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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pr 09. 2021

80명의 하객과 함께했던
리얼 스몰웨딩

작은 결혼식, 우리의 첫 번째 프로젝트

해외에 있는 그가 일주일 한국에 머무르는 사이,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결혼식을 올릴지 결정했다. 서로 생각하는 결혼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러시아에서 살림을 꾸리기에 결혼식 자리가 양가 친척, 서로의 친구들을 만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소중한 이들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작은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결혼식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봤어.”

“오케이, 내가 보고 해야 할 일 처리할게.”


결혼식까지 8주가 남은 시점, 러시아에 있는 그에게 엑셀 파일을 보냈다. 결혼식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가 많았다. 가족 비자 신청을 위한 초청장, 결혼 전 건강검진, 결혼식 컨셉 등. 내 마음은 매해 연말이면 모든 마케팅 채널을 동원했던 회사의 통합 캠페인을 앞둔 심정이었다. 그와 나는 한 팀이 되어 클라이언트의 위치에 있는 부모님의 의견을 수용하고, 제안하며 우리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첫 난관은 제한된 초대 인원이었다.



“총 80명이라고?”

“네, 양쪽 집 합쳐서 80명이니까, 우리 쪽 40명이에요.”

“친구들은 초대 안 하는 거니?”

“친척분들 인원 보고 숫자 맞춰 볼게요.”


작은 결혼식에 동의하셨지만, 한쪽 집에서 40명의 인원은 턱없이 적은 숫자였다. 일단 조카들을 포함한 직계 가족만 10명이었던지라 부모님 얼굴에서 살짝 난감한 기색이 보였다. 하지만, 아빠는 깔끔히 이 문제를 정리했다. 직접 만나 상황을 설명해 드리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지방에 내려가 십여 년 만에 만난 친척들에게 한 분 한 분 청첩장을 드렸다. 참석 여부 확인을 맡아주신 아빠의 도움에 힘입어 본식 2주 전, 모든 참석자 명단이 확정됐다. 다행히 꼭 초대하고 싶은 몇 명의 친구들도 함께 할 수 있었다. 결혼식에 ‘본인의 지정석’이 있다는 걸 아는 손님들은 모두 시간에 맞춰 식장에 도착했다.



6월의 토요일 12시, 서울 연희동 테라스가 있는 2층 아담한 공간에서 우리의 결혼식이 열렸다. 식장으로 통하는 무거운 문도, 신부 대기실도, 줄 서서 축의금과 식권을 받는 풍경은 없었다. 탁자에 놓은 무인 축의함, 원하는 이들이 남길 수 있는 방명록, 결혼식 전날 만든 테이블 위에 놓은 신랑과 신부 측 안내 폿말을 따라 손님들이 앉았다. 


1층 테라스와 이어지는 공간엔 어르신들이, 계단을 오르는 2층의 공간은 친구들이 차지했다. 헤어 메이크업을 하고 도착한 나와 그는 도착하는 손님들을 직접 맞이하고 인사를 나눴다. 작고 아담한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의 숨결을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결혼식은 예배식으로 치렀다. 테이블에 착석한 손님들 사이 아빠의 손을 잡고 짧은 길을 천천히 걸었다. 뜨거운 햇살을 대비하여 미리 가림막을 친 건 다행이었다. 


주례자 앞에 보면대를 놓은 것도, 꽃의 색을 흰색과 연분홍, 초록으로 맞춘 것도, 내 눈엔 그와 함께 하나부터 열까지 의견을 나누었던 흔적들이 보였다. 바닥에 깔린 천을 밝으며 가는 길의 끝에 그가 서 있었다. 앞으로 함께 걸어갈 사람, 새로운 가정으로 발령받아 한 팀이 된 우리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날씨도, 식사도, 주차도, 물 흐르듯 끝난 우리의 작은 결혼식, 나는 그에게 말했다.


“한 번이면 충분해, 두 번은 못 해. 아니 안 해.”



작은 결혼식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체크리스트  

✔ 신랑, 신부 서로가 원하는 결혼식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

✔예비부부가 합의한 ‘작은 결혼식’을 양가 부모님께 설명해 드리고 상의한다.

✔ 정해진 인원에 맞춰 참석자 명단을 작성한다.
식사, 주차, 좌석 등 수월한 준비를 위해 본식 2주 전 최종 명단을 확정하는 게 좋다.

✔ 가능하면 직접 만나서 청첩장을 건넨다.
작은 결혼식에 대한 설명, 불편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한 양해를 구한다.

✔ 결혼식 당일 큐시트(시간별 진행 내용, 준비물)를 작성한다.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될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반주자, 도와줄 이에게도 공유하면 좋다.

✔ 대관은 장소만 빌려주는 곳,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작은 결혼식을 많이 진행했던 곳이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수많은 커플 중 하나일 뿐이다.

✔식사, 주차, 헤어 메이크업, 스냅사진 세부 내용을 확인하자.
공간이 협소한 경우 자리로 직접 서빙하는 걸 추천한다. 스냅사진의 경우 가족/친척/친구들과의 단체 사진은 원판 촬영이라고 불리며, 별도의 비용이 추가될 수 있으니 꼭 체크하자.

✔ 결혼식 당일 미리 식장에 도착하고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진행상황을 확인할 이를 섭외하자.
미리 결혼식 큐시트, 손님 좌석표 및 체크 사항을 전달하는 게 좋다.

✔ 야외일 경우 우천 시 대비할 방안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한다.

✔ 결혼식을 도와준 이들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일반 예식장과 달리 도움을 부탁할 일이 생긴다. 나의 경우 반주자가 직접 키보드를 챙겨서 와주었다. 이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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