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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ug 13. 2021

코시국에 결혼기념일을 보내는
한 부부의 방식

셀프 가족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2년 전, 부산에서 결혼을 치렀다. 우리의 결혼식장은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공간 덕분에 야외 웨딩으로도 유명하지만, 바다를 보며 고기도 먹을 수 있는 숯불구이 전문점으로도 유명했다. 부산이 고향인 사람들에게 말하면 다들 "아, 거기 고기 먹으러 가봤어!"라고 답하는 유명한 곳이었다. 거기서 결혼만 하고 고기는 못 먹고 오다니 너무 아쉽잖아?!


그러곤 결혼기념일 때마다 자연스럽게 부산에 내려가 고기를 맛있게 먹고, 근처에서 하루 지내고 오면 되겠거니 싶었다. 매년 무엇을 하며 보낼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날씨 좋은 5월, 바다가 보이는 결혼식장 방문이라니! 그만큼 기념일 다운 행사도 없지. 다만, 우리가 코로나19라는 변수와 그 악재를 핑계로 집에 있고 싶어 할 만큼 기념일 챙기는 걸 귀찮아하는 부부일 줄은 그때는 몰랐다.


첫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던 2020년 5월 초, 조금 잠잠해졌던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부산 가? 말아?’하며 눈치게임 중이던 우리 부부는 그냥 집에서 결혼기념일을 보내기로 했다. 대신 주말에 종종 가는 스테이를 하나 예약했다. 서울 중심, 경복궁 옆에 있는 스테이는 하루 정도 기분 내고 올만한 곳이었다. 그래도 좀 아쉬운 걸 싶어 고민하다 셀프로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다. 물론, 가족이 된 고양이들도 함께 말이다. 한때는 필름 카메라로 셀프 사진도 찍어보기도 했으니 이것쯤이야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핸드폰으로 가족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래는 우리의 결과물이다.


숨길 수 없는 불안한 표정의 집사들
넷 중 하나는 망하는 사진


딸 둘인 작은언니가 보더니 "야, 우리 가족사진 찍는 거랑 똑같다"며 웃었다. 한 마리가 잘 나오면 다른 한 마리가 난리였는데, 애들도 그렇다며. 사진 욕심에 고양이들을 데리고 좋은 사진관에 가서 찍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는데, 그랬으면 고양이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인간들의 돈은 아까울 뻔했다. 물론 고양이는 흔들려도 귀엽긴 하지만.


우리가족 2주년 기념 사진


1년이 지나 다시 5월. 이번 결혼기념일에도 약속했던 부산에는 가지 못했지만, 이번 결혼기념일에도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사진을 찍었다. 길었던 내 머리는 짧아졌고 흰 벽만 있었던 곳에는 소파가 생겼다. 츄르를 챙겨 고양이들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노하우도 생겼다. 덕분에 작년보다 수월하게 찍은 것 같은데, 다시 보니 뭐가 더 나아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고양이들은 여전히 천방지축. 인간들은 혼비백산. 언젠가 이 행사도 익숙해질까? 알 수 없지만,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매년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우리 만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함께 기록을 쌓아나가고 싶다. 기념일을 기념하는 우리 가족만의 방식. 내년에는 우린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져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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