세상 쿨하게 이혼한 커플이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가 실제 현실의 삶과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반영된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 정서와 간극이 얼마나 큰지 가끔 놀란다. 점점 서양 문물(?)에 물들고 있지만 이별, 특히 이혼에서 만큼은 여전히 ‘한국 정서'가 굳건하다. 최근 결혼 문화가 많이 바뀌면서 허례허식을 버리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방향으로 많이 바뀌고 있지만, 이별에서 만큼은 의식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최근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주변 커플이 있다. 둘 사이에는 어린아이도 있다. 워낙 성격 차이가 심해서 결혼 생활 내내 위태로웠는데, 여자 쪽이 ‘독박 육아’를 5년 이상 하다가 지쳐서 이혼을 선언한 케이스다. 여자 쪽은 미드에서 발췌한 듯한 ‘쿨한 이별'을 원했다. 딱히 재산 분할을 원하지도 않았다. 오직 원했던 건 남편을 포함한 결혼 생활로부터의 자유였다. 대신, 아이에 대한 책임을 반반으로 하고 공동 육아를 제안했다. 독박 육아를 하면서도 경제력까지 갖춰왔기에 가능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건 한쪽의 생각이었을 뿐, 쿨한 이별은 없었다. 전후 사정을 알려고 드는 사람도 없었다. 단지 여자 쪽을 ‘아이를 버린 비정한 엄마'로 취급해버렸다. 집안 어른을 포함한 주변인들은 “아이도 있는데 네가 참아라"는 말로 설득하기 바빴다. 이미 엄마가 되었다면 여자로의 행복은 접어두라는 이야기였다. 공동 육아에 대한 제안도 먹혀들지 않았다. 여자 쪽은 이혼하고서도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낼 수 있고 오히려 행복하고 좋은 모습을 더 많이 보일 수 있어서 아이가 더 안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편 쪽은 아이의 시간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엄마와의 만남조차 탐탁지 않아했다. 아이를 책임질 생각이라면 애초에 결혼 생활을 위태롭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논리였다. 아이는 흔히 이야기하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부부가 이별이라는 선택지를 앞에 둘 때,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잘 양육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앞서는 걸 본다. 아무리 원수 사이가 되었어도 양육 앞에서는 싸움을 멈추고 파트너나 동지로 행동한다.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 참고) 두 사람의 사랑은 이미 식었지만, 그 잔재인 아이는 죄가 없기에 끝까지 책임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두 사람이 합의 하에 아이를 보는 시간을 조절하고 아이에 대한 정보를 무엇이든 공유하며 함께 결정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앞서 말한 우리나라 커플의 여자 쪽도 처음에는 이와 같이 '쿨한 이별'을 원했지만, 외국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것일 뿐 이혼 과정이 진행되면서 점점 국산 아침드라마로 변질되었다. 감정이 앞서기 때문에 아이 문제 앞에서도 도저히 쿨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별은 치사하고 더러운 것’ 일뿐. 소위 한국 드라마에서 많이 본 대사인 “애가 무슨 죄인가"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온다. 아, 이제 넷플릭스를 그만 보는 게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