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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y 07. 2021

죽은 첫사랑을 그리워 하는 남편의 충격적인 말

배우자의 첫사랑,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남극에서 기어 오나 봐."

"아냐. 어쩌면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주고받는 ‘내 배우자’의 행방을 찾는 대화. 그만큼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하지만 쉽게 만나기 힘든 게 반려자다. 스스로 결정하는 내 운명공동체이자 가족. 서로의 합의뿐 아니라 주변 가족들까지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만 가능한 게 배우자다.


누군가 그랬다.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고. 실제로 결혼 적령기인 대부분의 연인은 심사숙고해 결혼에 골인하거나 '우리의 끝은 여기까지 인가 봐'라며 이별을 고한다. 다만, 당사자 모두에게 인생 통틀어 가장 사랑했던 상대가 현재 약혼자일까? 그럼 좋겠지만 슬프게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상당하다. 오늘 주제는 무겁다. 비겁했던 한 사람 때문에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고인이 된 첫사랑
남편이 달라졌어요


"잘 지내지?"


코로나 시국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만연할 즈음, 늘 그렇듯 주변의 안부를 비대면으로 간단히 챙겨 오던 때였다.


"아니. 요즘 잠도 안 와. 너무 속 터지고 죽고 싶어."


이제 막 아이를 낳은 친구 A의 답. 만날 때마다 늘 밝고 인생을 주도적으로 지내던 그였다. 산후우울증이라도 생긴 걸까?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란 판단이 들었다. 시국을 핑계 대며 만남을 거절해왔던 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던 차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나 너희 집으로 가도 돼?"

"아냐, 아이도 있는데 내가 갈게. "


전화를 끝내자마자 어떤 정신으로 달려갔는지 모르겠다. 한시라도 빨리 가지 않으면 정말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잔다며, 언제 또 깰지 모르겠지만 잠시 미안한데 혹시라도 깼을 때 공갈젖꼭지를 물려줄 수 있겠느냐며 샤워만 하고 오겠다는 친구의 뒷모습이 홀로 외로워 보였다.


"무슨 일인데?" 하며 묻는 내 말에 나 어떡하느냐며, 갑자기 엉엉 울다 혹여 아기가 깰라 이내 숨죽여 흐느끼는 친구에 적잖이 당황했다.

"핏덩어리 데리고 갈라서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어쩌지? 종종 남편을 닮은 아이를 보면 미워서 어쩔 줄 모르겠어."


이쯤 되면 심상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아이를 데리고 이혼해야겠다니.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숨죽여 오열하던 친구가 가까스로 진정하며 얘기한 주제는 놀라웠다. 배우자의 첫사랑, 정확하게는 죽은 사람 때문이었다.



남편의 첫사랑
쑥대밭이 된 두 사람

A의 남편은 다정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통했다. 연애 기간은 짧았지만 그만큼 열정적이며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제3자가 보기에 두 사람의 애정전선엔 이상이 없었다. 결혼 이야기도 남자 쪽에서 먼저 꺼냈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믿는 그들에게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제 우리 연애 말고 결혼하자며 프러포즈를 한 남편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됐을 정도였다.


결혼 준비도 일사천리였다. 한 번쯤은 결혼 준비 중에 겪는 스트레스가 있을 법도 한데, 워낙 무던한 성향이었던지 잡음 한번 없이 수월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신혼 생활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허니문 베이비가 생긴 게 아쉽다고 했지만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긴 건 몇 달 전부터였다. 출산이 임박했던 어느 날, A의 남편은 밤새 아무 말 없이 술을 마셨고 결근했다. 아이가 언제든 나올 수 있는 때였기에 배우자까지 초긴장 상태여야 하는데 말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말을 해야 알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화를 내던 친구에게 남편이 너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다며 미안하다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마음속 큰 상처로 남은 친구는 남편의 지인에게 혹시 최근에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단다. 지인은 대학 동기가 상을 당했다며 말을 아꼈다. 여자의 촉이라는 게 있는 걸까. 그 순간 친구는 그 말이 영 마뜩지 않았다.


"돌아가셨다던 분, 여자였어요? 혹시 남편이랑 사귀었던 사이예요?"


당황한 지인은 "제가 말한 거 아닙니다. 원망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남편은 자신과 결혼하기 전 사귀던 사람이 여럿 있었다고 했다. 친구는 '그래, 과거 없는 사람은 없지. 누구라도 슬플 수 있지'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남편의 행동이 달라진 것이다. 예전 자기가 알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갑자기 예전 노래를 들었고, 예전 영화를 보더란다. 첫사랑과 연애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친구는 화가 났고 억울했다. 아이를 낳았고, 심지어 그 아이 아빠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게 너무 보기 싫었다. 현재에 집중하기도 모자란데, 이렇게까지 슬퍼하는 이유가 뭘까? 아이도 있는데? 아니, 내가 있는데? 저렇게 상념에 잠겨있는 걸 보는 게 너무 싫었다고 한다.


꾹꾹 참아 터지기 일보 직전, 참다못한 친구는 남편에게 제발 그만 좀 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남편은 "후회돼서 미치겠어"라고 말했다. 후회? 그 말을 들은 친구는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아니, 그 순간 자기 영혼의 생이 사라진 것 같았다고 했다. 못난 사람이었다. 친구를 잡고 나도 울었다.



그럼에도 현재 내 사람에게 잘하자


친구의 남편은 정말 무례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백번 양보해 슬픔이 너무 커 감당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람에게 야박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최대한 이해해주겠다는 배우자 앞에서 말이 헛나왔으면 사과해야 했다. 적어도 자기 아이를 낳고 같이 사는 아내 앞에서 너무 경솔했다.


어떤 점에서 후회한다고 말했던 걸까.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거나, 더 잘해줄 걸 후회한다거나, 한 번쯤은 잘 지내는지 연락을 못했던 걸 후회한다거나. 주어 없는, 자칫 오해하기 쉬운 표현을 썼으면 정확히 그 뜻을 설명하고 사과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우리는 살면서 홧김에 충동적으로 크고 작은 실수를 하며 산다. 그중 많은 이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실수를 한다. 곁에 있는 사람일수록 편하고 가깝게 생각하니까. 그리고 실수해도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 지금도 냉전 상태인 두 사람은 하루빨리 신뢰를 회복해야만 한다. 누가 잘못했고, 못했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일상생활에서 아이를 위한 삶을 살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가정을 지키고자 한다면, 조금이라도 배우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으면 좋겠다. 고인께서도 이 상황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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