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Aug 02. 2018

케렌시아, 안락한 나의 집을 꾸미는 혼수 - 소확행

소확행(소박하지만 확실한 우리의 행복)의 아날로그. 우리는 만났다.

아날로그와 기계

수많은 아날로그는 약 20년 전부터 디지털에 의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그 물건들에 대한 감성을 더욱 자극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한 기계를 위해 디지털은 발전해 나갔다. 수만 번 입력해도 같은 값이 나오는 디지털 능력은 번잡하게 연결된 전선과 버튼들을 거둬냈다. 디지털의 정확성은 상품을 만들기에 아날로그 보다 적절했고, 그렇게 출시된 상품은 정확한 측정량을 뽑아내기 어려운 아날로그 제품들보다 더 훌륭한 것으로 여겨졌다. 물론, 우리는 좀 더 편리하게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사진은 색이 바래지 않으며, 유선전화와 공중전화는 사라져 간다. 디지털이 자리 잡을수록 아날로그는 지워지고 있었다. 데이터로 환원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날로그는 저 뒤편에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아날로그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조용한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집에서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실 때
이유 모를 행복감을 느낀 적 있는가. 


아니면 조금은 지직거리는 라디오를 듣는 것이 행복한 적 있는가. 케렌시아에 가장 적합한 우리의 키워드는 바로 ‘소확행’일 것이다. 나만이 느끼는 소박하고 작지만, 나에겐 확실한 그리고 분명히 느끼는 나의 행복. 

아마 당신이 느끼는 행복은 배우자의 행복이자 결혼을 할 ‘우리’의 행복일 것이다. 그 행복 안에 조심스럽게 아날로그와 연결되어있다. 나만의 휴식처, 나만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아날로그는 분명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어루만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은 기계식 키보드를 치면서 들리는 타자소리, 그리고 손으로 느끼는 타격감을 소소한 행복으로 찾고 있다. 그것은 분명 내 손이 ‘타자를 두드리는 것’이 디지털 신호를 통해 ‘다시 한번 가공되어 나온 것들’의 부류와는 확실하게 다르다. 조금 더 직접적이고 직관적이다. 아날로그 기계식(mechanical)이 요즘 들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계식은 많은 역학적, 공학적 요소들로 설명되지만, 우리가 감정을 느끼는 지점은 바로 ‘이해’이다. 기계의 공학적 매커니즘에 대해 정비공처럼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이 버튼을 눌렀을 때 명백하게 직접 작용하는 것에 더 공감을 느낀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위로하듯이.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가고 싶어 하고 거기서 나는 조금의 삐걱거림은 우리에게 더 살갑게 다가온다. 마치 나와 오래 함께한 기계식 장비들은 나를 이해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디지털기기들이 보이는 입력과 출력값은 100번 1000번 같다. 그것이 그들의 힘이니까. 하지만 기계식은 다르다. 우리가 많이 누른 버튼은 조금은 느슨해지기 때문에, 자신이 조작하며 자주 하던 패턴들은 그들에게 익숙하게 작동해 조금 더 자연스럽다. 반면 잘 사용하지 않던 부분들은 조금은 뻑뻑해지고 녹슬어 잘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주변 사람과 지금 당신과 함께하기로 한 옆에 있는 당신의 배우자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과 만나다 - 기계식 키보드

과거 처음 나온 키보드들은 당연히 기계식이었다. 기계식 키보드는 각각의 버튼에 스위치가 달려있고, 인식률이 높은 금속 접점이 있어서 타건(타자를 치는)시, 정확한 입력이 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1990년대 ‘멤브레인 키보드’가 나오면서 기계식 키보드들은 자취를 감춘다. 멤브레인 키보드는 멤브레인 시트 회로라고 불리는 얇은 막으로 된 센서를 사용해 키를 인식하는 키보드를 말한다. 기계식 키보드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소음도 적으며 훨씬 부드럽다. 이러한 점은 기존 기계식 키보드가 가진 특성을 단점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기계식 키보드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하지만 분명 그저 키보드라고 해도 디지털은 우리에게 많은 감성을 전달하지는 못했다. 한동안 사라졌던 기계식 키보드들이 다시 각광을 받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이지 않을까.


기계식 키보드 Arrial XDA


2010년 ‘게임식 키보드’로 일반인들에게 ‘기계식 키보드’가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다. 기존 멤브레인 키보드는 연속 키입력이나 다중 키 입력 시 키입력이 누락되는 ‘키 고스트' 현상이 나타나는데, 기계식 키보드가 이 점을 해결하면서 사람들이 다시 찾게 된 것이다. 그렇게 회자된 기계식 키보드는 게이밍 뿐만 아니라, 특유의 타건감으로 매니아를 넘어서 일반 대중들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센치한 복귀다.


