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촬영, 하고 나서 알게 된 3가지
수많은 스냅 촬영을 하면서 사진은 찍는 건 할 만큼 해봤다 생각했는데, 웨딩 촬영의 정석인 스튜디오 촬영을 하고 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스튜디오 촬영을 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던 것과 하고 나서야 알게 된 3가지를 촬영을 앞둔 신랑, 신부들과 공유해보고자 한다.
스튜디오 촬영 때 싸우는 커플이 진짜 있다.
촬영을 앞두고 일일 코로나 확진자가 1,000명을 돌파했다. 고민 끝에 같은 스튜디오인 신부님이 확진자가 960명일 때 안전하게 촬영했다는 후기에 용기를 얻어 촬영을 진행하기로 하고 서울로 향했다. 회사 방침 상 출근 전 코로나 검사를 하고 음성 여부를 확인한다는 점과 위약금을 내고 촬영을 한 번 미룬 터라 또 미루기가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잔뜩 예민해진 탓인지, 평소라면 잘 넘겼을 일을 가지고 남자 친구와 대판 싸우고 말았다. 촬영 전 날 대여복을 받으러 테일러샵에 들렀다가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영하의 날씨, 청담 대로변에서 소리 높여 싸우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촬영 날 아침에도 대수롭지 않은 걸로 싸우고 울었다. (왜 싸울 때 꼭 눈물이 나는지)
어찌어찌 화해를 하고 메이크업을 받으러 갔다. 눈이 나빠 제대로 못 보고 있다 중간쯤 얼굴을 확인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코가 엄청나게 커서 마치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 같았다. 헤어 메이크업 담당자분께 “제 코가 엄청 커 보여요.”라고 하니 그분은 깜짝 놀라며 쉐딩 엄청 넣어 드렸다고 했다. 그럼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전날부터 계속 울어대서 얼굴이 부은 거였다! 평소 얼굴이 잘 붓는 편이 아니라 부은 내 얼굴이 낯설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웃겨서 혼자 웃고 나니 남은 불편한 감정도 해소됐고 부기도 금방 가라앉아 촬영을 잘 마무리했다.
촬영 때 싸우는 커플, 말로만 들었는데 그게 나일 줄이야! 아무래도 촬영 날은 챙길 것도 많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 둘 다 예민해지기 쉽다. 특히, 신부는 다이어트 생각에 촬영 전에 제대로 먹지 않기도 하고 촬영에 기대도 커서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게다가 호르몬이 폭발하는 기간과 겹치기라도 하면 싸우기 딱 좋은 환경이 된다. 신랑이 얄미워서 뒤통수를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조금만 참기 바란다. 울어서 얼굴 붓고 화장 안 받으면 나만 손해고, 촬영 잘 끝내고 나니 기분 좋아져서 싸웠던 게 머쓱해지더라.
밑져야 본전이다.
원하는 건 말하고 봐야지 나중에 이불 차도 소용없다.
나는 원하는 컷과 어울리는 의상과 소품, 헤어까지 꼼꼼히 챙겨가 다소 극성맞은 신부이자 호불호가 뚜렷한 신부였다. 고르지 않은 컷을 권하는 작가님이나 한옥 배경에서 머리에 올리는 찐빵만 한 족두리를 권하는 이모님께 정중하게 'No'를 외쳤다. 여기에서는 스튜디오 소품 부케 대신 따로 준비한 부케를 들겠다, 저기에서는 스튜디오 소품인 슈즈 대신 내 웨딩 슈즈를 배치해 달라며 바라는 것도 많았다. ‘신부님 주관이 아주 뚜렷하다’면서 이모님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상담할 때 미리 골라 간 컷 중에서 찍고 싶은 컷을 고르라기에 이왕이면 둘이 있는 컷이 좋지 싶어 함께 있는 사진을 선택했다. 그랬더니 같은 층에 마련된 배경을 내 선택에 관계없이 투 샷 위주로 빠르게 촬영하고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원하지 않던 배경에서도 기대보다 괜찮게 나온 사진도 있었다. 하지만, 앨범에 넣은 것은 내가 골랐던 신들 위주였다. 여러 커플이 동시다발적으로 촬영하니 한 배경에서 오래 있기는 어렵고 샘플에 정해진 신이 우선이겠지만, 원하는 배경에서 최대한 다양하게 촬영해 달라고 미리 말했다면 내 만족도가 좀 더 높았을 것 같다. 촬영 중간에 사진이 어떻게 담기고 있는지 확인해 주실 때라도, ‘이 배경에서 독사진도 찍어 주세요.’, ‘좀 더 가까이에서도 담아주세요’라고 요청했더라면 뭐든 더 남았을 텐데 말이다.
