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색으로 기억하는 나의 결혼식
어느덧 결혼 ‘5년 차’, 만 3년을 넘긴 필자. 사계절이 3번 바뀌었으니 이제는 우스갯소리로 ‘헌댁’이라고 불릴 시기도 지나는 중이다. 그럼에도 고마운 게 있다면, 주변 사람으로부터 ‘너의 결혼식은 여전히 생각난다’며 기억해준다는 점이다. 참 고맙고도 신기한 일이다. 흔히, 남의 결혼식을 다녀보면 금세 음식에 밀려 잊히기 마련인데 말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들처럼 주례 없는 결혼식을 치렀고 신랑, 신부 측에서 각각 준비한 축가를 불렀으며 하객을 모시기 위해 널찍한 결혼식장을 예약했다. (코로나 시기 이전엔 이 모든 게 가능했으니!) 하지만, 공통점으로 좋았다고 일컫는 건 바로 ‘꽃’이다. 필자 결혼식이 지인들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건 식장을 장식했던 꽃이었다. 결혼 준비의 처음과 끝을 함께 했던 필자의 꽃 이야기를 풀어본다.
사랑스러운
'야생화 산딸기 믹스 부케'
웨딩 촬영 2주 전이었다. 당시 스드메에 거금이라 여겼던 300만 원을 쓰고 부족한 주머니 속 사정을 걱정하던 때였다. 촬영을 앞두고 생화 부케를 따로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고작 촬영하는 두 시간 동안 손에 쥐기 위해 돈을 쓰는 게 맞는지 고민스러웠다. 그래도 이왕 촬영하는데 생화 부케를 들고 싶었다. 플래너 님께 말씀드리니 빠른 시간 내에 야생화와 산딸기 꽃이 믹스된 부케를 준비해주셨다. 당시 남편의 복고스러운 촬영용 재킷과 잘 어우러지는 빈티지한 부케였다.
피치 코랄 색이 우아한
'줄리엣 로즈 부케'
결혼식에 들고 싶었던 부케는 ‘작약’이었다. 만개하기 전 몽글몽글한 느낌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결혼식 날 꼭 들어야지' 소망하던 꽃이었다. 지금은 작약 부케가 보기 쉬워졌지만, 4년 전만 하더라도 겨울에 출하되는 꽃이 아니어서 값이 무척 비쌌다. 백화점 아래 플라워샵에 문의했을 때만 해도 ‘60만 원’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마저도 상태 좋은 꽃을 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하셨다.
당시 부케를 선물해 주시기로 한 플래너님께 말씀드렸을 때에도 ‘겨울엔 원하시는 꽃을 구하기 어려우니, 다른 꽃으로 예쁘게 준비해드리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때였지만, 꼭 들고 싶었던 꽃을 들지 못해 마음이 너무 심란했다. 주관이 뚜렷하면 참 피곤한 것 같다는 생각과 원하는 부케를 하기에도 부족한 예산이 속상했다.
본식 당일, 선물 받은 부케는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예쁜 색감의 부케였다. ‘작약’을 고집한 필자에게 최대한 비슷한 화형의 ‘줄리엣 로즈’를 믹스한 꽃을 선물해주셨는데 너무 마음에 들고 감사했다. 피부톤과 드레스 색감, 신부대기실 내 플라워 구성 및 조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색감이 따뜻하고 차분한 느낌이었기에 부케도 비슷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꽃이 얼마나 예뻤던지. 그 당시만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설렌다.
겨울과 잘 어울렸던
‘포인세티아’
많은 분들이 ‘멋졌다’고 기억하는 결혼식의 포인트는 바로 ‘꽃장식’이었다. 결혼식장을 수놓을 꽃을 구성하기 위해 플라워 미팅에 갔었다. 지배인은 무난하고 누구나 예쁘다고 생각할 화이트와 그린 색감을 제안했다. 규모만큼 널찍하고 풍성한 꽃꽂이를 구성하면 꽃향기와 더불어 식장이 화사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무난함’이 마음에 걸렸다. 깨끗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흰색과 초록색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아쉬워하는 필자의 마음을 알아차렸던지, 지배인은 금액을 조금 추가하시면 다른 색상으로 포인트를 주는 데 충분하다고 했다.
12월의 포인트라면 당연히 ‘레드’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설레는 마음과 부푸는 기분을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일인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이기도 했다. 포인세티아로 연말 느낌을 표현해달라고 요청했다. 예식장은 군데군데 포인세티아와 레드 장미로 가득한 연회장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포인세티아를 화분 형태로 테이블에 두어 누구나 편히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도 한동안은 ‘가져왔던 포인세티아가 여전히 잘 큰다’는 말을 덕담으로 들었다.
색감으로 기억되는
당신의 결혼식
필자가 최근 다녀온 결혼식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결혼식도 그랬다. 디자이너였던 신부가 직접 디렉팅에 참여해 오렌지와 자몽으로 예식장을 장식했다. 식장 측의 배려로, 사전 디렉팅을 하겠다는 협의 하에 구성했단다. 상큼한 향까지 어우러졌던 그들의 결혼식은 특히 생각이 많이 난다.
사실 결혼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기에 교통 편하고 음식만 맛있으면 됐지 뭘 더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필자도 공감한다. 그럼에도 이왕 큰돈 들여 결혼하는데 색채를 더해봐도 좋지 않을까. 먼 길 마다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는 하객에게 기억에 남는 이벤트를 제공하는 셈이 될 것이다. 쉽게 잊히기 쉬운 결혼식을 많은 사람들이 오래오래 기억한다면 그보다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