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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pr 02. 2021

영화 <미나리>로 본 가족이라는
지독한 시스템

위기 상황 속 부부와 가족의 세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리뷰 중 줄거리가 암시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이좋은 커플에게 결혼이란 책임감이나 유대감을 더 하며, 최고의 시너지를 내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사사건건 부딪히는, 성향이 맞지 않은 커플에게 결혼이란 족쇄나 다름없다. 흥미로운 건 언제 깨질지 모를 것처럼 위태한 사이일 지라도 의외로 쉽게 깨지지 않는 관계가 또 결혼이라는 것. 부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만나 사랑을 한 스푼 더해 이뤄진, 더없이 약한 고리의 인연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 가족, 주변인, 주변 환경, 아이 등의 요소가 얽히고설키면서 복잡한 세계관을 형성한다. 흔히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다.


출처 :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영화 <미나리>가 연일 화제다. 영화의 위대함을 알리는 리뷰는 차고 넘쳐서 나까지 보탤 건 없을 것 같다. 다만 주인공 ‘제이콥’-‘모니카’ 부부를 보며 결혼과 가족이라는 시스템의 지독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극 중 남편 제이콥은 흡사 농장에 미친 자로 여겨질 만큼, 집착이 강한 인물이다. 단순 노동의 극치인 병아리 감별사로 오래 일하여 일군 재산 전부를 투자하며 농장과 거기에 딸린 트레일러 집을 샀다. 한국 야채를 심어 팔아 성공하겠다는, 이뤄내기 어려워 보이는 그의 꿈. 처음부터 대안 없이 선택한 길이었다. 무조건 성공 아니면 망하고 만다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같은 그의 독단과도 같은 선택에 나머지 가족들은 따라야만 했고, 특히 아내 모니카는 불안함에 떤다. 가장 안락하고 안정적이어야 하는 가정이 남편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출처 :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첫 번째로 주목할 장면은 바로 “오늘은 첫날이니 다 같이 바닥에 자자.”는 제이콥의 제안에 모니카가 딱 잘라서 거절하는 신. 두 번째는 토네이도가 강타하여 집이 날아갈 위기에 처하는 장면이다. 불안한 가운데 그나마 있는 트레일러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 모니카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그날 둘은 밤새도록 부부싸움을 하고,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보자는 타협을 하는 대신, 모니카의 엄마인 ‘순자’를 모셔오기로 한다. 부부 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고, 임시로라도 때우는 방법은 다름 아닌 가족인 것이다. 


아픈 아들 ‘데이빗’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미국까지 건너온 엄마, 순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딱딱해진 집안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농사에 성공하지만, 농장에 대한 집착이 점점 더 강해지는 제이콥의 모습에 실망한 모니카는 크게 화를 내고 이혼을 선언한다. 하필 둘 사이에 껍데기만 남은 날, 농장에 큰 화재가 나고 1년 치 농작물이 모두 불에 타버린다. 화재 다음날, 네 가족이 바닥에서 다 같이 자고 있는 신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결국 가진 모든 것을 잃었고, 남은 건 가족뿐이라는 결말이다.


출처 :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이는 감당할 수 없이 큰 사건에 갈등도 함께 불타 없어지고, 초월한 유대감과 동지애만이 남아 가족의 형태를 유지시킨 것과 다름없다. 앞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말 조차 이제는 사치가 된, 영락없이 실패한 남편을 뭐가 예뻐서 모니카가 봐주겠는가. 그저 위기 대처 시스템이 강제로 발동하여, 비상시국을 함께 이겨내는 목표가 부부를 재결합시켰을 뿐이다. 재난, 전쟁과 같은 비상시국을 생각해보면 쉽다. 특히 이혼 같은 개인사는 재난 앞에서 매우 하찮은 일이 된다. 단지 시국을 이겨낸다는 공동의 목표만이 남을 뿐. 코로나 19라는 전례 없는 상황 속에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탓에 이혼한 커플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있는 가정의 경우 부부가 똘똘 뭉쳐 위기상황을 함께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영화 <미나리>의 가족은 앞으로 더 큰 고난을 맞을 것에 틀림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고난 덕분에 가족의 존재는 커지고 상처는 임시방편으로나마 봉합된다는 사실이다. 지독한 시스템, 그게 바로 결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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