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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Nov 25. 2020

반지? 그냥 동그란 금속이잖아

결혼반지의 가치는 의미에 따라 달라진다

반지는 왜 사랑의 증표가 되었을까. 누군가는 반지의 둥근 모양이 끝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양뿐만 아니라 과거 조선시대에도 두 개의 고리를 손가락에 끼워 부부가 되었음을 나타냈다. 이 한 쌍의 고리를 가락지라 했고 가락지를 하나만 착용하면 반지라고 불렀다. 오늘날 가락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부부를 상징한다는 의미는 반지에 남아 이어지고 있다.


아무튼, 사랑하는 사람을 나의 것이라 만천하에 알려 혹시 모를 경쟁자의 접근을 차단하고 싶은 마음이야 문화권을 불문하고 같았을 것이다. 이런 표식을 보이려면 대체로 드러나는 곳인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체 부위인 손이 적합하고 매일 착용하고 있어도 비교적 불편함이 없으려면 손가락에 딱 달라붙는 고리 형태가 알맞다. 이왕이면 비싸고 귀한 데다 잘 변하지 않는 금속 소재를 쓰는 편이 좋았을 거고 말이다.  



여기에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류의 마케팅까지 더해져 여러 로망들이 생겨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네 번째 손가락에 찬란하게 빛나는 반지를 끼워주며 평생을 약속하는 그런 로망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프러포즈도 내가 했고 특별히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 별 로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쇼케이스 안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반지들은 내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청담의 한 예물샵에서 홀린 듯 이 디자인 저 디자인을 골라 끼워봤다. 왜 손가락이 10개뿐인지 아쉬울 정도였다. 스케줄 관계로 동행하지 못한 그에게 열심히 사진을 찍어 보내며 뭐가 낫냐고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예상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난 잘 모르겠어. 그냥 다 동그란 금속이잖아.” 


동그란 금속, 동그란 금속이라니. 사랑의 상징이자 평생 착용할 결혼반지를 놓고 동그란 금속이라니! 반박하고 싶었지만 곱씹을수록 그것 참 맞는 말 아닌가. 반지에 박힌 ‘알’의 크기나 금의 색깔, 디자인, 브랜드 모든 것이 그에게는 딱히 의미가 없었다. 어쨌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임자 있음’의 상징이 필요하니 손가락 하나 비워두겠다는 정도? 그 말을 듣자 쇼케이스의 반지들이 모두 비슷비슷해 보이는 사태가 벌어졌고, 결국 가격이나 디자인도 그럭저럭 괜찮은 제품을 골랐다.  


하지만, 그날 고른 반지는 우리의 결혼반지가 되지 못했다. 그의 충격 발언은 ‘이 금이나 저 금이나 같은 금이면 더 저렴한 게 낫겠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종로예물 투어에 나섰다가 청담에서 본 반지와 완전히 동일한 디자인이 50만 원이나 저렴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가가 보면 세공이나 미세한 부분이 다를 수 있지만, 액세서리도 몇 개 없는 내 눈에는 똑같아 보였다. 결국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한 종로 예물 업체에서 심플한 맛이 있고 손을 험하게 써도 흠집이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은 다른 반지를 선택했다. 



다 같은 동그란 금속일 뿐이니 예산을 아끼라는 거냐고? 아니다. 나 역시 결혼을 빌미로 반짝이는 것에 열심히 돈을 썼다. 프러포즈에 대한 답례로 갖고 싶은 걸 말해 보라기에 삼청동의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깊은 푸른빛의 런던 블루 토파즈가 세팅된 반지를 주문 제작해 선물 받기도 했다. 또 눈여겨보던 주얼리 브랜드가 크라우드 펀딩을 한다기에 데일리로 착용할만한 1부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 돈 내산’ 하기도 했다. 반지 개수로만 따지자면 결혼반지에 가드링, 1부 다이아몬드 반지, 유색 반지까지 4개나 되는 셈이다.  


반지는 다 똑같은 동그란 금속이지만, 거기에 담을 의미나 가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그에 따라 누군가는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명품 브랜드, 누군가는 섬세한 세공을 자랑하는 청담 예물샵, 누군가는 부담 없이 다양한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는 종로 예물 샵, 누군가는 나만의 반지라는 느낌을 주는 디자이너 브랜드에 끌리기도 한다. 아예 생략하거나 전혀 다른 방법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기념하고 상징할 수도 있다. 요즘은 반지를 끼우는 자리에 문신을 하기도 하고 반지 대신 골드바를 구매해서 보관하기도 한단다. 


예비부부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이 있음에도 명품 브랜드 결혼반지에 올인했다고 하면, “그 돈이면 종로에서 캐럿 다이아도 하겠다.”는 말이 대번에 들려온다. 반대로 다이아에 투자했다고 하면, “다이아는 다시 팔 때 똥값 된다더라.”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결혼반지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지 않거나 아예 생략했다고 하면, “그래도 결혼반지는 좋은 걸로 하나 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두 사람이 충분히 상의하고 의견을 맞춰 결정했다면, 주변에서 한 마디씩 얹는 말에 흔들릴 필요는 없다. 어차피 반지는 동그란 금속일 뿐이고 두 사람 사이에서 그 의미를 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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