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먼저 준비한 프러포즈와 답 프러포즈 후기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프러포즈의 로망, 그 비하인드를 보면 항상 의문인 점이 있었다.
‘프러포즈는 남자가 먼저 하는 게 당연한 건가?’
‘여자가 하는 프러포즈는 왜 답 프러포즈밖에 안 되는 걸까?’
‘결혼 준비 막바지나 신혼여행 가서 하는 프러포즈는 진정한 프러포즈일까, 형식적인 프러포즈일까?’
3년 반의 연애기간 동안 늘 생각했다. 프러포즈는 결혼하자는 말을 특별하게 전하는 건데 날도 다 잡고, 스드메도 다 준비한 상태에서 프러포즈를 하는 것은 너무 이상한 게 아닌가? 하고. 그리고, 결심했다. 이상하지만 일반적인 프러포즈를 나만큼은 특별하게 해 보자고 생각했다.
기념일 챙기는 척 내가 먼저 할 거야
1,000일 기념일을 앞두고 뮤직 페스티벌에 가기로 했다. 지인들도 만나기로 해 자연스러우면서도 힙한 날이 아닌가 싶어 이 날에 프러포즈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제약이 큰 야외다 보니 거창한 프러포즈보다는 마음을 전하는 소소하지만 따뜻한 방법이 맞을 것 같아 서프라이즈로 레터링 케이크를 준비했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며 달달한 디저트와 함께 프러포즈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로맨틱했다. 결심한 날부터 매일 밤 위트 있는 문구를 고민했는데, 어느 날 문득 1,000일 기념일과 프러포즈 문구가 섞인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페스티벌 일정에 맞춰서 케이크 주문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다 싶을 때 너무 바보 같은 실수를 했다. 케이크 디자인 스케치를 바로 남자 친구(현 남편)에게 보내버린 것! 카카오톡에서 파일이 그렇게 빨리 전송되는지 처음 알았다. 지금은 ‘보내기 취소’ 기능이 있지만 그때는 그런 기능도 없어 아주 빠르게 메시지가 전송되었고 메시지를 확인한 남자 친구는 당황함에 리액션을 수백 가지 생각했으리라.
‘우리 케이크 먹을래?’
페스티벌 당일이 되었다. 이미 계획이 들통난 상태라 몸도 마음도 편하게 남자 친구와 케이크 픽업을 같이 갔다 (ㅎㅎ..) 사실 케이크 박스를 들고 다니며 하루 종일 아닌 척해야 하는 부분이 제일 고민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오후, ‘이미 다 알겠지만, 우리 케이크 먹을래?’라는 말과 함께 남자 친구에게 케이크를 주며 프러포즈를 했다.
5개월 후 돌아온 답 프러포즈
나의 프러포즈 이후, 새해를 맞이하며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늦둥이 남동생의 수능 때문에 상견례도 하기 전에 예식장 투어를 했고 결혼 날짜를 먼저 잡을 수밖에 없었다. 결혼 날짜를 잡아 두고 프러포즈를 받을 수밖에 없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자 친구의 프러포즈는 정말 자연스러웠다. 평소와 같이 회사일에 시달리고 퇴근 후에 저녁을 같이 먹는 날이었다. 그 날 먹고 싶었던 쌀국수를 먹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 아쉬워 가까운 한강으로 산책을 갔다. 한강으로 가는 차 안에서 어떤 노래가 나왔는데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평소에도 가사가 예뻐서 좋아했던 노래였다. 그래서 남자 친구에게 ‘오빠, 나는 축가나 프러포즈로 이 노래가 진짜 괜찮은 것 같아! 가사 너무 딱이지 않아?’라고 말을 했고 머지않아 한강에 도착해 산책을 했다. 정말 아무런 낌새도 느껴지지 않는 잔잔한 저녁시간이었고 집에 가려고 차를 탔는데 그때 잔잔함이 깨졌다.
남자 친구가 트렁크에서 꽃다발을 꺼내 차에 탔고, 조수석 서랍에서 꺼낸 아이패드에서는 우리의 사진으로 만든 귀여운 영상편지가 담겨있었다. 축가나 프러포즈 노래로 좋다고 말했던 노래가 함께 흘러나왔다. 노래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보다 본인 눈가가 촉촉해져선 반지를 주며 반응을 살피던 그 날이 바로 프러포즈를 받는 날이었다.
프러포즈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물론 취향에 따라 거창한 프러포즈가 좋을 수도 있고 소소한 프러포즈가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식처럼 어차피 한 번밖에 없는 이벤트라면 조금 더 특별함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형식적인 프러포즈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둘에게는 이미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