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끝에 해결한 양가 어머님의 혼주한복 고르기
결혼 준비가 막바지로 접어들어 굵직한 것을 해결하고 난 후 찾아오는 관문은 혼주의 여러 꾸밈을 준비하는 것이다. 결혼식은 부모님 행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까지 남아있어서 혼주 예복이나 헤어 메이크업 준비가 은근한 고민거리다. 양가 아버님들이야 대개는 정장을 입고, 맞춤이든 기성 브랜드에서 구입하든 예산 내에서 원하는 대로 준비해 드리면 되니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양가 어머님들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나이가 젊은 편이라 신세대 축에 속하는 우리 엄마는 결혼식에서 내심 드레스를 입고 싶어 했다. 예식도 야외에서 치르니 굳이 틀에 얽매일 필요가 있나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결혼식에서 양가 어머니가 드레스나 정장 차림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예비 시어머니를 위해 본인의 로망은 어느 정도 포기하고 한복으로 타협했다. 한복도 좋아하니 이왕이면 좋은 것으로 맞춰 두고두고 입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반면 예비 시어머니는 의중을 알기가 쉽지 않았다. 각자 자기 부모님은 자기가 맡기로 했기 때문에 모든 연락은 예비 신랑을 통해 진행되었는데, 결혼식에 입을 한복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지, 맞춤인지 대여인지, 혹시 아시는 한복집은 있는지 등을 진작부터 어머님께 알아보고 오라고 했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몇 차례의 독촉과 한바탕 다툼이 있고 난 후에야 ‘있는 한복을 입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있는 한복’이란 짙은 초록색 치마에 연한 미색 저고리로 색감은 나쁘지 않았으나, 요즘 입는 한복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였다. 막상 대여를 해드리려 보니 키도 크고 체격도 좋으신 편이라 잘 맞는 것이 있을까 고민이었다. 두 분 다 맞춤을 해드리자니 지방이라 맞춤 가격이 만만치 않아 예산 초과였다. 코로나 시국에 두 분 다 서울로 모시고 갈 수도 없고,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던 중 한 줄기 빛처럼 깨닫게 된 사실 하나. 친한 친구의 시어머니께서 한복집을 운영 중이라는 것! 친구 결혼식에서 고운 한복을 입은 양가 어머님 모습도 보았고, 좋은 원단을 괜찮은 가격으로 맞춰주겠다고 하여 시름을 내려놓았다. 굳이 돈 들여 맞출 필요 있냐는 어머님을 좋은 옷 맞춰드리고 싶다며 설득해서 몸에 잘 맞는 옷 한 벌 해드릴 수 있게 됐다.
이제 혼주 한복은 다 나이 들어 보인다며 탐탁지 않아하는 엄마를 상대할 차례다. 엄마가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이런 디자인이라면 대여도 괜찮다고 했던 한복집에 연락해 대여 한복을 우선 피팅해 보고, 아무래도 맞춤이 낫다고 생각되면 다시 한번 친구 찬스를 사용하려고 한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원만한 결말이다. 간혹 양가 어머님들 사이에서 한복 컬러나 디자인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게 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한쪽은 파스텔톤을, 한쪽은 쨍한 원색의 색감을 선호한다거나, 한쪽은 자수나 레이스가 들어간 화려한 디자인을, 한쪽은 수수한 느낌의 단정한 디자인을 선호한다거나 하는 취향 차이 때문이다. 예식 날 구분을 위해서 신부 쪽은 빨강이나 분홍색을, 신랑 쪽은 푸른색이나 초록색 등을 주로 하는데, 한쪽이 그 색상을 원하지 않아 트러블이 되기도 한다.
커뮤니티나 주변에 물어보면 혼주 한복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한 조언을 해준다. 푸른 색감이 좀 더 어울리기가 어려우니 시어머니가 우선 방문하도록 하고, 의견 차가 있으면 얼굴 붉힐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친정어머니는 다른 날에 방문하도록 하되 시어머니가 고른 디자인을 참고해 치마나 저고리, 옷고름 등의 색상에서 통일감을 주라는 등의 조언이다. 한복집에서 알아서 추천해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과 한복집에서 시가 식구들에게 신부 한복 같은 연한 미색 저고리에 꽃분홍치마 한복을 권해 난처했으니 신경 써야 한다는 의견도 눈에 띈다.
나는 그저 가능하면 모두가 스스로 마음에 들고 보기에도 흡족한 모습으로 결혼식에 참석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양가를 조율했다. 그 과정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포기하거나 희생하지 않는 것에 신경을 썼다. 꼭 쌍둥이같이 똑같은 디자인과 배색의 한복을 입지 않아도, 혼주용으로 정해진 색상을 입지 않아도, 남은 생애 중 가장 젊은 날 가장 행복하고 기쁘게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