 기계식 키보드의 타건감은 과거 타자기의 향수에서 출발한다. 컴퓨터보다 타자기로 인쇄하는 게 빠르던 시절 용지를 직접 손으로 넣고 줄을 바꿔가면서 글을 썼고 그 타자기에서 나온 글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었다. 어느 순간 파일로 글을 가지게 되는 방법이 생기면서부터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종이의 가치는 떨어졌다. 누구나 인쇄를 할 수가 있었고, 많은 양을 인쇄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회도 그랬다. ‘잘 살아 보세'를 노래하며 앞으로만 달리던 사람들은 타자기에 종이를 넣고 줄을 바꿀 시간이 없었다. ‘나'보다는 회사가 잘 나가야 했기 때문에, 타자기에서 나는 소리가 좋은지 싫은지 돌아볼 것도 없었다. 빠르고 정확하고 효율적인 것이 ‘대중’을 위한 것이라면, 이 기계식 키보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찾는 것이 우리가 아날로그를 찾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기계 소리가 나고, 타자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는 분명 그 기계와 만난다. 우리가 만났으니, 그다음 위로나 즐거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그 이유를 문장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기 힘들지만, 우리는 분명 타자기에서 뽑힌 세상 단 한 장의 원고나 손편지가, 프린터로 뽑힌 데이터 파일의 글이나 카톡으로 받은 안부보다 반가운 이유와 비슷 할 것이다.


우리가 잊고 있던 것 - LP

우리가 흔히 아는 LP는 아직도 고전의 느낌이 강하다. 마치 더 정확하고 좋은 음질의 디지털 음원이 더 좋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스트리밍이나 음원 서비스에서 제공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음질의 CD는 사서 듣지 않을까? 음악이 우리 일상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감성에 가깝다. 1980년대 CD가 등장하기 전까지 LP로 음악을 듣는 것이 당연했다. 1950년대 전쟁의 패망으로 만신창이가 된 독일과 일본에서도 LP생산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LP는 고가의 HI-FI 장비와 턴테이블이 있어야 하고, 기계가 예민해서 설치가 까다로울 뿐 아니라, 실제 재생시키는 것도 그 시절에는 어느 정도 능숙함이 필요했다. 이에 손쉽게 틀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가 함께 음악 시장을 양분했었다. 


어느 순간 디지털신호의 선명한 소리가 더 좋은 소리로 ‘분석'될 때쯤, LP는 음악 재생 장치로써 의미를 잃어갔다. CD에 비해 음질이 불안정하고 휴대나 보관이 불편한 LP는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사람들은 더 편하고 더 쉬운 것을 찾아갔고, CD에서 아예 다른 사람들이 제공해주는 음원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인터넷도 빨라지고 사람들의 손에 컴퓨터만큼 똑똑한 핸드폰이 쥐어지면서 음원시장은 당연히 영원할 줄 알았다. 아니, 적어도 우리가 LP를 찾을 줄을 몰랐다. 



LP시장은 그 느낌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에게만 근근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잊혀진 듯한 LP가 왜 오늘날 다시 주목받고 있는걸까. 엄청나게 많은 양이 쏟아져 나오는 음원시장. 어쩌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소비하는 방법으로 음악을 감상하는데 지쳤을 수도 있다.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노래들을 과연 ‘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분명 이것은 우리가 너무 빨리지고 정확해진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고 산다고 느끼게 한다. 우리는 이야기가 듣고 싶다. 길고 조금은 지루하더라도, 아티스트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연예인이 이제는 그들의 웨딩드레스와 웨딩홀을 공개하고, 마치 영화 같은 사진들과 아름다운 사진들로 결혼식을 대표하고 있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한다는 것은 조금은 지루하고 길더라도, 그 사람과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턴테이블에 올라간 LP판을 틀때처럼 지지직소리가 필연적일 수 있다. 노래를 바로바로 바꿀 수 없는 LP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 음악이 지나가는 전주를 차분히 들으며, 결국엔 노래를 마무리하는 후주를 들으며 다음노래를 기다릴 것이다. 어쩌면 결혼생활은 평소에 듣지 않는 지지직소리와 그 동안 있던 줄도 잘 몰랐던 전주와 후주를 듣는 일일 지도 모른다. 


