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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속 수짱에게 위로받다

by 구본재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후쿠오카행 비행기 표를 샀다. 내 생일은 음력 1월 3일, 해에 따라 구정 연휴에 걸린다. 서른다섯이 되던 해가 그랬다. 생일은 일요일, 그 뒤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가 구정 연휴 기간이었다.


“그래도, 생일은 집에서 보내지?”

“설날 전에는 돌아올 거예요. 잘 다녀올게요!”


섭섭한 내색을 보이는 엄마를 뒤로 한 채, 금요일 아침 후쿠오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생일을 포함, 3박 4일의 여행 후 월요일 저녁에 한국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서른다섯. 회사에서는 과장이었고 업무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새로운 프로젝트가 주어질 때마다 맡았다. TFT 팀이 꾸려지면, 늘 단골로 이름이 올랐다. 해외 출장의 기회도 자주 찾아왔다. 짧게는 1주, 길게는 한 달씩, 아프리카부터 남미까지 세계 곳곳을 누볐다. 한 번은 아프리카 출장을 다녀왔더니 바로 이틀 후 필리핀 출장을 가야 하는 일도 생겼다. 회사 근처 병원을 찾아 처음으로 영양주사를 맞았다. 당시 팀장의 말에 의하면 ‘아이 또는 가정, 그 아무것도 걸릴 게 없는 자유로운 싱글 여성’ 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만나는 사람 없어? 어서 결혼해!”

“아이는 언제 낳을 거야, 서른다섯 넘으면 노산이지.”

“그 언니 너무 세더라. 너도 조심해. 결혼 안 하고 더 나이 들면 그렇게 되는 거야.”


함께 일을 하는 동료들은 수시로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의 나는 그의 말에 반박할 용기가 없었다. 당시 내가 일하던 회사는 ‘가정(을 이루는 것을 적극 권장하는) 친화적’인 분위기였고, 출산과 육아휴직을 다녀온 여성이 꽤 많았다. 여성이 일하기에 나쁘지 않은 업무환경 탓에 여직원의 수는 월등히 많았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여성은 미혼과 기혼, 기혼의 경우 출산을 경험한 이와 아닌 이로 보이지 않는 선과 모임이 존재했다.


수짱_시리즈.jpg 출처 : 수짱 시리즈, 미스다 마리(https://terms.naver.com/entry.nhn?cid=59065&docId=3578527&categoryId=59072)


안타깝게도 내가 다니던 회사에는 미혼이면서, 멋지고 존경할 만한 리더로서 나의 롤 모델은 없었다. 나는 그 회사에서 높은 자리의 리더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없었지만, 적어도 당차고 멋진 미혼 여성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일은 하면 할수록 많이 주어졌고, 설사 어떤 부분에 부당함을 느끼더라도 반박을 하면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센 언니’가 될 것만 같아 스스로 ‘친절한 언니’가 되기를 매 순간 애썼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고요하고 차분하게 생각과 마음을 정리할 시간. 앞으로 나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서른다섯의 나와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홀로 후쿠오카 여행을 왔다. 낯선 거리를 걷고, 유명하다는 카페에 들러 핫케이크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가방에서 마스다 미리 작가의 만화책을 꺼냈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제목부터 마음에 쏙 든다. 카페의 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서른다섯의 수짱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그대로 할머니가 되는 것을 걱정하며,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고민한다. (앗, 완전 지금의 내 이야기인데?) 한 달에 1만 엔씩 노후 대비 적금을 계산하던 그녀의 쓸쓸한 속마음이 책에 쓰여있다.


‘멀리 있는 미래가 현재에 있는 나를 구차하게 만들고 있다.’


빨리 읽히는 만화책이지만, 쉽게 한 장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오랫동안 시선이 책에 머물렀다. 공감이 가는 구절이 많았다. 지금까지 내가 속으로만 생각했던 말들이 활자가 되어 만화 속 인물들을 통해 내게 다시 돌아온다.


‘지금까지 결혼 축의금으로 낸 돈이 도대체 얼마야?’ (앗, 뜨끔)

‘생리통이에요 - 난 아이를 낳았더니 사라졌어. 사와코도 빨리 낳아.- 여자에게도 날마다 소소한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 (아, 이 부분은 정말 회사 동료에게 보여주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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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해야만 할까?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결혼하지 않고 나이가 들어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나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 이미 내 머리와 마음속을 여러 번 스쳐간 수많은 질문이 책 곳곳에 가득했다. 위로가 됐다. 지금의 나만 불안하고, 고민이 많은 건 아니구나. 또 결혼을 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구나. 조금씩 마음이 시원해졌다.


"주문한 핫케이크와 커피 나왔습니다."


깔끔하게 구운 예쁜 모양의 핫케이크와 향이 진한 핸드드립 커피가 테이블에 놓였다. 혼자 앉았지만, 맞은편에 나와 같은 서른다섯 살의 수짱이 함께 있는 듯하다. 들고 있던 만화책을 휘리릭 넘겨 마지막 장을 열었다.


‘먼 미래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지만, 단지 미래만을 위해 지금을 너무 묶어둘 필요는 없다.’


책 속에 적힌 그녀의 마음속 혼잣말이 내 마음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래, 지금 이 순간을 누리면서 살 거야. 서른다섯,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듬어 줘야지.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하면서 살 거야. 센 언니가 되면 또 어때. 흥! 나는 호기롭게 나이프를 들었다. 버터 한 조각이 놓인 고운 자태의 핫케이크를 쓱 잘라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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