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여섯 번의 웨딩 촬영 후 느낀 점
시작은 소소했다. 연애한 지 300일째 되는 날이 다가왔고 기념일에 늘 진심인 나는 한 공방의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해 커플링을 만들었다. 커플링을 로맨틱하게 전달하고 싶어 고민하다 김녕 해변을 배경으로 스냅 촬영을 하는 사진작가를 찾아냈다. 사진 촬영하는 중에 숨겨둔 반지를 끼워주겠다는 계획을 품었다. 봄의 바닷가에 잘 어울릴 노란색 커플룩과 조화 화관까지 만들면서 공들인 촬영은 성공적이었다. 이 날 사진은 아직도 회사 컴퓨터 모니터를 지키고 있다.
첫 촬영의 만족스러움을 안고 그해 여름 내 생일맞이 두 번째 촬영을 준비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촬영이니 시간은 짧게, 컨셉은 ‘풀밭 위의 피크닉’으로 정하고 PPT에 원하는 포즈와 준비해 갈 소품들을 정리해 작가님께 보냈다. ‘시안대로 다 못 찍을 수도 있다’ 던 작가님의 걱정과 달리 이시돌목장 근처 이름 모를 풀밭에서 담은 결과물은 꽤 괜찮았다. 한림까지 가서 피크닉 세트를 대여하고 반납하는 수고를 한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해 봄, 인스타그램을 하던 내 눈에 무료 웨딩 스냅 이벤트가 눈에 띄었다. 지금 무료로 찍어서 나중에 결혼할 때 쓰자며 심드렁한 남자 친구를 슬슬 꼬드겼다. 막 시작하는 작가님이 열정을 담아 찍어 준 사진은 서투른 만큼 풋풋한 매력이 있었다. 이 날 사진 중 한 장은 훗날 퍼즐 액자로 만들어져서 신혼집 벽에 걸렸다.
터져 나온 사진 욕심은 멈출 줄 몰랐다. 내 취향에 딱 맞는 스냅 작가가 그 해를 마지막으로 해외로 간다기에 가을 억새와 한 번. 결혼식이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결혼도 내가 하고 싶은 때 못하는데 촬영이라도 하고 싶은 거 다 할래.’라는 마음으로 봄 벚꽃과 또 한 번. 유럽에서 활동하던 부부 작가가 코로나로 인해 제주 웨딩 스냅을 시작하며 무료 촬영을 진행한다기에 여름 수국과 메밀을 배경으로 또 한 번. 지금까지 무려 여섯 번이나 카메라 앞에 섰다.
“대체 돈이 얼마야! 이 여자 미쳤군.”하고 혀를 차고 있다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두 번의 무료 촬영과 비수기 특가 할인을 이용했고 셀프 헤어 메이크업과 저렴한 촬영 드레스로 비용을 줄였으니까. 비행기 표와 렌트, 숙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제주도민의 메리트가 크긴 했다. 물론, 나는 특수한 경우고 대다수의 예비부부는 결혼을 앞두고 한 번 정도 촬영을 한다. 요즘은 정형화된 스튜디오 촬영 대신 제주 스냅 등 야외에서 자연스러운 스냅 촬영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일생 한 번뿐인 결혼사진을 특히나 야외에서 남기기로 결정했다면, 아래의 것을 기억해두면 좋겠다.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드레스도 대여해서 가장 긴 시간 촬영했던 스냅, 다시 말해 가장 돈을 많이 들인 촬영이 드레스 소매가 피팅 때와는 다르게 한쪽만 뜯어져 있던 데다 헤어도 마음에 들지 않아 가장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주 유명한 업체의 1~200은 우습게 넘어가는 프리미엄 스냅과 드레스, 헤어 메이크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결과물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비싼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무리했다가는 실망을 더 키울 수 있다. 특히 변화무쌍한 제주도에서라면 날씨가 엄청난 부분을 좌우하므로 가능한 마음을 비우는 편이 좋다.
촬영 분위기를 끌어가는 방법이나 촬영을 마친 후 과정에 있어 작가 간 편차가 컸다. 계약에 포함된 정밀 보정 본을 주지 않고 연락이 두절된 작가가 있는가 하면, 사전 안내 없이 원본 받는 데만 두 달 가까이 걸린 작가도 있었다. 보정 본은 빨리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촬영일 기준으로 약 5개월째 보정 본은 전달받지 못했다.
작가 인스타그램 속 예쁜 사진은 4~5시간 동안 몇 천 장을 찍고 정성을 다해 보정하면 한 장쯤 나오기 마련이다. 한 장 ‘인생 샷’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와 촬영 이후의 매끄러운 과정도 만족도를 좌우한다. 실제 신랑 신부의 촬영 후기를 꼼꼼히 찾아보길 바란다. (작은 팁이라면, 사전에 촬영본 전달 날짜나 촬영 장소 선정, 날씨 문제 시 일자 조율 등의 사항을 분명하게 안내할수록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웨딩 촬영의 핵심은 ‘둘이 함께’ 하는 촬영이라는 것. 나의 파트너는 평소 셀카도 잘 찍지 않지만, 의외로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어색하지 않게 포즈를 취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은근 사진발도 잘 받아서 사진을 보여주면 그의 칭찬이 더 많기까지 했다. ‘폭풍 칭찬’의 힘은 위대해서 6번의 촬영 동안 그는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협조적인 태도로 함께 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거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촬영 자체가 고역이고 그러다 보면 둘 다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얻기가 쉽지 않다. 웨딩 촬영에서 남자는 들러리나 소품 정도로 취급받는 경향이 있어 소외되기도 쉽다. 촬영 전부터 함께 포즈나 표정도 맞춰보고, 의상이나 헤어도 꼼꼼하게 체크해서 그의 가장 젊고 멋진 날 또한 아름답게 남긴다면 더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연애부터 결혼 준비까지의 모습이 제주의 자연과 함께 담긴 6번의 제주 스냅. 사진에 미친 여자는 결혼을 향한 대장정의 마스터피스를 완성하고자 일곱 번째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무려 서울(!)에서 스튜디오 촬영을 진행할 거란 말씀. 어쩌다 보니 촬영이 겨울이 되어 나름 4계절 촬영까지 완성하게 됐다.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고 제주 스냅과 스튜디오 촬영의 장점과 단점과 생생한 후기를 전할 기회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