촬영 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사진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그분들에게는 일터니까 얼른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공들여 준비한 캐주얼 촬영이 너무 빨리 끝나버려서 아쉬워하며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있으니, 헬퍼님이 작가님께 몇 컷 더 찍어달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때 남긴 사진은 정말 마음에 든다. 너무 부당한 요구가 아니라면 밑져야 본전이다. 용기를 내서 요청해 보았으면 좋겠다. 촬영 끝나고 집 가서 잠자려고 누웠다가 “얼빡 샷 많이 찍어달라고 할 걸!”라며 이불 차고 일어난 나처럼 후회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스튜디오 촬영에 사진 외의 의미도 있더라.
스튜디오 촬영을 할까, 말까 고민할 때 기혼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해봤자 사진 보지도 않는다.’, ‘몇 년 지나면 촌스럽다.’, ‘앨범, 액자 무겁고 짐 된다.’라면서 권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는 스튜디오 촬영이 매우 만족스럽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특히, 드레스를 여러 벌 입어보고 헤어스타일도 다양하게 시도해보며, 나와 잘 어울리는 것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공주님 같은 풍성한 벨라인 드레스는 나를 거대해 보이게 만들었고 오프숄더는 더 최악이었다. 반면, 슬림한 드레스는 밋밋한 몸매를 의외로 글래머러스해 보이게 해 주었다. 드레스투어 때 드레스를 입어보고 넘어가는 것과 다양한 포즈와 표정의 사진으로 남은 내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는 건 확실히 다르다.
또한, 내 얼굴의 장점도 단점을 파악하기 쉽다. 얼굴에 주름이 많이 잡히니 살짝 이가 보이는 정도만 웃는 게 예쁘다는 것, 얼굴형이 강하고 안검하수도 있어 사진에 예쁘게 담기기 쉽지 않지만, 얼굴을 살짝 아래로 기울이고 눈을 내리깔면 봐줄 만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런 것을 알게 된다고 한들 갑자기 결혼식날 연예인 뺨치는 미모를 자랑하게 될 리 없지만, 막연했던 결혼하는 날 나의 모습을 분명하게 그릴 수 있어 큰 성과로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나다워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스튜디오 촬영이 나를 잘 알게 된 기회였다면, 누군가에게는 본식 때 시도해 보기 어려운 과감한 스타일링을 시도해 보는 기회이거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이 함께 제대로 찍은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기회, 훗날의 자녀들에게 ‘엄마, 아빠는 이렇게 결혼했어’ 하고 보여줄 증거 자료를 만들 기회일지 모른다. 그런 기회를 너무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설령 촌스러운 옛날 느낌이 난다고 해도 몇 년쯤 어린 나와 배우자의 모습을 다시 보면 나름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을까? 사진이란 게 원래 지나고 보면 촌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쁘고 그런 거지 뭐.
제주 스냅에 이어 스튜디오 촬영까지 즐겁게 촬영을 했고 사진 이상의 것도 얻은 만큼, 이제까지 열심히 따라와 준 남자 친구에게 ‘더 이상의 촬영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남자 친구는 어디까지 가나 보자며 코웃음을 쳤다. 결혼식 잘 치르고 나서 촬영의 기억이 흐릿해질 때쯤에 화사한 화이트 색감에 자연광 듬뿍 담아 화보처럼 찍어 주는 커스터마이징 스튜디오에서 리마인드 촬영하자고 하면 집에서 쫓겨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