같이 바래가다 - 필름사진기


디지털카메라는 기존 카메라의 한계라고 여겨졌던 많은 부분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디지털 코드화된 사진은 편집도 용이해 졌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표현할 수 없었던 많은 색감과 장면들을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 순간을 포착하기도 쉬워져서 찰나의 순간, 예술적인 장면들을 우리는 좀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디지털카메라가 우리에게 준 큰 혜택이다. 앞서 소개한 다른 기기들처럼 필름카메라도 자연히 우리에게 잊혀갔다. 위에 이야기한 두 가지 아날로그 제품들보다 더 명백하게 디지털에 패배한 것처럼 보인다. 필름카메라 또한 디지털카메라의 맥락과 결을 같이하는 발전을 원하고 있었고, 그렇게 발전해왔으며, 그 발전의 결과가 디지털카메라인 것이다. 더욱더 좋은 퀄리티로 추억과 순간을 담는 일은 디지털카메라가 더 잘 해낼 수 있다. 


사람들은 잊혀지기 싫어하며, 자신이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을 원한다. 자신이 사람들 사이에서 뿌옇게 사라지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카메라의 사진이 그렇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보관을 잘해놓는다면, 언제든 선명하게 꺼내 볼 수 있다. 그 기록된 데이터만 있다면 언제고 다시 인화해서 볼 수 있으며, 인화하는 방법에 따라 더욱 멋지게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사진이 생긴다. 하지만 벽에 걸린 옅어진 폴라로이드 사진은 우리를 아련하게 만든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순간 열린 렌즈에 비친 모습이 빛에 반응하도록 특수하게 코팅된 필름에 담긴다. 셔터가 눌려 렌즈가 열린 단 한 순간. 그 순간을 담은 필름은 ‘사진'이란 이름으로 바뀐다. 그 필름은 한번 사진을 담으면 다시는 필름으로 쓰지 않는다. 그 단 한 순간을 담은 세상 단 하나의 사진. 그것이 우리가 디지털카메라보다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에 더 감정을 느끼는 이유이다. 우리는 절대 지나온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분명 나와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만남, 지금 이 만남은 흘라가는 시간의 정확한 한 지점에만 있는 순간의 만남이다. 잊혀지기는 싫지만 우리는 서서히 잊혀질 것이고, 지나가기 아쉽더라도 천천히 흘러갈 것이다. 필름 사진은 그것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결혼식의 사진 한 장은, 그리고 그 사진이 너무나 선명하다면, 우리가 변해간 그 부부의 모습은 어쩌면 명백히 늙고, 변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노부부와 함께 늙어간 필름 사진. 색을 번지고 코팅이 서서히 벗겨져 끈적끈적하기도 한 그 필름사진 구석에 적혀진 그 날의 그 날짜와 시간. 사진은 그 날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온 시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혼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것이 아니다. 남은 시간 동안 잊혀져가고 사라져갈 ‘내’가 그것을 지켜봐 줄 다른 ‘너'를 옆에 두는 것이라고 했다. 그날 그 순간 세상에 단 하나의 순간이 당신들과 함께 바래져간다면, 언젠가 그 사진을 같이 볼 옆에 있는 자신의 동반자와 조금 더 따듯한 순간이었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소박하지만 행복하다


전축에서 나는 지지직소리도 LP판이 서로에게 적응해가는 방식이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노래보다 더 실제 같지는 않지만, 전축의 핀과 LP판이 돌아가며 내는 소리는 오히려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 자연스러움이 우리를 편안하게 위로해 주는 것이고, 어쩌면 디지털에 지쳐있는 우리가 아날로그에 기대어 쉴 수 있는 지점이 되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디지털은 분명 아날로그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해결해 나갔다. 반영구적이고, 빠르고 정확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점에서 디지털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다. 우리와 닮은 부족함을 가진 아날로그의 감성은 우리가 그것들과 만났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우리를 위로한다. 


아날로그 상품을 사는 것은 사실 어느 정도 매니아의 구역이기 때문에 금액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신들의 심신안정을 위한 혼수를 생각하고 있다면, 아날로그를 만나는 것은 분명히 당신의 결혼준비에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제품은 인테리어로도 손색이 없으니, 한번 들여다본다면 분명 아날로그 제품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당신을 위로해주는 만남이, 신혼부부의 방을 채워준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부부’와 ‘만남’. 분명 멋진 조합이다.


이제는 쓰지 않는 기계식 키보드와 타자기가 다시 나와 우리를 기분 좋게 해주고, 이젠 골동품처럼 여겨지던 전축이 오늘날 우리 귀에 편안한 음악이 되는 것, 필름사진기가 다시 사람들의 방에 벽을 채우고 나와 함께 바래 갈 사진이 되는 것. 조금은 느리고 낡아가더라도 아날로그는 분명 우리에게 소소한 행복을 줄 것이다. 결혼 역시 서로에게 익숙해져가며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니까. 




혼자 준비하지 말아요. 같이해요!

즐거운 결혼 준비를 위한 한 걸음, 웨딩해

매거진의 이전글 혼수 누구 돈으로 하나? 남자가? 여자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